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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칼럼] 사실인가, 추측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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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칼럼] 사실인가, 추측인가?
부정적인 추측과 판단이 꼬리를 물 때 잠시 멈추고 다시 생각해보자. ©iStock
심연희
NOBTS 겸임교수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email protected]

눈치 100단 직장생활
상담소를 찾은 B양은 직장일과 관련해 고민이 많았다. B양에게 취업 인터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교적이고 언변이 뛰어난 B양은 자신의 성격이나 능력, 의견을 표현하는 데 뛰어났다. 그리고 좋은 첫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할 만큼 친절하고 상냥했다. 그녀는 인터뷰하는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이런 탁월한 눈치 덕분에 B양은 인터뷰를 했던 모든 직장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들어간 직장마다 두세 달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거나 해고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일도 빨리 배웠고, 맡겨진 업무도 척척 잘해 나갔다. 그런데 이 똑똑하고 눈치 빠른 B양의 눈에 그 직장의 문제점들이 너무 빨리 드러났다. 어떤 동료가 일을 똑바로 안 하는지, 어떤 상사가 능력이 없는지, 누가 누구와 친한지, 어디에 구멍이 있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쉽게 눈치챘다. 누군가가 자기에게 미소 없이 쌀쌀맞게 대하면 자신의 능력을 시기한다고 생각했다. 쉬는 시간에 동료들이 모여 잡담을 하고 있으면 그들이 자신에 대한 험담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또한 능력 없는 상사가 똑똑한 자신을 견제하거나 그와 친한 직원들에게만 편의를 봐주는 듯이 보였다.
직장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왕따시키고 시기한다는 느낌 때문에 동료들과의 관계가 불편해졌고, 그에 대해 상사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는 사이 B양은 이미 다른 직장을 찾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사표를 던지고 나오거나, 아니면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해고되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똑똑하고, 감이 좋고, 판단이 빠른 B양의 특성은 처음 인터뷰에서는 큰 힘을 발휘했지만, 직장 내의 지속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장점이 되지 못했다. 자신의 직감을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그들의 의도와 생각을 섣불리 추측했다.
문제는 B양의 직감과 눈치가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내린 결론이 늘 맞는 것은 아니었기에 때로는 그녀의 지나친 추측과 왜곡된 해석 때문에 작은 문제가 큰 문제를 낳기도 했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우리 또한 B양처럼 다른 사람들을 보며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쉽게 추측한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말이 별로 없어지면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다. ‘요즘에 무슨 일 있나?’ 하는 생각에서 시작해 ‘나한테 삐진 건가? 내가 무슨 실수를 했나?’ 하는 생각으로 발전한다. 그러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가면 ‘왜 내 눈을 피하지? 어디서 내 흉이라도 보고 다니나?’ 하는 생각으로 진행되고, 급기야 ‘지금 나 무시하는 건가? 이제 나랑은 끝이다 이건가?’ 하며 혼자 드라마를 쓰거나, ‘저 인간 왜 저래? 성격 진짜 이상하네…….’ 하며 상대방에 대해 일방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교회에서 누군가 무심코 자기를 지나치면, ‘나를 보고도 인사를 안 해? 나한테는 관심도 없다 이거지?’라거나,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오늘 설교는 꼭 나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 같은데? 아니, 창피하게 이게 뭐야. 진짜 망신이 따로 없네…….’ 하며 혼자 억측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상대방의 속마음을 모른 채 지레짐작을 하면서 많은 오류를 범한다. 관계가 완전히 깨지기 전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성숙함이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일방적인 추측과 오해로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걸음 물러나
상담 과정에서 내담자들이 갑자기 불쑥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러면 경우에 따라 내담자에게 잠깐 뒤로 물러나 그 생각이나 감정을 가만히 바라보도록 요청한다. 그것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하게 되면 점점 가속도가 붙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벼운 추측이 점점 믿음이 되고 확신으로 변해 어느새 기정사실화 되어 버리는 식이다. 특히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들의 경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걷잡을 수 없이 커지다가 어느 순간 자신과 주변의 관계를 삼켜 버리게 된다.
따라서 내 주변의 누군가에 대해, 또는 어떤 사건에 대해 생각이 생각을 낳고, 감정이 눈덩어리처럼 불어나는 중이라면 잠깐만 멈추어 보자. 그리고 그 생각을 잠시만 바라보자.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자신의 생각, 느낌, 감각, 행동은 관찰 가능하다. 다른 이들의 행동, 사건, 물리적 현실도 관찰 가능하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생각, 감정, 의도, 믿음은 관찰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말수가 적은 것은 관찰 가능하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모른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말을 안 하니 나를 싫어할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것은 잘못된 추측이고 판단이다. 아이가 말대답을 하는 것은 관찰 가능한 행동이다. 그런데 그것을 부모인 나에 대한 무시라고 해석하는 것은 나의 생각이고 판단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 감정, 의도를 내가 분명히 안다고 믿고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생각이 이미 관찰을 넘어 지나친 추측과 판단으로 치닫고 있다는 신호일지 모른다. 안타까운 점은, 나의 억측과 판단으로 가장 피해를 입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잘못된 추측과 판단이 우리를 지배하면 하루를 망치고, 관계를 망치고, 삶을 망치게 된다. 따라서 잘못된 추측과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전에 아침 말씀묵상으로 하루를 열자.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 꼬리를 물면 잠시 기도로 멈추어 서자. 하나님의 크고 넓은 생각이 우리의 작고 좁은 생각을 바꾸시도록 생각과 마음을 열어 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