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을 보다가
임문혁
설악산 한계령을 넘다가
입을 벌리고 단풍을 본다
바람은
어떤 기막힌 영혼을 품었기에
푸른 산허리를 만나
저렇게 흐드러지게 꿈이 풀리고
줄에 닿으면 소리가 되고
물에서는 은빛 춤이 되는가
나는 도대체
얼만큼 맑고 고운 영혼을 품어야
그대 가슴을 만나
단풍처럼 피어날까
언제쯤이나
언제쯤이나 나의 아픔은
그대 마음줄을 울리는 소리가 되고
은빛 춤이 될까
저렇게 기막힌 사랑이
될 수 있을까
▶ 작가의 말
단풍이 곱게 물들었습니다. 설악산 한계령을 넘다가 보았던 단풍이 생각납니다.
저 단풍은 어찌 저리 곱게 물들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하! 그건 바람 때문일 거야’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바람은 참 기막힌 영혼을 품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푸른 산허리를 만나면 저렇게 꿈처럼 황홀한 단풍으로 물들고, 줄을 만나면 줄을 울려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물을 만나면 물결이 반짝반짝 빛나며 춤을 추게 만드는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것이죠.
그렇다면 나의 영혼은 어떤가? 나는 도대체 얼마만큼 맑고 고운 영혼을 품어야 사랑하는 그대 가슴을 만나 단풍처럼 곱게 피어날까?
지금은 아니라도 나중에 언제쯤, 언제쯤이면 나의 이 아픈 마음이 그대 심금(마음 줄)을 울리는 소리가 되고, 은빛 춤이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저 아름다운 단풍처럼 기막힌 사랑이 될 수 있을까?
단풍을 보다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가을에 바람같은 나의 영혼이여! 단풍처럼 기가 막힌 사랑으로 황홀하게 물들기를……
임문혁
시인, 교육학박사, (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귀.눈.입.코』 등이 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