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드티, 마스크, 백팩 – 도둑놈 착장
제가 세포라에서 일하는 동안 자잘한 도난 사건들을 많이 겪었는데, 사실 그동안 손 떨리게 무서운 도난 사건들도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은 지역 뉴스에도 나왔어요. 미국 살면서 미국의 어두운 면을 직접 경험한 일이어서 오늘은 그 얘기를 좀 해 볼까 합니다.
작년 이맘 때 쯤, 한가한 저녁 시간에 저는 가가양과 둘이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매장에는 계산대가 정면 입구를 바라보고 있고, 계산대 오른쪽으로 향수 코너가 있어요. 아무래도 향수가 고가 제품들이고, 도난 사고도 가장 빈번해서 계산대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제 뇌피셜…
아무튼 그날 따라 세포라 매장에 손님이 한 명도 없었는데, 갑자기 키가 큰 남성이 후드티로 머리를 덮어 쓰고, 검정 스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백팩을 메고 향수 코너로 직진하더라고요. 그 당시 저는 그것이 도둑들의 기본 착장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해맑게 “하와유 투데이?” 하며 인사를 했는데 저한테 눈길도 안 주고 향수 코너로 가더라고요.
도난방지 부서의 담당자 J는 영상실에서 이 장면을 보고 이미 감을 딱! 잡고 저희 매장으로 오고 있는 중이었어요. 그 도둑놈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백팩을 열고 향수를 마구잡이로 쓸어 담기 시작했죠. 그때 짜잔~ 하고 나타난 J가 그 백팩을 확 낚아채자 도둑놈은 백팩을 뺏어서 도망가려 했고, J가 그놈을 잡아채면서 둘 다 바닥에 넘어졌어요. 그런데 도둑놈이 잽싸게 일어나서는 가가양과 저를 밀치고 도망가 버렸고, 향수병들이 깨지면서 J는 손에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고 있었어요.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J가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보니 심장이 쿵쿵 요동을 치면서 진정이 안 되더라고요. 가가양도 놀라서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죠. 일단 J에게 휴지를 건네주고, 덜덜 떨고 있는 가가양을 안아서 달래주었습니다.
슬리퍼 한 짝을 남기고 간 신데렐라 도둑놈은 경찰에 리포트했고, 그 사건 이후로 저는 약간의 트라우마가 생겨서 후드티를 뒤집어 쓰고 얼굴을 가린 마스크를 쓴 특정 인종의 남성이 매장으로 들어오면 긴장을 하게 되더라고요.
겨울에 뿌리지 않는 향수
그리고 몇 달 후, 또 다시 늦은 저녁 시간. 그날은 저 혼자 근무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특정 인종의 두 남성이 저희 매장으로 들어오더라고요. 두 명이 향수 코너로 와서는 저를 코너 구석으로 쥐몰이 하듯 몰아가면서 “겨울에 뿌리지 않을 것 같은 향수는 뭐가 있냐”고 묻더라고요. 저를 코너로 몰아가는 것이 좀 수상하고, 향수를 구입하려는 사람의 질문치고는 너무 이상했기에 직감적으로 위험 상황이다 싶었죠. 그래서 일단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응하자 생각했어요. “겨울에 뿌리지 않는 향이요? 그럼 여름에 뿌리기 좋은 향으로 추천해 드리면 되나요?” 하면서 응수했죠.
그 중 한 명은 후드티로 머리를 가리고 있었지만 둘 다 얼굴은 가리지 않았기에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으려고 J에게 무전을 하지 않았던 게 너무너무 후회됐어요. 제발 J가 영상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제가 위험한 상황인 걸 알아차려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코너에서 빠져 나갈 방법을 궁리했어요. 한 명은 제가 빠져 나가지 못하게 계속 막으면서 말도 안 되는 질문들을 해대고, 다른 한 명은 향수를 보는 척 하는데, 그들이 둘 다 술에 취한 것은 아닌데 왠지 느낌적인 느낌으로 마약을 한 것처럼 흐물거렸다고 할까요? 아무튼 그래서 더 무서웠어요.
바로 그때! 도난방지 부서의 J가 짠~ 하고 나타나더니 향수를 보고 있던 남자에게 다가가 옷 속에 숨긴 거 다 꺼내 놓으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세상에!!! 저를 코너에 몰아 넣고 고새 벌써 해 드셨던 거죠!!!! 2인 1조로 두 놈이 들어와서 저를 위협인듯 위협 아닌 위협 같은 코너 몰이를 해 놓고 그새 주머니에 향수를 3개나 집어 넣었더라고요. J의 덩치와 인상에 압도당한 녀석들은 경찰이 오고 있다는 말을 듣자 뻔뻔하게 돈 주고 사면 될 거 아니냐고 하다가 결국은 맘에 드는 향수가 없다며 유유히 나가 버렸습니다.
