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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생활기] 승진 기회와 시급 협상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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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생활기] 승진 기회와 시급 협상 작전
매니저가 저를 불러 승진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
어느 날, 오프닝 멤버로 출근을 했는데 매니저가 저를 부르더군요.
“디스트릭 매니저가 우리 매장이 실적도 좋고, 잘하고 있으니 리드 뷰티 어드바이저 한 명을 더 채용하라고 했어. 내년에 매장이 몇 군데 더 오픈할 예정이고 라라양이 매니저로 가게 될 거라서 리드 포지션이 비게 되니까 지금 채용하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나는 밖에서 채용하고 싶지 않고 너를 추천하고 싶어. 리드 포지션은 풀타임이어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
아니, 제가 지금 무슨 얘기를 들은 거죠??? 그동안 저를 투명인간 취급했던 매니저가 저에게 인사만 해줘도 감지덕지인데, 리드 포지션에 저를 추천하겠다니!!!!
그동안 제가 열심히 일한 것을 인정받은 것 같아 너무 뿌듯하고 기분 좋았어요. 게다가 그 리드 뷰티 어드바이저 포지션은 우리 나나양께서 탐내던 포지션 아니던가요? 자기가 매니저가 되면 저를 꼭 데려갈테니 자기를 위해 일해 달라고 은근히 저를 아랫것 취급하던 나나양에게 드디어 저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온 거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어!!!
그동안 미국에서 전업주부로 살아왔던 제가 파트타임 일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는데,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왔고, 게다가 이 일은 제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제 경력에 도움이 되는 일이니 이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문제는 풀타임이라 시간 조율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거였죠. 지금은 아이들 학교 간 시간에만 일을 하니 따로 비용이 들지 않지만, 풀타임으로 일을 하게 되면 어떻게 시간을 짜도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이 하교한 후 남편이 집에 올 때까지 매일 2시간 정도만 베이비 시터를 쓰면 될 것 같아서 동네 페이스북에서 베이비 시터를 구한 후, 매니저에게 그 포지션 제가 해보겠다고 답을 했습니다.

내 시급은 내가 정한다
그런데 말입니다……, 베이비 시터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시급 협상을 좀 해야겠더라고요. 물론 베이비 시터 비용을 내야 하니 시급을 더 달라고 할 수는 없었죠. 하지만 그동안 제가 이 매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는 것은 매니저도 알고, 동료들도 알고 있으니 저에 대한 가치 평가를 다시 해달라고 요구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아, 물론 리드 뷰티 어드바이저가 되면 당연히 시급이 오르죠. 현재 리드 뷰티 어드바이저 포지션인 가가양의 시급을 우연히 나나양을 통해 들었기 때문에 제가 앞으로 받게 될 예상 시급은 알고 있었어요. 사실 주는대로 받아도 딱히 불만은 없는 시급이었죠. 하지만 저는 저의 가치를 제가 직접 정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급 협상 작전에 돌입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매니저의 생각지도 못한 리드 포지션 제안에 제가 해보겠다고 메시지를 보내자, 매니저는 사흘 뒤에 콜스 백화점 매니저와의 미팅을 잡아 놓겠다고 답장이 왔습니다. ‘응? 콜스 매니저와 미팅을 하겠다니……, 그럼 인터뷰를 하겠다는 건가?’
저도 들은 얘기가 있어서 인터뷰가 있을 거라는 예상은 했어요. 콜스에 입사했던 S양이 세포라로 이동해 왔을 때도 인터뷰를 하고, 시급 협상도 다시 했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저도 이 미팅 때 시급 협상을 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리드 포지션인 가가양과 베스트 프렌드 사이인 나나양이 저와 대화 중에 가가양의 시급을 언급한 적이 있어서 저도 대충 ‘얼마 정도 받겠지~’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제가 몇 달 동안 일하면서 동료들이나 가가양이 일하는 걸 지켜보니 솔직히 제가 좀 더 받아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처음 입사할 당시에는 제가 미국에서 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미국 사회생활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어가 완벽한 것도 아니라서 일을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어요.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제가 영어 빼고는 동료들보다 못한 게 없더라고요? 자기애 충만하고 자신감 넘치는 우리 나나양은 사실 어마어마한 손님 응대 스킬이 있거든요. (이 얘기는 다음 호에서 풀어드리겠습니다.) 아마 제가 영어를 네이티브처럼 잘했어도 우리 나나양만큼 프렌들리한 고객 응대 스킬을 가질 수는 없었을 거예요. 그래도 제가 동방예의지국 출신답게 미국인들의 서비스 스킬과는 또 다른 정중하고 예의바른 손님 응대 정도는 할 수 있거든요. 그러나 여전히 영어를 네이티브처럼 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어요.
하지만 그 외에 업무적인 것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열심히 했고, 또 잘했어요. 오히려 리드 포지션인 가가양이 저에게 와서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이 많아서 제가 그녀에게 가르쳐주는 일이 많았답니다. 뷰티 업계 경력으로 보자면 제가 그녀보다 선배이기도 하고요. 뷰티 업계가 아니더라도 일단 제 사회 생활 경험과 연륜이 있…… (아, 이건 인정하기 싫으다!!! )

