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매장의 에이스
저희 세포라 매장이 디스트릭에서 계속 1위를 하거나, 혹은 늘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답니다. 그 이유는 매출 실적뿐만 아니라 세포라의 리워드 프로그램인 ‘뷰티 인사이더’ 가입률과 고객 설문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고객 설문 평가에서 항상 높은 점수를 받아내는 것은 바로 나나양이고, 그런 그녀의 필살기로 인해 몇 번의 해고 위기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었죠.
그런데 세포라 매장의 실적 평가에 있어서 고객 설문 평가보다 훨씬 더 중요한 항목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뷰티 인사이더 가입률입니다. 신규 고객을 리워드 프로그램에 더 많이 가입시킬수록 단골 고객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세포라에서는 이 뷰티 인사이더 가입에 주력하고 있고, 직원들은 미가입 고객들을 가입시키기 위해 막중한 부담감을 느끼며 일하고 있답니다. 모든 직원들의 실적을 한눈에 비교해 볼 수 있는 실적이니 당연히 부담이 될 수밖에요. 그리고 그 리워드 가입률을 매일매일 출력해서 업무일지 바인더에 꽂아두기 때문에 출근하자마자 제일 먼저 전날의 가입 실적을 확인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주 단위, 월 단위, 연 단위까지 종합 실적이 나온답니다.
그런데 지난 2023년에 주 단위, 월 단위, 연 단위 실적에서 계속 1위를 달리며 저희 매장을 살리는 데 큰 보탬이 된 에이스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 저였습니다!!!^^ 어쩌다 가끔 1위를 놓치는 날이 있기는 했지만, 거의 대부분은 제가 항상 1위를 하다보니 당연히 주 단위, 월 단위, 연 단위 실적까지 계속 제가 1위를 하게 된 거죠. 그리고 이 실적은 저희 매장이 디스트릭에서 1위를 하는 데 당연히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매장의 모든 직원들이 가입시킨 가입률을 모두 합쳐서 기록을 낸 것이니 저 혼자 이뤄내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희 동료들 모두가 열심히 노력한 결과죠.) 그래서 나나양의 필살기가 고객 서비스라면, 저의 필살기는 바로 이 뷰티 인사이더 가입 실적입니다. 아니, 청소인가……?
밥상 도둑 나나양
아무튼, 이 뷰티 인사이더는 직원 각자에게 지급된 ‘지브라’라고 하는 업무용 스마트 기기를 사용합니다. 자신의 고유 아이디로 로그인한 후, 이 기기를 통해 고객을 뷰티 인사이더 멤버쉽에 가입시키면 자신의 실적으로 올라갑니다. 직원들 각자 자신의 지브라가 있지만, 일하는 동안 계속 휴대하지는 않고 보통 계산대 옆에 놓아 두고 필요할 때 자신의 지브라로 가입 등록을 합니다.
그런데 가끔 기기를 헷갈려서 다른 직원의 지브라로 등록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땐 그 기기의 주인에게 네 아이디로 뷰티 인사이더 한 명 가입했다고 알려주고, 상대방 동료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죠. 자신의 지브라를 어디에 뒀는지 찾지 못해서 부득이 동료의 지브라를 사용할 경우에는 먼저 기기에서 로그아웃을 하고 내 아이디로 로그인해서 가입을 시킨 후, 바로 다시 로그아웃을 합니다. 그리고 동료에게 지브라를 잠시 빌려 썼으니 다시 로그인하라고 알려줍니다. 그게 매너죠. 그런데 보통은 그냥 동료 아이디로 가입시키고 동료에게 ‘땡큐’ 인사를 받는 게 대부분이에요. 개인 실적 스트레스가 있기는 하지만 내가 가입시키든, 동료가 가입시키든 결국 우리 매장의 실적에 +1이 되는 거니까 개인 실적에 너무 그렇게 전전긍긍하지는 않는 분위기예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나양과 제가 둘이서 클로징을 하게 된 날이었어요. 그날도 저는 뷰티 인사이더 가입을 이미 3개 정도 했었죠. 그리고 저녁식사를 마치고 매장으로 돌아와 손님 계산을 도와 드리는데, 뷰티 인사이더가 없다고 하시길래 바로 영업에 들어갔습니다. 나나양은 바로 옆 계산대에서 제가 가입 유도하는 걸 보고 있었어요. 손님은 결국 가입을 하셨고, 그분의 친구분도 같이 가입을 하면서 한꺼번에 두 명이 가입해 그날 하루의 실적은 5개가 되어 엄청 뿌듯했답니다.
