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시작
오늘은 미국의 태권도 가문으로 잘 알려진 ‘리 브라더스(The Six Lee Brothers)의 둘째이자, 캐리에 위치한 K.S. LEE 태권도장의 그랜드 마스터 이강석 관장(마스터 리)을 소개하고자 한다.
전 세계를 통틀어 여섯 형제가 태권도 그랜드 마스터로서 도장을 운영하는 집안은 유례가 없다. 특히 여섯 형제가 미국 태권도 국가대표팀 감독, 코치, 국제심판, 품새 챔피언 등으로 활약하는 동시에 지역사회에서 대학교수, 시의원, 영화배우, 한인회 임원 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한국 문화와 태권도 정신을 널리 알리는 데 힘써 왔다는 점에서 리 브라더스의 역사는 한인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할 수 있다.
리 브라더스의 전설은 1976년 맏형인 이현곤 사범이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시작되었다. 초창기에 이민자의 설움을 많이 겪었지만, 다행히 버지니아의 헌던(Herndon)에 태권도장을 열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동생들을 차례로 미국으로 불러들였다. 이현곤 사범에게 태권도장 운영방법과 노하우를 배운 동생들은 더 넓은 곳에서 꿈을 펼치기 위해 노스 캐롤라이나에 둥지를 틀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이강석(Cary), 이준혁(Knightdale), 이병석(Greenvile), 이상호(Burlington), 이정호(Raleigh) 사범이 차례로 도장을 열며 ‘리 브라더스’라는 브랜드가 탄생하게 되었다.
여섯 형제들의 태권도 단수를 합치면 총 40단이 넘고, 이들이 직접 운영하거나 영향력 아래 운영되는 도장이 미국 전역에 100여개가 넘는다. 또한 매년 ‘리 브라더스컵 태권도대회’를 개최해 각 지역에 흩어져 있던 형제들과 제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정기적인 교류의 장을 펼친다. 리 브라더스컵 태권도대회는 일반 대회와 달리 상대를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겨루며 우정을 나누는 태권도 축제이다. 이들은 이현곤 사범을 중심으로 지난 4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태권도가 미국 땅에 뿌리 내리는 데 크게 기여해 왔고, 또한 지역사회에서 존경받는 롤모델이자 한국 문화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문화사절단 역할을 수행하며 태권도를 통해 얻은 것을 지역사회에 봉사와 자선활동으로 보답함으로써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NC의 첫 번째 태권도 시민
이강석 마스터는 어린 시절부터 운동에 소질이 있었다. 그래서 7살부터 태권도를 시작해 11살에 1단을 땄다. 이어 유도, 레슬링, 합기도 등 다양한 운동을 배우며 무술에 대한 관심을 넓혀갔다. 그리고 17살에 태권도 블랙벨트와 합기도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얻었다.
그는 아버지를 닮은 그의 성향 덕분에 학창시절부터 학생회장을 도맡아 하며 정치가가 되려는 꿈을 키우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사의 정치적 격변기를 지나며 가세가 휘청였고,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학업을 지원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20대 중반이던 그의 어깨에 놓여졌다. 대학에 다니던 동생의 학비를 대기도 만만치 않았고, 게다가 동생들이 5명이나 되었다. 그는 먼저 미국으로 간 이현곤 사범과 상의 끝에 동생들을 미국에서 교육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동생을 먼저 유학 보낸 후 자신도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때가 1986년이었다. 그 후 이강석 마스터는 어린 시절 꿈꾸던 정치가의 길 대신 태권도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현곤 사범에게 태권도장 운영방법을 배운 후 이듬해인 1987년 10월, 노스 캐롤라이나 캐리에 ‘K.S. LEE Martial Arts Academy’를 열고 태권도와 합기도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캐리에 도장을 열면서 그는 이 지역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는 다짐을 했고, 지금까지 35년 동안 다양한 활동을 통해 그 결심을 실천해 왔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의 사랑하는 아내와 두 딸들이 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었다.
이강석 마스터는 어린 아이들에게 태권도와 태권도 정신을 가르치는 것을 특히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트라이앵글 지역의 여러 학교와 YMCA 센터 등에서 다양한 학생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태권도 수업 첫 시간에는 늘 태권도인의 10가지 행동 원칙을 가르쳤다.
1. 나라에 충성하라.
2. 부모를 존경하라.
3. 부부는 사랑하라.
4. 형제는 우애를 가져라.
5. 친구에게 신의를 지켜라.
6. 어른을 공경하라.
7. 사제간에 신뢰를 쌓아라.
8. 살생은 가려 하라.
9. 싸울 땐 물러서지 마라.
10. 한번 시작한 일은 끝을 맺어라.
이 첫 시간의 수업으로 많은 아이들의 행동이 달라졌고, 깜짝 놀란 미국 학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와서 온 가족이 같이 운동을 하기도 했다.
이강석 마스터는 또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장애아동을 돕는 일에도 힘써 왔는데, 태권도가 신체 단련은 물론 자신감, 자존감, 긍정적 태도, 강인한 정신력을 기르는 데도 매우 효과적인 운동이기 때문이다. 문제아동들은 보통 자존감이 낮아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 태권도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존중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에 자존감 회복에 많은 도움이 된다. 또한 장애아동들은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태권도를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현할 수 있음을 깨닫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런 활동의 일환으로 그는 아픈 아이들의 꿈을 이루어주는 Make-A-Wish Foundation과 Duke Childrent’s Hospital을 후원하고, 불우청소년돕기 태권도시범대회를 개최하였으며, NC의 스포츠 비영리단체인 NCAS를 비롯해 많은 태권도 관련 행사를 지원하였다.