J는 딱봐도 (마)약한 애들이라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기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코너에 몰려 있는 동안 이놈들이 총이라도 꺼내면 어떡하나 싶어 정말 가슴이 조마조마했답니다. 이런 일을 겪고 보니, 앞으로는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사람이 들어오면 일단 매장에서 벗어나야겠다! 마음 먹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매장의 상품이 털리는 건 둘째 문제고, 저는 아직 키워야 할 애들이 있으니 무엇보다 저의 안전이 제일 중요하잖아요.
5일만에 3천만원 손실
그리고 바로 몇 주 전에 또 다시 향수 도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제가 금요일 휴무를 하고, 토요일에 오프닝 멤버로 출근을 했더니 메모가 남겨져 있더라고요. 금요일 저녁 8시쯤 웬 남자가 산타 선물 주머니 같은 큰 쌕을 들고 와서 향수 코너의 향수 테스터들을 싸~악 다 쓸어 담아 갔다는 거예요. 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향수를 쓸어 가는 놈들이 하도 많아서 새 상품은 아예 진열하지 않고 테스터만 놓아 뒀다는 겁니다. 하지만 테스터들이 다 사라져 버렸으니 새 상품으로 테스터를 만들어야 해서 결국 세포라 입장에서는 큰 손실을 입은 거였죠. 다음날 도난당한 테스터들의 가격을 계산해보니 4,000불(약 450만원) 정도가 되었습니다.
금요일에 도난 사고가 있었고, 토요일에는 테스터 없이 보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에 출근했더니 테스터를 전부 다 새로 만들었더라고요.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화요일. 그날은 제가 클로징 멤버로 혼자 매장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8시 40분쯤, 그러니까 매장 문을 닫기 20분 전에 두 남자가 커다란 쌕을 메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 오더라고요. 오 마이 갓! 딱 보니 금요일에 왔던 그놈이 친구 하나 데리고 또 왔구나 싶더라고요. 지난 금요일과 이날 화요일 밤 모두 도난방지 부서의 J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새로 만들어 놓은 향수 테스터들을 정신없이 쌕에 쓸어 담더라고요. 향수 테스터에는 도난방지 알람이 부착되어 있어서 그 알람들이 동시에 울리기 시작하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냥 다 집어 넣더라고요.
저는 얼른 매장 밖으로 나가 콜스 백화점 고객센터 쪽으로 갔습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손님들이 고객센터에 몰려 있었고, 콜스의 수퍼바이저는 J에게 전화해서 이 상황을 알리고 있었죠. 이미 퇴근한 J는 당장 911에 전화하라고 했고요. 하지만 두 도둑놈들은 약 5분만에 매장의 테스터들을 싹쓸이 해갔습니다. 금요일에는 쌕 하나에 다 담을 수가 없어서 남자 향수쪽만 털어 갔는데, 이번에는 두 놈이서 남녀 향수 코너를 전부 다 털어 갔어요. 약 10분 후에 경찰들이 도착했지만 도둑놈들은 이미 사라진 뒤였죠. 다음날 콜스 매니저가 도난당한 제품들 합계를 내달라고 했는데, 세상에 22,000불이었어요. 5분만에 약 2,500만원, 지난 5일 동안 약 3,000만원의 손실을 입은 거죠.
매니저의 망언
가끔 미국 뉴스를 보면 직원들이 눈앞에 있는데도 도둑들이 너무나 태연하게 물건을 대놓고 훔쳐가는 장면을 볼 수 있어요. 직원들이 왜 도둑들을 막지 않고 가만히 보고만 있냐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제가 직접 겪어 보니 알겠더군요. 미국은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나라이니 그들이 어떤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내 목숨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겠어요. 또한 리테일에서 일을 시작하면 안전교육으로 배웁니다. 관련 부서의 직원이 아니면 절대로 도둑과 맞서지 말고 막지도 말고, 관련 부서에 알리라고요.