뷰티 인사이더는 가입을 많이 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사실 가입률이 더 중요해요. 멤버쉽에 아직 가입하지 않은 손님이 4명이 왔는데, 4명을 다 가입시킬 경우 100%가 되고, 1명만 가입시키면 25%가 됩니다. 미가입 고객 10명을 응대하고 9명을 가입시키더라도, 미가입 고객 1명을 응대하고 그분을 가입시키면 100%가 되니 실적에는 더 도움이 되는 거죠. 그날은 제가 응대한 손님 5명 중 5명을 다 가입시켰기 때문에 가입률 100%를 달성해서 마음 속으로 ‘오늘도 열 일한 내 자신 칭찬해~’ 하며 밥값한 제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손님 두 분이 가시고 난 후, 나나양이 갑자기 생각난 듯, “오, 맞아! 너 저녁식사하러 갔을 때 내 지브라를 못 찾아서 잠깐 니 지브라를 썼는데, 내가 로그아웃하는 걸 깜빡했네. 미안!” 뭐??? 그 말은 제가 방금 전에 가입시킨 두 분의 뷰티 인사이더 실적이 제 것이 아니라 나나양의 실적으로 올라갔다는 얘기였어요. 1개 정도야 기분 좋게 ‘그럴 수도 있지~’ 하겠지만, 2개가 동시에 날아갔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좀… 많이 아깝더라고요. 그런데 뭐 어쩌겠어요. 일부러 그럴 것도 아니고…… 하며 체념하려는 순간, 아니 잠깐만!!!
아까 내가 고객 가입시킬 때 바로 옆에서 뻔히 보고 있었으면서, 그때는 아무 말도 안 하더니 왜 이제서야 그 말을 하는 거지??? 그리고 첫 번째 고객 가입시킬 때까지는 멍 때리고 있다가 미처 말을 못 했다고 하더라도, 두 번째 고객 가입시킬 때라도 나한테 말해줄 수 있었을텐데. 정말 그때까지 아무 생각이 없다가 가입 다 하고 나니까 갑자기 생각이 난 걸까? 그녀의 의도가 상당히 의심스러웠지만, ‘에이~ 그래도 설마!!! 아무리 그래도~’ 하며 이런 의심을 하는 제 자신이 되려 쪼잔한 것 같아서 그 일은 그냥 잊어버려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다가 마지막 휴식시간이 되어서 15분 휴식을 하고 돌아와서 혹시…? 하는 생각에 제 지브라의 로그인 아이디를 확인했는데, 아니 세상에!!! 마상에!!! 또 다시 나나양의 아이디로 로그인이 되어 있더라고요.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지브라를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만약 제가 로그인 아이디를 확인하지 않고, 이후로도 뷰티 인사이더 가입을 계속 했다면 그게 다 제 실적이 아니라 나나양의 실적으로 올라가는 거였잖아요! 와~~~ 진짜!!! 남이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 얹는 스킬이 남다른 건 알았지만, 남의 밥상 도둑질까지 할 줄은 몰랐네!!! 황당하고, 어이 없고, 괘씸한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계속 ‘설마~ 아니겠지…’를 마음 속으로 무한반복하다보니 일에 집중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다음 날, 예전에 한때는 나나양의 베프였던 D군에게 이 일에 대해 얘기해 봤어요. 그리고 그에게 물어봤죠.
“나나가 정말 실수로 로그아웃을 안 한 걸까? “
항상 조용하고 말이 없는 D군은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저에게 답을 해주더군요. 도리~ 도리~!!! 단 두 번의 도리질로요. 이날 이후로 저는 항상 제 지브라의 로그인 아이디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답니다.
매니저를 꿈꾸는 나나양
이런 나나양이 꿈꾸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매니저’ 포지션이었어요. 그동안 나나양이 저를 은근히 얕보며 자신은 저와 다른 레벨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자신은 매니저 레벨, 저는 그냥 파트 타이머), 갑자기 제가 리드 포지션으로 승진을 하자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어요. 그 후로 나나양은 매니저 포지션에 집착하기 시작했죠. 자신이 저보다 높은 레벨이 되려면 매니저가 돼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콜스 매니저에게 찾아가 새로 오픈하는 매장의 매니저 포지션을 자기에게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나나양의 말에 따르면, 콜스 매니저가 나나양에게 매니저 포지션을 약속했고, 다른 지역 콜스 매니저와 그 포지션을 위한 미팅을 잡아 놓겠다고 말했다며 당장이라도 매니저가 될 것처럼 말하더라고요. 그런데 1년이 지나도록 그 미팅을 했다는 말도 없고, 나나양은 여전히 저희 매장에서 파트 타이머로 일하고 있었죠.
그런데 그렇게 매니저가 되고 싶었던 나나양은 다른 지역의 세포라 매장 오픈 소식을 들었고, 다시 한번 콜스 매니저에게 세포라 매니저 포지션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것은 확실히 공식적인 요청이었는데, 저희 세포라 매니저가 저에게 와서 소근소근하더라고요.
