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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삶] 얼굴 반찬 – 공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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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삶] 얼굴 반찬 – 공광규
밥상에 맛있는 얼굴 반찬 올리고 밥 먹자. ©kormedi

얼굴 반찬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 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 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공광규 (1960~ ) 충남 청양 출생. 1986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대학일기』,『지독한 불륜』,『말똥한덩이』등이 있다.
신라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수상.

시 해설
돈과 경쟁으로 요약되는 자본주의는 핵가족화를 넘어 가족의 해체를 낳고 있습니다. 여럿이 모여 밥 먹을 기회도 거의 없고, 그래서 가족끼리 부딪히며 사는 재미도 없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가족이 모두 흩어져 돈벌이를 하느라 정신없이 허덕이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입시경쟁에 내몰려 어려서부터 사설학원에 돈을 퍼주러 다닙니다.
그러니 집안에 식구들이 모일 기회가 적고, 인생에 재미가 없습니다. 사는 재미가 있어야 행복하고 행복해야 성공하는 인생인데, 문제가 심각합니다.
핵가족화의 결과는 식탁에서 전승되는 전통문화와 가족공동체의 정신을 단절시킵니다. 이렇게 오래 가다 보면 민족도 국가도 정체성을 잃어버릴 것이 뻔합니다.
건강한 식탁은 건강한 가정과 건강한 사회, 건강한 국가를 만드는 기초입니다. 가족과 공동체를 중시하고 인간중심의 경제를 설계하고 추진함으로써 식탁에 맛있는 ‘얼굴 반찬’ 올리고 밥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임문혁
시인, 교육학박사, (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귀.눈.입.코』 등이 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