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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생활기] 짜장면과 불닭면이 이어준 동료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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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생활기] 짜장면과 불닭면이 이어준 동료애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동료들과 맛집 투어를 하고 한국 식품점에서 과자와 음료 등을 골라주며 점점 친해졌다. ©스마일 엘리

직장에서의 동료 관계
제가 세포라에서 일을 시작할 때 두려운 마음이 많이 있었어요. 무엇보다 제가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제일 컸고, 그 다음으로는 직장 동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었어요. 새로운 직장에서 평탄한 직장 생활을 하려면 인간관계도 중요하잖아요? 직장 동료들과 가까운 친구가 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동료 정도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는 마음이었죠.
제가 처음으로 매장에서 일을 시작하던 날, 매장은 엄청 바빴는데 저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았어요. 다른 동료들은 이미 오픈 전부터 매장 디스플레이 작업을 하면서 일에 익숙해진 상태였지만, 저는 오픈 직후에 들어갔기 때문에 손님들에게 상품이 어디 있는지 알려드리는 것조차 버겁더라고요.
그래서 첫날은 눈치껏 인사나 열심히 하고, 쇼핑하는 손님들에게 상품 담을 바구니가 필요한지 여쭤보고 건네주는 일만 열심히 했어요. 제발 실수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요……. ㅜ.ㅜ
그렇게 긴장의 시간을 보내면서 제가 모르는 것이 있을 때마다 동료들에게 물어봤는데, 모두들 정말 친절하고 착하게 알려주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고맙다고 했더니 한 동료가 그러는 겁니다.
“당연하지! 그러라고 우리가 여기 있는 거잖아.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어머나, 날 도와 주기 위해 여기 있는 거라니!!! 너무 든든하고 고마운 말 아닌가요? 그렇게 며칠 동안 동료들에게 물어가며 또 혼자 공부하고 배워가며 점점 일에 적응했지만 여전히 거리감이 있는 상태로 일을 하고 있었어요. 다른 동료들끼리는 서로 조금씩 스몰톡도 하는 분위기였는데 저한테는 다들 친절하긴 하지만 사적인 스몰톡은 걸지 않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뭐, 제가 바쁜 시간에 일을 하기도 했고요.
아마 제가 20대나 30대 시절에 이런 느낌으로 일을 했다면 ‘이런 분위기 어색하고 싫다아~~!!!’ 하며 너무 신경이 쓰였을 것 같아요. 동료들 눈치도 봤을 것 같고요. 그런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미국 사회에 이민자로 살아가는 삶에 익숙해져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기 일을 하러 왔을 뿐, 주어진 시간 동안 내 일만 열심히 하고 가자!’ 하는 마음이 더 크게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일들 찾아서 하고, 제 일에 집중했어요.
제가 다시 직장인으로 일할 수 있게 된 이 기회가 너무나 소중하고, 또한 오랜만에 일을 하니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마치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의 큰 세상을 보고 신나서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것처럼 저도 하루하루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신나고 좋았어요.
그렇게 한 달 정도가 지나갔어요. 동료들과 별로 친해지진 못했지만 그래도 출근할 때마다 항상 모든 동료들에게 빅 스마일과 큰 소리로 오랜만에 절친을 만난 것처럼 반갑게 인사하기를 계속 했어요.

절친 모드로 급전환
그러던 어느 날, 조금은 한가해진 저녁 시간대에 일을 하는 날이었어요. 테스터 상품들 청소를 열심히 하고 있던 저에게 동료 한 명이 다가오더니 말을 걸더라고요. (편의상 동료들 이름을 가가, 나나, 다다, 라라 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친구는 나나양입니다.)
처음엔 그저 평범하게 “집이 어디야?”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서로 가볍게 신상털기를 하기 시작했죠. 그러다 제가 미국 오기 전에 일본에서 살았다는 말을 하자 갑자기 급흥분을 하더라고요.
“나 애니메이션 완전 좋아하는데! 나루토랑 원피스 완전 좋아해!!!”
“음, 나는 나루토랑 원피스를 격하게 좋아해본 적은 없지만, 우리집의 어른이 한 명이(남편) 오타쿠야.”
그 말을 하는데 갑자기 그 어른이가 좋아하는 나루토 테마의 라면집이 딱! 떠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말했죠.
“너 나루토 좋아하면 타코마에 있는 나루토 라면집 가봤어? 거기 인테리어가 나루토 테마인데, 맛도 괜찮아.”
그러자 나나양은 그동안 100미터는 되는 것 같았던 마음의 거리를 10미터로 좁히며 대답했죠.
“뭐? 나루토 라면집?? 안 가봤어. 같이 가보자! 가가도 같이. 가가도 나루토 라면집 좋아할 거야!!!”
아니, 이거 갑자기 너무 훅! 들어오는데??? 싶었지만 애니메이션에 대한 사랑이 넘쳐서 그러려니 하며 나중에 휴무가 같으면 시간 맞춰서 가보자고 했죠.
그렇게 나루토 라면집으로 시작된 스몰톡의 물꼬는 급기야 댐이 방류되는듯 그녀의 폭풍수다가 멈추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녀가 다시 흥분을 하며 말하는 겁니다.
“나, 그 완전 매운 한국 누들 좋아하는 거 있는데!”
“신라면?”
“불…… 불…… 뭐시긴데. 앞에 닭이 그려져 있고, 불댁???”
“불댁? 아~ 불닭면?”
그러자 물개박수를 치며 맞다고 불닭면 너무너무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남편과 제가 한 번 먹고 똥꼬로 화염을 분출하듯 퐈이어 드래곤을 출산했던 그 공포의 불닭면을 얘가 먹는다고?!?!?!
그날 불닭면 얘기로 나나양과 저는 마음의 거리를 1미터까지 좁히게 되었답니다.