“나나양이 ○○ 지점 매니저가 되고 싶다고 했대!!! (입을 삐죽거리며) 매니저가 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지만 한번 지켜보자고! 자기가 하고 싶다고 했으니 글쎄… 일을 하는지 안하는지 지켜보면 알겠지.”
저도 이번엔 나나양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뭔가 보여줄 각오인가 보다 했는데……. 상품 입고되는 날 상품 정리하기 싫어서 손님들과 수다 떨기, 매니저 있을 때만 일하는 척 하다가 매니저 없으면 일 안하기, 매니저가 직접 지시한 일도 안 했으면서 했다고 거짓말하기, 남이 다 해 놓은 일에 자기가 했다고 숟가락 얹기 등을 시전하며 매니저는커녕 모가지가 잘려도 시원찮을 짓을 계속 하고 있었죠.
결국 나나양은 매니저 포지션의 고려 대상은커녕 근무시간이 점점 줄어서 생활고를 겪어야 했답니다. 그래서 파트 타임으로 장을 대신 봐주는 인스타 카트 일을 시작했죠.
될 리는 없을 거야
그리고 몇 달 후 콜스 수퍼바이저들의 이동이 있었고, 그로 인해 콜스 수퍼바이저 포지션 두 자리가 공석이 되었습니다. 많은 콜스 직원들이 그 포지션에 지원했어요. 그런데 휴게실에서 콜스 직원 한 명이 저에게 오더니 이렇게 묻더군요.
“나나양이랑 △△양이 그 수퍼바이저 포지션에 지원한 거 알아?”
그 직원이 이 두 사람의 이름을 콕 짚어서 언급한 이유는, 나나양은 세포라에서, △△양은 콜스 매장에서 일 안 하기로 유명한 두 명이었거든요. ㅎㅎㅎ 제가 전혀 몰랐다고 얘기하자, “걔네들이 될 리는 없을 거야!” 이 한마디를 남기고 총총히 사라지더라고요.
나나양이 세포라에서 일을 안 하긴 하지만, 그래도 고객 서비스 만큼은 잘하니 콜스 수퍼바이저가 되면 청소 같은 일은 안 해도 되니까 그녀의 적성에 잘 맞아서 뽑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세포라 매장에서는 그녀가 콜스 수퍼바이저 포지션에 지원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나중에 물어보니 D군은 이미 알고 있었더라고요.), 콜스 직원이 알 정도면 이미 저희 매장에서도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거라서 나나양에게 말을 건네 봤습니다.
“너 콜스 수퍼바이저 포지션에 지원했다며? 오늘 누구한테 들었어. 면접도 이미 본 거야?”
“응, 세포라에서는 나한테 리드 포지션도 안 주고, 매니저 포지션도 두 번이나 요청했는데 안 줘서 빡쳤거든. 면접은 어제 봤고, 잘 본 것 같아. 내가 고객 서비스도 잘하니까 수퍼바이저 자격이 충분히 된다고 했어. 그래서 조만간 세포라 나갈 거야. 세포라 매니저는 나를 안 좋아해서 나한테는 기회조차 안 주잖아.”
나나양은 자신이 세포라에서 리드나 매니저 자격이 충분히 되는데, 단지 매니저가 자기를 안 좋아해서 승진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믿고 있어서 세포라를 벗어나 승진을 해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더라고요. 그리고 콜스 측에서는 나나양에게 수퍼바이저 자격이 충분히 된다고 말했다면서 그 포지션이 곧 자기 것이 될 거라는 긍정적인 확신에 가득 차 있었어요.
그녀가 세포라에서든 다른 어느 곳에서든 앞으로 더욱 성장해갈 수 있도록 진정한 충고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그동안 몇 번이고 있었지만, 제 충고를 고맙게 듣고 받아들일 캐릭터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고, 되려 그 말을 이상하게 부풀리고 와전시켜서 어떤 소문을 낼지 모르기에 전 그냥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는 말밖엔 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이틀 뒤, 드디어 콜스의 수퍼바이저 포지션 발표가 있었습니다. 두 명의 수퍼바이저와 한 명의 풀타임 포지션이 있었는데 그 세명의 이름이 게시되었을 때 든 생각은 바로 이거였어요. ‘역시, 될 사람들이 됐구나!’
그렇습니다. 나나양은 수퍼바이저도, 풀타임 포지션도 갖지 못했어요. 회사는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세포라 리드 포지션도, 매니저 포지션도, 수퍼바이저 포지션을 주지 않았어요. 열심히 일하지 않는 그녀를 자르지 않는 대신, 그녀가 원하는 것을 주지도 않았죠.
나나양은 이번 일로 인해 엄청나게 실망을 했고, 왜 자기는 안 되는건지, 남들은 다 아는 이유를 혼자만 몰라서 답답해 했습니다.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워싱턴주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 정보, 일상생활, 문화 차이 등을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이자 <엘리네 미국 유아식>, <엘리네 미국집> 책의 저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