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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생활기] 미국인 동료의 영업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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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생활기] 미국인 동료의 영업 비밀
You're 비유~우우리풀!!! 나이가 손님의 아름다움을 막을 순 없어요. ©123rf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일
오늘은 저희 매장의 셀프 임명 매니저이자 스몰톡의 여왕인 나나양의 놀라운 고객 응대 스킬을 살짝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떤 직종에 종사하시든 고객과 접점이 있는 분들이라면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화장품 매장에서는 당연히 판매가 주요 업무입니다. 그런데 그 판매를 잘하기 위해서는 매장 관리도 중요한 업무 중 하나입니다. 판매가 입으로 하는 것이라면, 그 외의 업무들은 다~ 몸으로 해야 하는 것들이죠. 예를 들면 상품 재고 보충하기, 물건 들어오는 날 박스 뜯어서 창고에 쌓기, 비품 보충하기, 진열대 선반 청소, 테스터 소독, 매장 청소 등등.
그중에서도 직원들이 가장 하기 싫어하는 업무는 진열대 선반 먼지 청소와 테스터 소독, 테스터 청소예요. 화장품들 중에는 크기가 작은 게 많고, 진열대 구멍도 오밀조밀해서 청소하는 데 번거롭고 힘들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거든요. 그러니 화장품과 선반을 다 들어내고 해야 하는 딥클리닝은 더더욱 하기 싫어하죠.
그런데 저희 매니저는 판매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청결’이에요. 특히 테스터 소독, 매대 선반 청소를 너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항상 청소와 소독을 강조하고, 손님이 없는 시간대에는 청소와 소독을 해달라고 수십 번 얘기를 했지요.

화장품 진열대 청소와 테스터 소독은 모두가 기피하는 업무다. ©simplemost

그런데 말입니다, 그 청소를 하는 사람이 저와 매니저, 그리고 신입인 S양밖에 없더라는 겁니다. 그래도 다른 직원들은 매니저 눈치를 보며 청소를 하는 ‘척’이라도 하는데, 오늘의 주인공인 우리의 재잘둥이 나나양은 청소를 피하기 위해 손님이 오면 고객 응대를 하는 ‘척’하면서 시간 떼우기 잡담을 하는 거죠.
미국인들 스몰톡 좋아하잖아요. 그러니 손님한테 계속 쓸데없는 스몰톡으로 대화를 이어가며 주거니 받거니 근무 시간을 떼우고 결국 청소는 전혀 하지 않는 게 제 눈에도 보일 정도이니, 다른 선임들이나 매니저 눈에는 얼마나 얄밉게 보이겠어요?
그렇다고 제가 같은 동료 입장에서 청소하라고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제가 마음을 고쳐 먹었습니다. ‘그래, 나는 내가 잘하는 육체 노동에 매진하고, 너는 니가 잘하는 주둥이 노동에 매진하는 것이니 억울할 것도 없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죠.

스몰톡의 여왕
그러던 어느 일요일. 매니저도 땀 흘리며 선반 청소를 하고, 저도 사다리까지 밟고 올라가 선반 청소를 하고 있는데, 우리의 나나양은 주둥이 노동에 목숨을 걸었는지 손님 한 분과 무려 40분 동안 노가리를 까고 있었습니다. ‘와~ 진짜, 징하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보다보다 못한 매니저가 저에게 오더니 대뜸 이렇게 묻는 겁니다.
“너의 동료가 손님과 노가리 까고 노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말 그대로 playing around라고 말함)”
아아악 매니저님! 저에게 그런 질문 하지 마세요. 이미 답을 아시면서 왜 묻는 거예요?!?!?! 하지만 매니저 앞에서 제 동료를 깎아내릴 수는 없고, 세상만사에는 양면성이 있으니 나쁜 것도 좋게 포장해서 대답했습니다.
“손님과 스몰톡을 하는 건 손님과 커넥션을 만드는 거고, 그런 손님은 다시 찾아오니까 고객 서비스를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휴~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고 한숨 돌리는 순간, 매니저의 2차 공격이 들어왔습니다. “다른 동료들은 힘들게 청소하고 있는데, 저렇게 40분이 넘도록 한 손님과 노가리를 까고 논다면?”
아니, 왜 저한테 이러시는 거예요……. ㅠ.ㅠ
“그게…, 너무 긴 스몰톡은 손님도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 스스로 컨트롤해야 되지 않을까요? 한 손님에게만 포커스를 맞추는 것보다는 다른 손님들이 찾는 게 없는지 돌아다니며 확인도 해야 하고요.”
“바로 그거지!!!”

