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 학교 문제만큼은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겁니다." - 스마일 엘리 ©freepik

미국 학교의 불리(Bully)
내 나라가 아닌 곳에 살면서 혹시라도 내 아이가 부당한 일을 겪게 된다면 부모로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막연하게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정말 대처를 해야 할 일이 이렇게 빨리 생길 줄은 예상치 못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학교와 소통하고 잘 해결이 되었지만, 또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어서 혹시나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실 부모님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사건 – “Bitch!”
저희 와플이와 제제는 스쿨버스를 이용합니다. 평소 아이들로부터 J라는 아이가 좀 짖궂다는 얘기를 듣고 있었어요. 와플이는 동생으로 인해 멘탈이 좀 강해서 어지간한 놀림에는 상처받지 않고, 무시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와플이가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너무 감정이 격해져 있어서 말도 제대로 못하길래 일단 진정시키고 말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렸어요.
와플이의 말에 의하면, J라는 아이가 와플이에게 “Bitch!”라고 불렀대요. 그래서 하지 말라고 했더니 더 보란듯이 “Bitch! Bitch! Bitch!”하면서 열 번도 넘게 그렇게 불렀대요. 너무 화가 난 와플이가 참다 못해 가운데 손가락을 날려줬고, 스쿨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터져 울면서 집에 온 거였어요.
J라는 아이는 와플이보다 한 학년 어린 2학년생인데, 고작 2학년짜리 아이가 ‘bitch’ 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그 아이가 전에도 우리 아이들에게 물총을 쏘고 도망간다든지 하는 일이 있었지만 학교에 보고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이번 일은 그냥 두고 볼 일이 아니라고 판단돼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인터넷에 bully 대처 방법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그 아이가 같은 동네 아이라 그 엄마의 얼굴을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일은 ‘엄마 대 엄마’로 해결하기보다는 우리 아이와 그 아이 사이에 bully 문제가 있었다는 기록을 공식적으로 남겨두기 위해 학교에 보고를 하고, 학교의 중재를 받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어요. 나중에 이런 문제가 또 발생할 수 있으니 지속적인 보고와 학교의 대응을 보고, 만약 해결이 안 될 경우 상위 기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죠.
그래서 먼저 담임 선생님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육하원칙에 따라 사건이 일어난 날짜, 시간, 장소, 사건 경위에 대해 객관적으로 적었어요. 보통 이렇게 아이가 상처받은 일을 쓰다보면 아이의 감정에 이입되고 부모로서 속상한 마음이 더해지는데, 학교에 보고하는 이메일에는 최대한 객관적 사실 중심으로 쓰는 것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와플이 엄마입니다. 어제, 2022년 9월 28일 와플이가 울면서 집에 왔습니다. 와플이는 8번 스쿨버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J라는 2학년 아이가 와플이에게 bitch라고 불렀습니다. 그 전 주에도 그렇게 부르며 놀렸지만 와플이는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제는 10번 이상 계속해서 불렀고, 와플이는 화가 나서 자기방어로 가운데 손가락을 세웠습니다. (객관적인 상황 설명을 위해 우리 아이가 잘못한 부분도 함께 보고함. 상대 부모가 이 상황을 다르게 해석해서 와플이를 비난할 수도 있어서) 아이 아빠와 저는 이미 이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와플이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J가 와플이에게  bitch라고 부른 일은 옳지 않으며, 이 일이 재발할 수도 있음에 염려가 됩니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를 위한 대처를 희망합니다. ” 