협상을 위한 비장의 무기
그래서 가가양의 현재 시급을 기준으로 그것보다 조금 더 요구해 봐도 되겠다고 판단했어요. 그렇다고 무턱대고 “나 일 쫌 잘하는 것 같은데 이만큼 주세요~”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내가 이 정도 시급의 가치는 있는 사람’이라고 매니저들에게 들이밀 어떤 근거가 필요했어요. 그런데 바로 그때! 섬광처럼 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셀프 이밸류에이션(self evaluation)!!!
작년에 저희 남편이 이직을 했는데, 이직 후 6개월이 지나니 셀프 이밸류에이션이라는 것을 작성하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뭐냐고 물어보니, 이 회사에 입사한 후 6개월간 업무 능력이나 성과에 대한 ‘자기 평가서’인데, 이걸로 1년 후 연봉 인상율이 결정된다고하더라고요. 아하!!! 그렇다면 나도 셀프 이밸류에이션을 작성해서 지난 5개월간 제가 세포라를 위해 어떻게 일해 왔는지를 매니저들에게 어필해보기로 했답니다. 솔직히 제가 하는 일이 무슨 큰 성과를 내야 하는 프로젝트도 아니고 억대 연봉을 받는 직장도 아닌데 셀프 이밸류에이션이라니 내가 너무 오바하는 것 아닌가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열정과 마음가짐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고, 이걸로 제 시급을 더 올려 받을 수 있다면야 ‘why not?’ 아니겠어요?
그래서 리테일 업종에 맞는 셀프 이밸류에이션 항목과 콜스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항목들을 추리고, 구글에서 셀프 이밸류에이션 양식들을 참고해서 저만의 셀프 이밸류에이션 양식을 만든 후, 남편에게 좀 봐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 제 셀프 이밸류에이션을 본 남편이, “솔직히 난 잘 모르겠어. 리테일에서 이런 걸 하지도 않을텐데…….” 하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겠어요? 급 소심해진 저는 ‘그냥 하지 말까?’ 싶었지만 다시 한번 ‘내 시급은 내가 정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시급 협상을 위해 스스로 만든 자기 평가서(self evaluation) ©스마일 엘리

시급 협상 작전
사흘 후, 매니저들과 미팅이 잡힌 날이었습니다. 저는 셀프 이밸류에이션 서류를 챙겨 출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매니저가 저를 보자마자, “너 됐어! 그 포지션 네 꺼야!!!” 하시는 거예요. 아니, 미팅도 없이 바로? 그럼 시급 협상은??? 저는 기쁘면서도 좀 당황스러웠어요.
“그럼, 미팅은 없는 건가요?”
“미팅은 없을 거야. 걱정 안 해도 돼. 이미 결정됐으니까.”
아, 이게 아닌데……. 그럼 시급은 주는대로 받아야 하는 건가?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더 이상 시급 협상 기회는 오지 않을 것만 같아서 제 마음은 다급해졌습니다.
“저기, 저는 오늘 미팅이 인터뷰 같은 거라고 생각해서 준비하고 왔어요. 그리고 시급 협상도 좀 하고 싶었고요.”
“원하는 시급이 얼만데?”

“**불이요.”

그러자 서류 정리를 하던 매니저가 깜짝 놀라며 저를 쳐다봤습니다.

“그렇게는 못 받을 거야.”

ㅎㅎㅎ 물론, 저도 그렇게는 못 받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죠. 왜냐하면 제가 부른 시급은 가가양보다 더 높은 시급을 불러서 그렇게는 못 준다고 하면 다시 재협상할 시나리오를 가지고 부른 시급이었거든요. 그렇게 재협상한 시급이 그래도 가가양보다는 높은 수준이 되도록요. 그러니 매니저가 놀라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저에게는 계획이 있었답니다.

“저는 오늘 인터뷰가 있는 줄 알고 이것을 준비해 왔어요.” 하며 매니저에게 셀프 이밸류에이션 서류를 살포시 건네주었습니다. 그러자 매니저가 꼼꼼하게 읽더니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캐(콜스 매니저)랑 얘기 좀 하고 올게.” 하며 오피스로 가시더라고요. 그리고 한 30분 정도 뒤에 돌아와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캐**가 감동한 것 같아. 너의 셀프 이밸류에이션이 너무 인상 깊었대. 이 자기 평가서 제도를 도입해서 수퍼바이저급에게 적용하겠대. 네가 원하는 시급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어. 그렇게 해 줄것 같아.”
아니, 이게 뭐죠??? 제가 생각한 시나리오는 이게 아닌데, 그보다 더 완벽한 이 조건은???? 저는 중간 지점에서 시급 협상이 되기를 바랬는데, 제가 부른 금액을 덜컥 주겠다고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이 셀프 이밸류에이션이 이렇게 큰 효과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저희 남편도 결과가 궁금했는지 어떻게 됐냐고 메시지를 보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부른 금액 그대로 받게 될 것 같다고 했더니, 남편도 깜짝 놀라며 자기 속내를 털어 놓더라고요.
“사실은 자기가 셀프 이밸류에이션 하는 거 보고 쓸데없는 짓 한다고 생각했는데 효과가 있었네? 내가 잘못 생각했어. 미안해. 그리고 당신이 정말 자랑스러워!”
원하는 시급을 받게 된 것보다 제가 시도한 일을 가치있게 생각하지 않던 남편이 저에게 사과하고 저를 인정해준 것이 더 뿌듯했어요.
솔직히 저 자신도 셀프 이밸류에이션 서류를 만들면서 이거 너무 오바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열심과 열정을 보이는 직원을 싫어할 매니저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려서 다행스럽긴 한데, 이젠 또 다른 걱정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이 리드 뷰티 어드바이저 포지션을 탐내던 그분…, 저를 아랫것으로 여기던 우리의 나나양이 제가 리드 포지션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워싱턴주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 정보, 일상생활, 문화 차이 등을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이자 <엘리네 미국 유아식>, <엘리네 미국집> 책의 저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