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 사이에서 감정 싸움이 일어나면 중립을 유지하자. 나는 직장에 일하러 왔을 뿐이다. ©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민폐형 직원 B양
제가 세포라에 입사한지 3주쯤 되었을 때 두 명의 동료가 일을 그만 두었어요. 나중에 나나양에게 들은 얘기로는, 두 직원이 매니저와 성격이 잘 맞지 않아서 매니저를 정말 싫어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후 콜스 백화점에서 일하던 S양이 세포라로 이동해 왔고, 신입으로 B양이 입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B양의 근무 스케줄이 다 나온 상태에서 B양이 갑자기 입사를 철회하는 바람에 동료들의 스케줄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어요. B양의 공백을 메워야 하니 근무 시간이 늘어나고 쉬는 날에도 근무를 해야 했죠. 그래서 기존 직원들이 B양을 엄청 원망했어요. 그런데 2주 뒤에 B양이 또 마음을 바꿔서 입사를 하겠다고 해서 회사에서는 그녀를 채용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그래서 B양이 실제로 일을 하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렸죠. B양이 이렇게 입사 전부터 민폐를 잔뜩 끼쳐 놓으니 B양의 얼굴을 보기 전부터 그녀의 이미지는 이미… 말 안 해도 아시겠죠? 그런데 진짜 문제는 입사하고 시작되었습니다.

B양은 입사 후 단 한 번도 제 시간에 출근한 날이 없었어요. 일찍 오는 게 근무 시작 5분 후, 보통은 15분 후에 도착했고, 늦는 날은 30분씩 늦는 게 일상인데다가, 입사하자마자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결근을 했어요. 그러니 솔직히 말해서 좋아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죠. 특히 이런 상황을 직접 다뤄야 하는 매니저나 리드(lead) 뷰티 어드바이저는 더 짜증이 날 수밖에요. B양의 결근을 누군가는 메꿔야 하고, 그럴 때는 아무래도 더 많은 책임을 맡은 리드 뷰티 어드바이저가(가가양) 빵꾸난 스케줄을 커버해야 하니까요. 그래서인지 가가양이 B양에게 좀 차갑게 대했나 보더라고요.

어느 날 출근을 하니 B양이 푸념을 늘어 놓았어요. “사람들이 다들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 특히 가가양과 나나양은 나한테 너무 못되게 굴고, 자꾸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일을 시켜. 나도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안다고! 말 안 해줘도 아는데 자꾸 가르치려고 들어. 그래서 같이 일하기가 너무 힘들어. 나는 S와 너랑 일할 때가 제일 편해.”
제가 B에게 전혀 일을 시키지 않으니 당연히 저랑 함께 일하는 게 편하겠죠. S 역시 세포라로 이동해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신입이나 마찬가지라 B에게 일을 시킬 입장이 아니었고요. 게다가 S는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스타일이라 함께 일하기 편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가가양은 알아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일을 시키지 않았어요. 만약 가가양이 B양에게 이것 저것 일을 시켰다는 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나나양은 셀프 임명되신 비공식 매니저 아니겠습니까? 입사동기인 저도 나나양에게는 ‘아랫것’인데, 입사가 한참 늦은 막내 B양은 당연히 ‘한참 아랫것’이었죠. 그런데 자꾸 지각하고, 결근하고, 일 안하고 시간만 떼우는 B양을 우리의 비공식 매니저 나나님께서 좋아하시겠나요? 그러다 결국 나나양이 한바탕 하셨나보더라고요.