그리고 나나양은 매니저에게 불려가 면담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하소연을 하더라고요. 자기가 청소를 너무 안 해서 매니저에게 주의를 들었다며 한마디 덧불이길,
“모두 다 청소를 하면 손님 응대는 누가 해? 내가 손님 응대를 하고 있으니까 매니저도 너도 청소를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런 상황에서도 이런 역발상을 하는 것도 참 재주다. ㅜ.ㅜ 어쨌든 매니저와의 면담 후 나나양의 스몰톡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소는 하지 않더라고요. 결국 매니저가 특단의 조치를 취했는데, 그것은 바로 청소구역 지정이었습니다. 각자 청소 구역을 정해주고, 그 구역의 선반과 테스터 청소는 담당자가 책임지고 관리하기로 한 거죠. 효과가 있었냐고요? No…….
한 달이 지나도록 나나양은 자기 구역의 청소를 하지 않았고, 언제까지 안 하나 지켜보던 매니저가 도저히 더 이상은 드러워서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그냥 두 손 두 발을 들어버리고, 청소 전문인 저를 그 구역에 급파하고 말았답니다. 그래서 제 구역 청소를 깨끗이 끝낸 제가 나나양의 구역까지 열심히 청소를 하게 되었답니다. 하~ 이것은 결국 매니저와 나나양의 기싸움에서 매니저가 완벽하게 진 게임이 되었고, 거기서 가장 피해를 본 건 바로 저였습니다. ㅠ.ㅠ

이쯤하면 나나양이 어떤 캐릭터인지 감을 잡으시겠죠? 자신감 넘치고, 자기애 강하고, 자존감도 높은 친구예요. 외동딸인데다가 부모님한테 굉장히 사랑받고 자랐고, 부모님한테 항상 ‘네가 최고야, 넌 뭐든지 할 수 있어, 넌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야’ 이런 말을 듣고 자라서 자신에 대한 의심이 전혀 없었어요.
물론 그녀보다 인생을 두 배 넘게 더 살아온 제 눈에는 사회인으로서 그녀의 말이나 행동이 미성숙해 보일 때가 있지만, 그건 그녀가 아직 어리고 사회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성숙해질 거라고 생각해서 나나양에 대해 딱히 적대적인 마음이 생기지는 않더라고요. 솔직히 저의 20대를 돌이켜보면 나나양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거든요. ㅎㅎㅎ 그래서 나나양의 귀여운 농땡이 정도는 충분히 이해한답니다.

그녀의 영업 스킬
그렇다고 그녀가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니예요. 단지 하기 싫은 일을 안 할 뿐이죠. 게다가 그녀에게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고객 응대 스킬이 있었으니, 그 누구든 그녀와 한번 대화를 나누면 그 손님은 그녀와 친구가 되어 버려요. 정말 눈 앞에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죠. 그래서 그녀의 단골이 엄청 많답니다. 그러니 매니저도 그녀를 미워할 수만은 없는 거죠. 자, 그럼 지금부터 우리 나나양의 고객 응대 스킬을 한번 배워보실까요?
제가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딱 봐도 60이 훨씬 넘어 보이는 여성분이 오셔서 주름 크림을 추천해 달라고 하셨어요. 그땐 제가 어느 제품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때여서 나나양에게 물어봤죠. 그랬더니 그 손님이 다시 한번 나나양에게 설명을 했습니다.
“알다시피 늙으면 이렇게 피부가 쭈글쭈글해지잖아요. 그래서 주름 크림을 한번 써보고 싶어요.”
사실 손님이 저에게도 저렇게 말씀하셔서 저는 손님의 고민을 공감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같이 고민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답니다.
“알겠어요. 저희에게 확실히 좋은 안티 에이징 크림이 있어요. 손님에게 딱 맞는 제품으로 찾아봐요.”
그러면서 나나양에게 안티 에이징 크림 위치와 추천 제품을 물어봤거든요.

그런데 저 말을 들은 나나양의 반응은 저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나나양은 갑자기 손님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Oh~ No~!!! Girl friend, don’t say that! You are BEAUTIFUL just the way you are. (오우~ 노~! 그런 말 마세요. 지금 그 모습 그대로 너~무 아름다우시니까요!!!)”