그리고 저는 이런 일을 연달아 겪으면서 점점 이곳에서 일하는 것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이런 도난 사건은 주로 밤에 일어나는데 밤 근무자를 혼자 근무하게 하는 콜스의 스케줄링에 실망했고요, 제가 근무했던 화요일 밤에 콜스 매장을 통틀어 남자 직원은 한 명도 없었어요. 스무살 남짓한 여직원들과 저, 그리고 콜스의 60대 슈퍼바이저뿐이었죠. 만약 그들이 총으로 저희를 위협했다면 저희는 모두 독 안에 든 쥐마냥 꼼짝없이 인질이 되는 시나리오였어요.
그런데 다음날 콜스 매니저의 망언에 정말 대대적인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오프닝 멤버였던 라라양이 저에게 물었어요.
“어제 그 도둑놈들이 물건 훔쳐 가는 동안 너는 어디에 있었어?”
“나는 매장 밖에 나가서 콜스 계산대 옆에 서 있었어. 너무 무서워서 사람들이 전부 다 거기 모여 있었거든. 콜스 수퍼바이저도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고 거기 있으라고 했어.”
그러자 라라양이 말했어요.
“당연하지! 내 안전이 제일 중요하지. 그런데 콜스 매니저가 오늘 아침에 뭐라고 했는줄 알아? 도둑이 들어와서 물건을 훔치기 시작하면 고객 서비스를 시작하래!!!”
“왓?!?!?!?!”
여기서 말하는 고객 서비스란 인사를 건네고, 도와줄 것이 없는지 물어보는 고객 응대 메뉴얼이에요. 그런데 물건 훔치겠다고 작정하고 큰 자루를 들고 온 놈들한테 고객 서비스라니!!! 정말 기가 막혀서… 두 번의 도난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그 매니저는 매장에 없었어요. 그런데 모든 직원들이 바들바들 떨고 있는 와중에, 매니저 자신은 안 떨고 그놈들한테 가서 “How are you? Is there anything I can help you with?” 라고 할 수 있나 보죠?
라라양도 그 말을 듣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이렇게 말했대요.
“저는 그렇게 못하겠어요. 저는 남편도 있고, 아이들도 있어요. 그 사람들이 총을 가지고 있는지 칼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고객 서비스하려고 제 목숨 거는 일은 안 할 거예요! 진짜 그러길 원하는 거면, 도둑놈들이 오면 ‘하와유! 오, 너희들에게 필요한 거 찾았네. 그럼 네 볼일 편하게 봐. 나는 나가 있을게.’ 하고 나갈 거예요!!!”
ㅋㅋㅋㅋ 제가 이래서 라라양을 좋아합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더 덧붙이더군요.
“언제는 안전이 제일이라더니, 자꾸 돈을 잃으니까 이제는 이성도 잃었나봐!”
라라양 말대로 도난 사건으로 연달아 큰 손실이 나니 매니저도 망언인줄 알면서도 그냥 막 던지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도둑 잡은 라라양
그 도둑놈들은 저희 지역 뉴스에도 나왔는데 아마 잡혔을 거예요. 그 결정적 제보를 한 사람이 누구였게요? 바로 라라양입니다. 라라양이 다음날 페이스북 마켓 플레이스에 중고로 올라온 향수들을 죄다 뒤지다가 뙇~ 하고 저희 제품을 발견했지 뭡니까! 저희 제품인지 어떻게 알았냐고요? 저희 매장의 테스터 제품들은 뚜껑을 전부 제거하고 테스터만 진열대에 올려둬요. 대신 재고 확인을 위해서 바코드를 직접 만들어서 테스터 바닥에 붙여 두거든요. 그런데 그 바코드는 저희 편의에 맞게 아주아주 작은 사이즈로 잘라서 붙여둔 거였어요. 그 사실을 모르는 도둑놈들이 그 바코드를 떼지 않고, 뚜껑도 없는 향수를 중고 향수라며 떡~ 하니 페이스북 중고 마켓에서 팔고 있더라고요. 라라양이 그걸 발견해서 콜스 매니저에게 보고했고, 콜스 매니저가 바로 경찰에 신고했어요.
위의 사진들은 실제로 저희 매장을 털어가는 놈들의 모습입니다. 이놈들은 금요일 저녁에 저희 매장을 털어 먹고, 화요일 저녁에 다시 털기 전에 매장에 들어와서 손님이 있는지, 그리고 저희가 새로운 테스터를 만들었는지 확인하고 나가서 쌕을 들고 다시 들어와 털어간 거였어요. 총을 안 가지고 와서 그나마 고마웠네요…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워싱턴주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 정보, 일상생활, 문화 차이 등을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이자 <엘리네 미국 유아식>, <엘리네 미국집> 책의 저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