미국인 동료들의 고래 싸움
휴무 다음날 제가 출근을 했더니 B양이 너무 억울하고 일하기 힘들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또 하소연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죠. “어차피 여기 친목도모하러 온 거 아니고 일하러 온 거잖아. 그러니까 일하는 시간 동안 그냥 자기 할 일 찾아서 일만 하면 돼. 나도 그렇게 견뎠어.”
여러분도 아시죠? 저도 입사하고 한동안 그냥 일만 했잖아요. 그리고 매니저와 어색한 기류가 흐르던 기간 동안 저는 쉴 틈이 생기지 않도록 계속 일을 찾아 다니면서 하다가 퇴근 시간 되면 인사하고 바로 나와 버렸거든요. 그리고 B양에게 ‘제발 지각이랑 결근 좀 하지마!’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제가 말한다고 고쳐질 것 같지도 않아서 그건 그냥 마음에 담아 두었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와 B, 가가, 나나양이 다 함께 일을 하게 된 날이었어요. 가가양이 B에게 “이것 좀 해 줄래? 그리고 이거 끝나고 나면 저것도 좀 부탁할게.”라고 말했어요. 그러자 B양이 씩씩대며 저에게 오더니 가가양이 자기를 싫어하는 게 확실하다며, 자꾸 자기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킨다고 화를 내더라고요. 그 전에는 가가양이 어떤 뉘앙스로 말을 했는지 제가 직접 들은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 제가 직접 들어보니 가가양의 말투가 특별히 B양에게 차갑거나 명령조도 아니었어요. 가가양이 우리들의 보스이니 할 일이 있을 때 해달라고 부탁하면 당연히 하는 게 맞죠. 가가양의 말투는 평상시 저나 다른 동료들에게 하는 말투와 똑같은데, B양은 자기에게 이것 저것 시키는 게 싫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B양이 그동안 동료들에게 수차례 민폐를 끼쳐온 탓에 도둑이 제발 저리듯 자격지심이 더해져 좀 더 예민한 것 같았어요.

그런데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B양을 아주 모른척 할 수도 없었어요. 입사해서 겨우 일에 적응했는데, 힘들다고 그만둬 버리면 또 다른 사람을 구할 때까지 남은 동료들이 그녀의 몫을 커버하느라 또 다시 힘들어질테고, 그러니 잘 달래야 했죠. 그런 와중에 또 제 나이가 제일 많다보니 가가양과 나나양이 고충을 토로하는 것도 들어줘야 했어요. 그들이 스트레스 받는 이유를 저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저는 그 누구에게도 마음이 기울어서도 안 되는 입장이었어요. 왜냐하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까봐요. 어차피 그들에게 저는 이방인이잖아요. 자기들끼리 저렇게 싸우다가도 나중에 화해하면 저는 그들 사이에 끼지도 못할 만큼 서로 끈끈해질 수 있잖아요? 한국 새우가 미국 바다에 가서 살려면 미국 고래들 싸움은 피하는 게 상책일 거라는 생존본능이었죠.

매니저의 태도 변화
이 모든 일은 또 마침 저희 매니저가 다른 지역 매장 오픈 준비를 도와주러 몇 주간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어났어요. 웃긴 것은, 저도 매니저와의 관계가 껄끄러워서 출근하면 그냥 제 일만 하다가 퇴근해서 매니저가 몇 주 동안 자리를 비운 것도 나중에야 알았어요. ㅎㅎㅎ 그런데 몇 주만에 나타난 매니저가 출근을 해서는 대뜸 저에게 잠시 얘기 좀 하자며 저를 스탁룸으로 따로 부르는 게 아니겠어요? ‘헉!!!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사실 그 전에 나나양이 청소 안 하고 손님과 노가리만 깐다고 스탁룸으로 불려가서 혼나고(?) 온 걸 봤던 저로서는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습니다. 아… 제가 진짜… 중년의 나이에 일하면서 누군가에게 혼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그런 상황 안 만들려고 정말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알지 못하는 무엇이 매니저의 심기를 건드린 것일까요…?

저의 예전 글을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희 매니저 성격이 정말 특이해요. 그동안 일하면서 매니저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고 생각되는 굉장히 불편하고 모욕적인 에피소드가 몇 가지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이런 캐릭터를 만나본 적이 없어서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더라고요. 특별히 제가 잘못한 것도 없고, 저를 싫어할 이유도 없는데 말이죠. 특히 면접 때 저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셨는데, 막상 일을 시작하니 인사도 안 받아주는 매니저의 태도에 저는 정말 당황스럽고, 심적으로도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혼자서 한참 동안 속을 끓이다가 마침내 득도를 하게 됐어요. 매니저가 저를 싫어하거나 말거나, 저는 제 할 일만 묵묵히 하다가 집에 가면 끝! 견디다 못 견디면 그만두면 끝! 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워내고 더 이상 매니저의 태도에 신경 쓰지 않았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조상님들 비석에 절도 하는데, 눈에 멀쩡히 보이는 저 매니저한테 인사 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출퇴근할 때마다 인사 열심히 하고, 매니저와 부딪치는 일이 없도록 저만치 거리를 두고 지냈죠.
그러다 매니저의 출장으로 몇 주 동안 매니저와 만날 일이 없었으니 너무 좋더라고요. 그렇게 마음 편히 지내다가 갑자기 스탁룸으로 불려가게 되니 ‘드디어 나 짤리는 건가?’ 하며 잔뜩 쫄아서 쭐래쭐래 매니저를 따라갔습니다.

