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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칼럼] 압박감에 마음이 짓눌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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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칼럼] 압박감에 마음이 짓눌릴 때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압박감에 마음이 짓눌릴 때, 한 번에 한 가지씩 집중하는 연습을 해보자. ©freepik
심연희
NOBTS 겸임교수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email protected]

심적 압박감
상담소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 놓는 분들이 자주 꺼내 놓는 주제 중 하나가 너무 많은 일들에 압도되어 주체하기 힘든 압박감이다. 하다못해 가족여행을 갈 때도 즐겁게 놀러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가족간에 싸움이 일어난다. 여행 준비부터 신경 쓰고 챙겨야 할 일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스트레스가 쌓이기 때문이다.
학기말고사가 다가올 때, 직장에서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할 때, 마감기한이 코 앞으로 다가올 때, 할 일이 겹겹이 쌓이고 밀릴 때, 때로는 해야 할 일들에 깔려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온다. 할 일은 태산 같은데, 걱정과 불안이 점점 커지다가 어느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압박감에 짓눌리게 된다.(overwhelmed).

예를 들어 집에 손님이 온다고 해보자. 그러면 먼저 손님이 머무르는 기간에 맞춰 음식 메뉴를 정하고 장을 봐야 한다. 장도 미국에서는 한 군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미국 대형마켓, 소형마켓, 한국마켓 등 세 군데를 돌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집안 청소를 싹 하고 몇 가지 요리를 하기 시작한다. 손님이 도착하기 전까지 모든 준비를 끝내고 부엌도 말끔하게 정리해 놓아야 한다.
손님 맞이 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당장 식구들 먹을 끼니를 준비하고, 평소에 해오던 일들도 동시에 해야 한다. 아이들을 씻기고, 숙제를 봐주고, 여기저기 레슨이나 운동 경기에 데리고 다녀야 한다. 이 모든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심신이 압도되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가족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리고,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폭발하니 집안 분위기는 살얼음판이 된다.

대학생들이 상담을 하러 오는 경우에도 비슷한 고민을 토로한다. 현재 듣고 있는 과목들의 수업 준비, 과제, 시험 준비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해 줄줄이 F를 맞을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경우도 있고, 이미 학사경고를 몇 번 받은 학생도 있다. 심지어 다음 학기 등록이 아예 금지된 상태에 이른 경우도 있다.

목회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몸이 열 개라도 소화하기 힘든 일정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 새벽기도, 철야기도, 수요예배, 주일예배, 심방 등 계속되는 설교 준비의 압박에 시달린다. 거기에 가족, 교회, 개인적 성장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줄을 서 있다. 교인들의 인생사와 관련된 일들도 어느새 목회자의 일이 된다.

이렇게 팽팽한 고무줄처럼 자신의 시간과 감정을 최대한 늘려 수많은 일들을 동시에 감당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 고무줄이 끊어질 것 같은 위기감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다 그 위태롭던 줄이 ‘뚝’ 끊어지고 모든 일을 한꺼번에 놓아 버리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신체적으로 몸이 더 이상 일하기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정신적으로 공황 상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세상의 종말
이런 경우, 자신이 해야 할 일이 극단적으로 많아서 번아웃이 오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가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해야 할 부분은 이 일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심리적 부담감과 압박감이 더 큰 문제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우리를 신체적,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지게 만드는 주된 이유는 일이 실제로 너무 많아서라기보다는, 일이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아 보여서’ 압도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압박감과 부담감을 건강하게 다룰 수 있을까?

성격장애를 대상으로 하는 DBT(Dialectical Behavioral Therapy)에서는 성격장애가 이 심적 부담감과 압박감에 특히 취약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자기 눈에 보는 것을 더 크게, 더 예민하게, 더 극단적으로 느끼고 해석하는 특성 때문에 몇 가지 일이나 걱정거리가 겹치면, 그 사람의 정신 세계에서는 이미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의 종말을 경험하게 된다. 그 두렵고 끔찍한 감정에 압도되어 꼼짝 할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한 번에 한 가지
전문가들은 이런 압박감과 부담감을 다루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안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한 번에 한 가지(One thing at a time)’ 일에 집중하는 훈련이다.
예를 들면, 운전할 때는 운전만 하고, 전화할 때는 전화만 하고, 밥 먹을 때는 밥만 먹는 것이다. 이게 말로는 참 쉬워 보이는데, 실천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자신이 밥 먹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 일을 하면서 밥을 먹거나, 애를 안고 TV를 보면서 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른다. 반찬이 무슨 맛이었는지도 모른다. 식사를 즐기는 느낌? 그런 건 당연히 모른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면 효율적일 것 같지만, 차 안에서 운전을 하면서 전화 통화를 하고 동시에 햄버거를 먹는 사람을 생각해 보라. 그 사람 차에 타고 싶은가?
한 번에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훈련을 위해 그룹상담에서는 손걸레로 벽을 닦는 실습을 하기도 한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번에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훈련이다.

걱정 시간 정하기
살면서 아주 큰 걱정거리가 생길 때 우리는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매일매일 크고 작은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면? 하루에 30분을 아예 걱정하는 시간으로 정해 놓고 그 시간에는 걱정만 한다.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걱정 공책을 마련한다. 잠들기 전에 모든 걱정거리를 공책에 써두고, 그것에 대한 걱정은 내일 걱정 시간에 몰아서 하면 된다. 그리고 잠 잘 때는 아무 생각없이 잠만 자면 된다.
‘한 번에 한 가지’에 집중하면 생각보다 많은 일을 효과적으로 해낼 수 있다. 누구나 지금 당장 한 가지 일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안 청소를 걱정하는 대신 내 책상 한 군데만 치우기, 다섯 과목 숙제를 걱정하는 대신 한 과목 숙제만 하기. 이렇게 한 번에 한 가지씩 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일이 해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마6:34)’고 하신다. 그러니 우리도 오늘 하루치의 걱정만 하고, 한 번에 한 가지씩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