담임 선생님에게 이메일을 보내면서 교장 선생님께도 CC(carbon copy)를 했습니다. 교장 선생님도 이메일을 보실 수 있게요. 왜냐하면 혹시라도 담임 선생님이 이 상황을 가볍게 판단하시고 대처에 미온적일 수도 있으니, 교장 선생님도 이 상황에 대해서 알고 계시고 처리 과정을 지켜보시길 바랬거든요. 특히 이번 일은 같은 반 학생끼리의 문제가 아니고 다른 학년 아이와의 문제이니 J의 담임 선생님도 이 일을 함께 처리해야 할 책임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날 바로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답장이 왔고, 그날 오후에 교감 선생님께서 직접 전화를 주셨습니다. 와플이와 J를 각각 불러 얘기를 나누었고, J가 와플이에게 사과했으며,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스쿨버스 운전기사에게 얘기해서 서로 자리를 떨어뜨려 놓겠다고 하셨어요.
담임 선생님이 아닌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이 직접 연락을 주시고 일을 해결하시는 것을 보고 안도했고, 빠른 대처에 만족했습니다. 상대 아이도 아직 어린 2학년이니 선생님이 잘 타일러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그 일은 잘 해결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사건 – “Go back to your country!”
그런데 얼마 후 와플이와 가장 친한 친구의 엄마로부터 페이스북 메시지가 왔어요. 자기 아이에게 들었는데, 며칠 전 스쿨버스에서 어떤 아이가 와플이에게 “Go back to your country!”라고 했는데, 자기가 와플이를 위해 나서주지 못해 너무 미안했다고 그 엄마에게 얘기하더래요. 와플이는 그 아이가 누구인지 알테니 얘기를 해보라고요. 이런 말을 들었다면 엄마인 제가 알아야 할 거라고 생각해서 메시지를 했다면서요.
‘bitch’까지는 참을 수 있었지만, ‘Go back to your country’는 정말 감당하기 힘들더군요. 그 메시지 읽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어요.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면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이 ‘Go back to your country’ 아닐까요?

그날 밤, 밤새 이 일을 학교에 어떻게 보고해야 하나 검색했습니다. 이 일은 bullying에 인종차별까지 더해진 사건이었어요. 와플이와 제제가 이 초등학교에서 유일한 동양계 아이들이라 이런 인종차별 문제에 저 대신 나서줄 사람도 없으니 이번 일만큼은 제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지난 번 사건 때처럼 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건이 일어난 날짜, 장소, 사건 경위에 대해서 쓰고, 학교의 적절한 대처를 요구함과 동시에 학교의 인종차별에 대한 학칙이 무엇인지 저에게 첨부해 달라고 요청할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인종의 다양성과 인종차별에 대한 교육 커리큘럼이 있는지, 아이들에게 교육을 해줄 수 있는지도 요구할 생각이었죠. 그리고 저는 이 사건을 학교는 물론, 교육청과 주정부에도 보고할 생각이었어요. 인종차별 문제는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참고자료: https://www.pbs.org/newshour/classroom/2022/05/today-my-daughter-was-called-n-heres-my-advice-to-parents/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와플이에게 최근에 스쿨버스에서 누군가 너에게 기분 나쁜 말을 한 적이 있는지 물어봤어요. 그런데 와플이의 대답은, “기억 안 나.”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기억이 안 날 수가 있지????? 그래서 제가 직접적으로 다시 물어봤어요.
“혹시 누군가 너한테 ‘Go back to your country’라고 말한 적 없어?”
“몰라, 기억 안 나! 근데 나한테 ‘Go back to your country’라고 하면 난 너무 신날 것 같은데? 나는 한국에도 가고 싶고, 일본에도 가고 싶어.(일본은 자기가 태어난 곳이니까 가고 싶고, 한국은 자신이 half Korean이니까 가고 싶대요. ㅜ.ㅜ)”
아니, 이 애미는 이 말에 밤새 가슴이 벌렁거리고 눈물을 질질 짰는데, 너는 이 말에 이렇게 해맑게 반응하면 우짜냐고!!! 이 일을 처리하기 위해 이 애미는 아주 비장한 각오를 다졌건만, 정작 본인이 기억이 안 난다니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어서 학교에 보고할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이 일은 보고도 하지 못하고 어이없게 끝나 버렸습니다. (나중에 그 엄마가 얘기하길, “사실, Go back to your country라고 말한 거 J였어.”)