그의 이런 활동에 대한 반향으로 캐리 시에서 그에게 “Thanks from Cary” 상을 수여하였고, 당시 캐리 시장이었던 Koka Booth가 이강석 마스터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며 “노스 캐롤라이나의 첫 번째 태권도 시민(North Carolina’s First Citizen of Tae Kwon Do)”이라고 칭하였다. 이 외에도 “Honorary Citizen of Fayettevill”, “Honorary Mayor of Clinton” 상을 받으며 지역사회에 좋은 일을 하고자 했던 그의 노력과 공로를 인정받았다.
미국 태권도 국가대표팀 지도자
태권도 지도자로서 이강석 마스터의 경력은 대단히 놀랍다. 그는 세계태권도연맹 회장이자 IOC 부위원장으로 태권도의 세계화에 이바지했던 김운용 회장과 부자지간 같은 친분을 유지하며 태권도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일에 동참했다.
그는 미국 태권도 국가대표 선발전과 US 오픈 태권도 챔피언십대회에서 국제심판으로 활약했다.
이어 199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태권도대회와 1993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태권도대회 미국 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그리고 1994년 한국에서 열린 KBS컵 국제태권도대회, 1995년 일본에서 열린 SNK컵 오픈 챔피언십대회와 필리핀에서 열린 제12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미국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1994년에는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기 위해 IOC 총회가 열리는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 김운용 회장을 돕기도 했다.
또한 아프리카에 위치한 가나, 기니,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콩고공화국 등 여러 나라에서 태권도 국가대표팀 선수들을 교육하였다.
1992년 걸프전이 일어났을 때는 훼잇빌의 포트 브렉(Fort Bragg)에서 곧 전쟁에 투입되는 병사들에게 태권도와 합기도 기술을 가르쳤고, 모스크바와 레닌 그라드, 상트 페테르부르크 등에서 소련의 육∙해∙공군 병사들에게 태권도를 지도하기도 했다. 이런 국제적인 경험은 태권도 지도자로서 최고 수준의 기술을 연마하고 제자들에게 높은 동기를 부여하는 좋은 자원이 되었다.
또한 이강석 마스터는 태권도를 배우는 학생들이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에서 태권도 정신의 뿌리와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문화교류 행사를 기획하여 한국과 소련 등을 여러 차례 상호방문하였다. 그의 학생들 중 다수가 미국이나 NC를 떠나본 적이 없었지만, 이런 문화교류 행사를 통해 다른 나라를 방문하여 그 나라 사람들을 만나고 그 나라 문화를 체험함으로써 자신들이 “세계 시민”임을 깨닫도록 도왔다. 또한 학생들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거나 다른 나라 방문객들을 맞이할 때 자신들이 곧 미국과 NC와 이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사람임을 인식하고 말과 행동 하나에도 큰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이런 수많은 도전과 빛나는 성취 덕분에 이강석 마스터는 세계적인 태권도 잡지인 의 1996년 1월호 표지를 장식했고, 2005년도에는 ‘올해의 지도자(Instructor of the year)’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으며, 2017년에는 ‘랄리의 베스트 무술 지도자(Best Martial Arts Teachers in Raleigh)’로 선정되었다.
또한 NC와 세계 여러 나라의 TV 쇼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였고, 미국과 해외 신문에도 자주 소개되었다.
그리고 태권도 지도자로서의 탁월한 실력과 경험 덕분에 듀크대학교에서 정규교과 과정으로 태권도를 가르치기도 했다.
한국 아이는 태권도를 시켜라
그가 한국인 부모들에게 특히 강조하는 말이 있다. “한국 아이는 무조건 태권도를 시켜라.”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태권도를 하면 아이들의 기가 살아나 자신감이 생기고, 학교생활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한국 아이들 중에는 덩치가 큰 백인이나 흑인 아이들 사이에서 기가 죽은 모습을 종종 보게 되는데, 한국 아이들이 태권도를 하면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고 주변에서도 함부로 대하지도 않게 된다. 더욱이 한국 아이들이 태권도를 하는 것을 매우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친구들을 사귀기도 쉬워진다.
둘째, 태권도장 안에서 몸으로 익힌 태권도 정신을 도장 밖에서도 똑같이 실천하도록 교육하기 때문에 가정에서 더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부모를 존중하며 학교에서도 집중력과 끈기를 가지고 공부할 수 있는 정신적, 신체적 준비를 갖출 수 있게 된다.
특히 5~11세 사이의 어린 아이들이 태권도를 배우면 지도자의 가르침을 그대로 흡수하기 때문에 그것을 바탕으로 십대 시절을 훨씬 더 잘 보낼 수 있다. 또한 어린 시절에 신체적, 정신적 단련을 해본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 신체적으로 더 건강하고 사회적으로도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고 신뢰하며 더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의 학부모들은 이강석 마스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젠틀하면서 동시에 단호해요. 그래서 아이들이 그를 무척 사랑하죠. 그는 단지 무술인이 되기보다는 자기 수양과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강조합니다.” -Kathy Dusto
“캐리에서 누구에게라도 무술하는 곳을 물어보면 어김없이 ‘마스터 리’의 도장을 일러주며 적극 추천할 겁니다. 그는 지역사회에 매우 훌륭한 영향을 끼쳤고, 우리도 그 영향을 받은 가족 중 하나입니다.” -Marty Cosby
K.S. LEE 태권도장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 nctkd.com을 참고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