그냥 ‘뷰리풀(beautiful)’도 아니고 ‘비유~우우리풀’이라고 엄청 강조를 했어요. 게다가 나이가 70에 가까워 보이는 분에게 ‘걸 프렌’이라니!?!?! 동방예의지국 출신인 저에겐 어르신에게 감히 갖다대지도 못할 호칭인 ‘걸(girl)’! 게다가 누가 봐도 주름이 진짜 많아서 아름답다고 말하기엔 속 보이는 거짓말 같아 차마 하지 못할 것 같은 말을 너~무 거리낌 없이 “You’re 비유~우우리풀!!!”이라고 하니까 옆에서 듣는 제가 너무 민망해지더라고요. 저 말을 듣는 손님 스스로도 나나양이 화장품 팔려고 너무 샤바샤바한다고 느낄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손님은 오히려 소녀처럼 살짝 부끄러워하시며 “오우~ 땡큐~~~!!!” 하시며 또 이것을 그대로 인정해 버리심요. 으잉??? 칭찬엔 절대로 거절을 하지 않는 미쿡인들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 순간 저는 그냥 뇌정지가 왔어요. 그리고 제가 정신 차리기도 전에 나나양은 쉬지 않고 막 던지더라고요.
“우린 모두 각자 나름대로 다 아름다워요. 그러니 그런 말 마세요. 손님은 정말 완벽하세요. 나이가 손님의 아름다움을 막을 순 없어요.”
저 정말 나나양 뒤에 따라가다가 가스불에 올린 오징어 되는 줄 알았어요. 오글~오글~오글~

그런데 한편으로는 ‘어쩜 저렇게 예쁜 말을 하지? 영업 멘트인 줄 알면서도 기분이 좋아져서 나나양이 막 좋아지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바로 우리 나나양의 엄청난 영업 스킬이었어요. 손님한테 물건을 팔기보다 손님과 커넥션을 만든다고 할까요? 제품 판매보다 우선 손님과 연결고리를 만들고 친분을 쌓아서 손님이 나나양에게 마음을 열게 만들어요. 그런 후에 나나양이 뭔가를 권하면 손님들이 그냥 홀린듯이 바스켓에 화장품을 담고 있……. ㅎㅎㅎ
나나양의 이런 화려한 말빨과 오글이 화법 덕분에 매장에 와서 꼭 나나양을 찾고 나나양에게 물건을 사려는 손님들이 꽤나 많답니다. 그렇다고 월급을 더 받는 건 아니지만 윗사람들 눈에는 보기가 좋잖아요.

마이 걸~
나나양의 또 다른 특징은 모든 손님을 ‘마이 걸(My girl)’이라고 불러요. 단골 손님이 매장에 들어서면 그 손님 들으라는 듯이 이렇게 말해요.
“헤이~ 마이 걸이 여기 왔네!!!”
그리고 처음 온 손님을 부를 때도 “마이 걸, 잠시만 기다려~”라고 말하고, 손님을 저에게 부탁할 때도 “엘리, 마이 걸 좀 도와줄래?” 이러죠. 그러니 손님들도 자신이 ‘나나양의 걸’이라고 믿고, 그렇게 단골이 되어 버리더라고요. 마치 모두가 그녀의 마법에 걸린 것 같았어요.
또 한번은, 어떤 손님이 나나양의 도움으로 화장품을 사고 계산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54살이야.”
그 말에 저도 놀라고 나나양도 깜짝 놀랐어요. 그분 이마의 주름이 너무 깊어서 60대가 훨씬 넘어 보였거든요. 보통 백인들이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경우가 많지만, 그분의 경우엔 특히 더 그래 보여서 50대라고 하니 너무 놀랐던 거예요. 그런데 나나양이 손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주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어요.
“No, you are NOT!!! (아니잖아요!!!)”
그러자 손님이 기분 좋게 웃으며,
“진짜야~”
그러자 나나양이 말했어요.
“오우, 걸~!!! 전혀 54살로 안 보여요. 40대 후반이라고 생각했어요. 피부가 너무 비유~우리풀해요~!!!”
저는 정말 나나양의 저런 화법이 너무 신기하고 놀라워서 그냥 턱이 빠질 지경이었어요.

그러다 불현듯 제 뇌리를 스치는 몇 개월 전의 기억 하나……. 나나양과 처음으로 한국 음식을 먹으러 갔던 날! 비비큐 치킨집에서 제 나이를 물어본 나나양에게 나이를 알려주자 그녀는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어요.
“No, you are NOT!!! 난 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라고 해서 33~34살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어!!!”
아, 그 말에 기분 좋아했던 그때의 나란 여자……, 정.신.차.려!!!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워싱턴주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 정보, 일상생활, 문화 차이 등을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이자 <엘리네 미국 유아식>, <엘리네 미국집> 책의 저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