세 번째 사건 – “OO이 게이야?”
그리고 한 달 정도가 지났을까? 그날 저는 클로징을 하고 와플이가 잠든 후에 퇴근을 했어요. 그런데 남편이 말하기를, J라는 아이가 와플이한테 ‘게이’라고 놀렸다며 와플이가 너무 상처를 받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 날 아침 와플이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J가 가진 휴대폰으로 질문을 해서 그 질문의 답이 긍정이면 “Yes”나 “호호호”라고 답을 하는데(아마도 아이폰의 시리같은 기능인 듯), J가 휴대폰에 대고 “와플이는 게이야?”라고 물으니 그 휴대폰이 “호호호”라고 답을 했대요. 그러자 J가 이거 보라며, 와플이는 게이라고 하면서 다른 아이들에게 “와플이는 게이야!!”라고 소리치며 같이 웃었다는 거죠. 한 두번도 아니고 여러 번!!! 와플이가 그만 하라고 말했고, 와플이 친구도 그만 하라고 소리쳤지만, 계속 휴대폰으로 “와플이는 게이야?”라고 질문하고 놀리기를 반복했대요.
이 말을 듣는데 진심 손이 덜덜 떨리더라고요. 2학년짜리 아이가 어떻게 이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아이를 놀릴 수 있는 거죠? 이 J라는 아이, 같은 동네 살면서 계속 같은 학교에 다닐텐데 이대로 뒀다간 우리 와플이를 우습게 보고 계속 괴롭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동안 제가 와플이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싸우지 말고, 반응하지 말고, 무시하라고 가르쳤어요. 그래서 엄마 말 잘 듣는 와플이는 절대로 폭력적으로 반응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이것 때문에 와플이가 타겟이 된 건가, 내 교육 방법에 문제가 있었나 자책하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우리 제제는 형을 이겨 먹고, 당하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J가 제제를 건드리는 일은 없었어요. 제제가 J보다 학년이 더 어린데도 말이죠.
아무튼 와플이와 얘기를 마치면서 말했어요.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고, 너한텐 엄마와 아빠가 있고, 널 지켜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요. 그 누구도 우리 와플이에게 상처주지 못하게 할 거라고요!

그리고 저는 다시 학교에 불리 보고 메일을 작성했습니다. 최대한 정중하게, 그러나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담아서 썼어요. 그리고 이번에도 교장 선생님을 CC로 추가했습니다.

“와플이에게 또다시 일어난 불리 사건을 보고하고자 합니다. J, L, J  이 세 아이들은 2023년 3월 30일 스쿨버스 안에서 와플이를 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어제인 2023년 4월 10일, 휴대폰을 이용해 와플이가 게이인지 물었고, 스마트 기기는 그렇다고 답해서 아이들은 그것으로 더 놀렸습니다. 이 사건을 목격한 아이도 있고, 그 아이가 그만하라고 말렸음에도 세 아이들은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와플이는 상처 받았습니다. 저는 2022년 9월 28일 J로 인한 괴롭힘 문제를 이미 학교에 보고한 바 있고, 같은 아이로 인해 또 다시 이 같은 일이 재발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심히 우려하고 있으며, 학교측이 긴급히 대처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관련 아이들의 학부모에게도 이 일을 알렸는지도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학교의 bullying policy도 첨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자 그날 오후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바로 답장이 왔습니다. 사건 해결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시고 bullying policy도 첨부해 주셨어요. 학교의 발빠른 대처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죠. 집에 돌아온 와플이에게 물어보니 그 아이들이 직접 사과를 했고, J는 교장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후에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모든 일이 잘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고, 다음 날 교장 선생님께 감사 이메일을 드렸습니다.