그러자 매니저가 제 마음을 눈치 챘는지, “너, 큰일 난 거 아니니까 걱정하지마.”라고 안심을 시키더군요. 그러고는 저에게 던진 첫 질문이, “내가 없는 동안 매장은 어땠어?”
‘아니… 이런 질문을 왜 저에게 하시는 거죠…?!?!?! 우리는 그런 사이 아니잖아요?!?!?!’ 뭘 알고 싶은 건지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더라고요. 고작 파트타이머인 저에게 이런 어마어마한 질문을 한다는 건, ‘이제부터 너를 나의 쁘락치로 임명한다’이거나 ‘내가 믿을 사람은 오직 너뿐이야’ 이런 건데, 저는 매니저가 없다는 사실도 모르고 일만 하던 바보 멍텅구리인데… ㅋㅋㅋ 저는 단지 우리의 스케줄이 어긋나서 며칠 못 보는 줄 알았지, 매니저가 다른 매장에 가서 일하고 있는지도 몰랐다고요. 그런 제가 매장 돌아가는 걸 눈여겨 봤을 리가 있나요?
그래서 저는 그냥 있는 그대로 대답했어요. “뭐…, 저는 제 할 일만 열심히 했습니다.”
그랬더니 뭐 특별한 일은 없었냐고 다시 묻는 겁니다. “뭐…, 특별한 건 모르겠고, B양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하니 매니저가 좀 챙겨봐줘야 할 것 같아요.”
그랬더니, B양이 직접 그렇게 말했느냐고 묻고, 그래서 너는 뭐라고 대답해줬냐고 물었어요. “어차피 우리는 모두 여기 일하러 온 거니까, 자기 일에만 집중하자고 했어요.”
그러자 매니저가 말했어요. “그래, 잘했어! 항상 그렇게 중립을 유지해! 너도 알다시피 다들 어린 애들이잖아. 어린 애들 싸움에 휩쓸리지 말고 너는 항상 균형을 유지해.”

직장생활에서 매니저의 조언을 마음에 새겨두자.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우잉?? 그 차갑고, 나한테 눈길 한 번 안 주고, 말 한마디 안 섞던 매니저가 왜 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요? 직원들 사이에 감도는 긴장감을 알아차린 것 같긴 했어요. 그렇다고 제가 원하는 답을 해준 것 같지는 않은데… 갑자기 저를 보호하려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뭘까요? 그날 스탁룸에서의 대화는 저걸로 끝이었어요. 그런데 면접 이후에 저를 차갑게 대하던 매니저는 이날 이후 저에 대한 태도가 다시 한번 돌변했답니다. 그 이유가 뭔지는 그때도 모르고 지금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날 이후로 매니저가 저에게 먼저 인사를 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인사를 할 때도 아주 잘 받아주고요. 심지어 퇴근할 때 저에게, “Have a good day!”라고 인사를 한다니까요?!?!?!?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저에게 수다를 떨기 시작했어요. 자신의 부모님 이야기, 형제들 이야기 같은 걸 저에게 조금씩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동안 너무나 차가운 시선으로 저를 지켜보기만 하던 매니저의 마음이 어떻게 이렇게 열리게 된 걸까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유가 있더라고요. 제가 모르는 사이에 곳곳에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있었다는 사실.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워싱턴주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 정보, 일상생활, 문화 차이 등을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이자 <엘리네 미국 유아식>, <엘리네 미국집> 책의 저자. [email protected]

1 COMMENT

  1. 검색하다 우연히 들어온 사이트인데 글 진심 개꿀잼이네요 다음이야기는 언제나오나요? 일하는 태도도 배우고감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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