너 짜장면 좋아해?
그리고 며칠 뒤 이번엔 가가양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는데, 제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으니 가가양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습니다.
“너는 정말 열심히 일하는구나. 너는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것 같아.”
“하하… 고마워.(내가 여기서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나나한테 나루토 라면집 얘기 들었어. 다음에 같이 가자.”
“너도 아시안 음식 좋아해?”
“응, 나는 일반 라면보다 불닭면이 더 좋아. 그런데 나 한국 음식 중에 진짜 맛있게 먹은 게 있는데……, 짜장면이었나~?”
우잉~??? 너는 또 짜장면을 어디서 먹어본 거뉘?!?!?!?! 순간 너무 신기하고 반갑더라고요.
“너 짜장면 좋아해? 나도 짜장면 완전 좋아해! H마트에서 먹은 거야?” (저는 이 동네로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짜장면은 H마트에서만 파는 줄 알았어요.)
“아니, 씨애틀에서 먹었어. 진짜 진짜 맛있었어! 또 먹고 싶은데 씨애틀까지 갈 일이 없어.”
“H마트 안에도 짜장면 있어. 다음에 같이 먹으러 가자!”
“아, 정말??? 다음에 꼭! 꼭! 같이 먹으러 가자~!!!”
너무 신나 하는 가가양을 보니 내가 사회 생활을 안 하는 동안 K-Food의 흐름이 이렇게 바뀌었구나 싶었네요. 예전에는 ‘한국 음식’ 하면 다들 불고기? 아니면 코리안 바베큐? 이랬는데, 이제는 불닭면과 짜장면이 대세라니!

그리고 얼마 뒤 신입으로 들어온 다다양과 처음으로 일을 하게 된 날. 서로 소개를 마치고, 제가 한국 출신이라고 하니까 그녀가 갑자기 반색하며 말하는 겁니다.
“나 한국 음식 너무 좋아하는데! 짜장면이랑 불닭면 완전 좋아해!!!”
이 말을 듣자 ‘아, 얘네가 다 같이 짜장면을 먹으러 갔구나. 다 같이 친구인 거구나.’ 싶더라고요.
“너 짜장면 씨애틀에서 먹었지?”
“응.”
“너 그 짜장면 가가랑 먹었지?”
“아니?”
앗, 감으로 시작한 탐문수사 실패!!! ㅋㅋㅋ 그러나 짜장면과 불닭면 덕분에 동료들과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그렇게나 멀게만 느껴졌던 동료들과의 벽이 허물어져 한층 더 가까워 질 수 있었어요.

그리고 7월 중순에 제가 보라색 머리로 염색을 하고 출근을 했던 날. 갑자기 웬 여자 두 명이 마치 납치라도 당하는 듯 “꺄아아아악!!!!!!” 하길래 저도 너무너무 놀란 나머지, “어우, 깜짝이야!!!!” 하며 순식간에 한국말이 튀어나왔어요. 그러고는 뒤를 돌아봤는데 가가양과 나나양이 제 머리를 보고 꺅꺅거리며 소리를 지른 거였어요. 그런데 제가 또 한국어로 “어우, 깜짝이야!!!” 했던 게 너무 웃겼는지 방금 뭐라고 한 거냐고, 그거 한국어냐고 자지러지게 웃지 뭐예요?!?! 머리 너무 예쁘다고 가가양과 나나양 둘이서 난리 난리!!! 아니, 머리가 예쁜데 왜 나를 껴안고 난리냐고요!!!! (그런데 나는 싫지가 않았다….? ㅋㅋㅋ)

K-Food로 다진 동료애
그러다 갑자기 빨리 나루토 라면 먹으러 가자고 하다가, 또 샤브샤브도 먹으러 가자고 하더니, 결국 BBQ 양념 통닭 먹으러 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가가양과는 아직 서로 스케줄이 맞지 않아 같이 뭘 먹으러 가지 못했지만, 나나양과는 BBQ 양념 통닭도 먹고, 나루토 라면집에 가서 새우튀김 덮밥과 돈까스도 먹고, 몽골리안 바베큐도 먹었네요.

워싱턴주 타코마에 있는 나루토 테마의 라면집 내부 모습 ©스마일 엘리
동료와 함께 아시안 음식을 먹으며 동료애를 돈독히 다지게 되었다. ©스마일 엘리

어느 날은 가가양이 또 어디서 떡볶이를 먹어 봤는지 너무 맛있다며 떡볶이 사러 H마트에 함께 가자고 하길래 저희 집에 있던 덕복희 여사 떡볶이를 기꺼이 나눔해 주었습니다. 불닭면과 짜장면 덕분에 동료들과 더욱 더 친해지게 되었고, 그 이후로 가가양과 나나양은 심지어 제가 출근하고 퇴근할 때마다 꼭 안아주면서 인사를 해요. 그리고 다다양은 공짜로 베이비시터 해줄테니까 남편과 데이트 시간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하더라고요!
K-Food 덕분에 동료 관계도 원만하게 잘 풀린 것 같지 않나요? 우리 대한민국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워싱턴주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 정보, 일상생활, 문화 차이, 여행기 등을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이자 <엘리네 미국 유아식> 책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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