네 번째 사건 – “너는 지정석에 앉아.”
그런데, 그날 오후 학교에서 돌아 온 와플이가 또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불리 사건 이후로 스쿨버스에 와플이와 그 놀린 아이들 그룹의 지정석이 생겼는데, 어이없게도 그 놀렸던 아이들은 원래 자리에 그대로 앉고, 와플이만 혼자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지정석을 받아서 베프와 떨어져 앉게 됐대요. 그래서 와플이가 베프 옆에 앉겠다고 했더니 스쿨버스 기사가 너는 지정석이 있으니 그곳에 앉아야 한다고 해서 속상하다는 거예요.
와플이 얘기를 들은 남편이 이건 잘못된 거라고, 놀린 아이들이 분리되어야지, 왜 피해자인 와플이가 분리되어야 하냐고, 이건 운전기사에 의한 또 다른 차별이라고, 이번엔 자기가 직접 이메일을 쓰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동안 제가 교장 선생님과 소통을 해왔으니 이번 사건까지는 제가 마무리를 하겠다고 했어요. 대신 남편이 하고 싶은 얘기를 이메일로 써주면 제가 교장 선생님께 보내고, 남편을 CC해서 남편도 진행 상황을 볼 수 있게 하고, 교장 선생님께도 와플이 아빠가 이번 사건에 참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번 괴롭힘 문제를 보고한 후, 그 조치로 와플이가 스쿨버스에서 지정적을 받게 되었고, 가해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가해자 학생들에게 취해진 조치가 없는 것 같아 괴롭힘을 당한 아이의 부모로서 심히 우려가 됩니다. 그리고 여기 몇 가지 의문 사항이 있습니다.

1. 스쿨버스 운전기사에게 이번 괴롭힘 사건에 대해 전달이 되었습니니까?

2. 스쿨버스의 표준관행에 의하면, 괴롭힘 가해 학생에게 자리를 지정해야 합니까? 아니면 피해 학생에게 자리를 지정해야 합니까?

3. 스쿨버스의 징계 규정은 어떻게 됩니까? (보통 스쿨버스에서 3번 이상 문제를 일으키면 스쿨버스 이용을 못하게 되는데, 이 규정에 대해 확실히 알고 싶었어요. J는 이번 일로 이미 두 번의 보고가 들어간 상태였으니까요.) 

저는 우리 아이가 괴롭힘을 학교에 보고하는 것으로 인해 처벌이나 차별을 받는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합니다. 스쿨버스 지정석에 대해 재고해주시고, 이 상황을 바로잡아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그러자 그날 바로 교장 선생님께서 답장을 주셨습니다. 스쿨버스 운전기사와 소통 오류가 있었다며 사과하시고, 누가 지정석을 받아야 하는지 운전기사에게 다시 명확하게 전달했다고 알려주셨어요. 스쿨버스 징계 규정에 대해서는 담당자를 연결해주셨고요. 언제나처럼 신속하게 답 메일을 주시고 속시원하게 일을 바로 잡아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저에게 직접 전화까지 주셨더라고요. 가해 아동들을 각각 떨어뜨려서 지정석을 마련해 주었고, 와플이는 그 아이들을 피해서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지정석을 주는 것으로 조치를 하셨다고요. 이렇게 일련의 불리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고, 다행히 그 이후로 J가 와플이를 괴롭히는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 사건을 통해 배운 불리 문제에 대처하는 핵심은 첫째, 절대로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 것. 둘째, 사건 경위를 육하원칙에 따라 명료하게 보고할 것. 셋째, 학교에서 법과 학칙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할 것. 넷째, 학교의 대응이 미온적일 경우 언제든 상위 기관으로 갈 준비를 할 것.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을 두려워하지 말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J가 이번 일을 통해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한 가지는 배웠기를 바랍니다. ‘와플이를 건드리면 그 엄마가 가만히 안 있는구나!’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워싱턴주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 정보, 일상생활, 문화 차이 등을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이자 <엘리네 미국 유아식>, <엘리네 미국집> 책의 저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