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의 불통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창 2:24)” 시작한 결혼은 해피엔딩의 만화라기보다는 온갖 장르의 영화가 된다.
각자의 기대대로 행복한 순간도 많지만, 때로는 복수극이 되기도 하고, 액션물로 변하기도 하며, 스릴러로 발전하는 수도 있다. 인생에서 예기치 못한 복병들을 만나면서 가정이 전쟁터로 변하는 것이다. 결혼을 너무 비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스위트 홈일 줄 알았던 가정이 전쟁터로 변하면서 문득 부부들은 묻는다. “왜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을까?”
자녀들과의 불통
자녀들과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싫어!”라는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품안에 자식’이라는 옛말이 현실로 다가온다. 미운 짓은 4살, 미국식 나이로 표현하자면 ‘terrible 2’부터 시작된다. 어릴 때는 그렇게 착하고 말 잘 듣던 아이가 “나 좀 내버려 둬! 엄마 아빠는 아무것도 이해못해!” 하며 방문을 닫아 거는 사춘기가 되면 부모로서 스스로에게 자문하게 된다. “언젠가부터 내 아이와 말이 안 통하기 시작했을까?”
내가 잘 알아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이유 중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어느 새 듣는 법을 잊었다는 것이다. 부부가 긴 세월을 함께 살다보면 착각을 하게 된다. 나는 내 배우자를 잘 안다고. 그러면서 내 가족의 심정이나 생각을 들어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점점 멈춰 버리게 된다. 왜? 다 아니까, 뻔하니까.
문제는 나는 내 가족을 다 아는데 내 가족은 나를 모른다는 느낌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이제 듣기보다는 나의 서운함을 말하며 나를 이해시키려고 애쓰기 시작한다. 계속 말하다보면 내 배우자나 자녀들이 내 생각에 도전하거나 대들기도 하는데 그러면 언성이 높아지거나 아예 귀를 막아버린다. 이처럼 꽉 막힌 대화는 상대를 이해하기보다는 설득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때로는 먼저 들으라는 권유를 되새기며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하며 대화의 문을 다시 열고자 시도한다. 그런데 문제는 “하지만……,” 하면서 내 이야기와 주장으로 방향을 틀 때 생긴다. 그러면 이전에 내가 상대를 이해하고자 했던 좋은 의도는 금방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상대를 설득하는 일은 상대를 충분히 이해한다는 느낌이 전달된 후에만 가능하다.
공감의 기술
상대방과 대화의 문을 여는 데에 가장 중요한 기술이 있다. 대부분의 대화소통에 관계된 서적과 글에서 수도 없이 언급되는 ‘공감 empathy, active listening’의 기술이다.
공감은 격한 감정의 불을 끄는 소화기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관계를 더욱 더 깊고 성숙하게 만드는 유산균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공감은 싸움의 기술이기도 하지만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사회성을 발달시키는 핵심 기술이기도 하고, 감성지수(EQ)를 높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상담자를 훈련할 때 가장 많이 강조되는 상담의 기술이기도 하다.
‘구나’ 공감
공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공식은 바로 ‘감정의 단어’이다. 말하는 사람의 내용에 따라 상대의 감정을 읽어주는 말을 추임새로 넣어주는 것이다. “그래, 많이 화났겠구나…. 자꾸 늦으니까 열 받았겠구나…, 속상했겠구나…” 이런 ‘구나’ 공감은 마치 터지기 직전인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상대의 분노를 서서히 가라앉혀준다. 이것이 바로 ‘구나’ 공감의 위력이다. 상대의 감정과 마음을 읽어주는 말의 힘이다.
아내가 “자기, 나 요즘 왜 이렇게 피곤한지 모르겠어.” 라고 할 때, “그래, 요즘 애들 키우고 살림하느라 힘들지.” 라는 공감의 한마디는 마술처럼 아내의 얼굴을 활짝 피어나게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남편들은 공감 대신 ‘해결책’을 제시한다. “운동을 안 하니까 그렇지!”
주일 오후에 교회에서 돌아온 아내가 “김 집사는 왜 나만 보면 트집인지 몰라!” 하며 투덜거린다면, “속상했겠네.”가 먼저다. 그런데 많은 남편들은 “당신이 뭘 잘못했겠지….” 한다.
공감 능력 제로
이것은 비단 남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가 넘어져 무릎에서 피가 나서 우는데, “아이고, 아프지?” 하는 공감 대신 “엄마가 뛰지 말랬지!” 하며 윽박지르는 엄마들도 많다. “애들이 나를 따돌려.” 하며 힘겨워 우는 아이에게 “얼마나 소외감 느꼈을까?” 하며 위로하기보다는 “그애들, 질이 안 좋아. 같이 놀지마!” 하며 관계를 끊는 방법부터 가르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맞장구를 쳐주면 뻔한 얘기를 계속 할까봐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맞장구를 안 쳐주면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 할 것이다. 상대가 내 기분을 이해하고 내 편을 들어줄 때까지 계속 설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공감의 가정
결론과 해결책은 자신의 입에서 나와야만 진짜 해결책이 된다. 옆에서 쥐어주는 결론은 결코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다. 상담을 할 때 섣부른 ‘조언’이 거의 쓸모가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스스로 해결책을 찾도록 도와주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먼저 가슴에 가득한 감정의 찌꺼기를 쏟아내고 이성적인 마인드가 제자리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감정을 쏟아 비워내게 하는 지름길이 바로 ‘공감’이다.
사랑하는 배우자에게, 자녀에게, 오늘은 ‘구나’ 공감을 해보자. “힘들었겠구나, 속상했겠구나, 열 받았겠구나, 외로웠겠구나, 아팠겠구나, 쓸쓸했겠구나, 신났겠구나, 즐거웠겠구나”를 해보자. 사랑을 꽃피우는 데에는 설득보다는 이해가 훨씬 더 좋은 거름이다. 마음을 읽어주는 추임새는 내 가족을 춤추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