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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칼럼] 가정의 시작은 떠남에서부터 –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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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칼럼] 가정의 시작은 떠남에서부터 – 2편
정서적으로 독립이 되어야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 ©design Picsinc
심연희 대표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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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로부터의 심리적 독립

지난 호에 이어 새롭게 시작하는 가정을 위한 첫 번째 단계인 ‘떠남’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자.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라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제시한 떠남의 원리 중, 지난 호에서는 경제적 독립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떠남의 두 번째 의미로 부모로부터의 심리적, 정신적 독립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다시 말해 부모로부터 받은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부부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그 상처의 그늘에서 어떻게 벗어나는가 하는 문제이다.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두 사람이 하나가 되었지만, 부부의 역동(psychodynamics)을 가만히 살펴 보면 두 사람이 아닌 여섯 사람이 함께 사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신랑과 신랑의 부모, 그리고 신부와 신부의 부모가 함께 살면서, 어릴 때 있었던 가족의 역동을 현재에 또 다시 반복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자신의 부모와 닮은 배우자

어떤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자신의 부모, 특히 부정적인 특징을 가진 부모를 닮은 배우자를 만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통계적으로 얼마나 정확한 이론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실제로 상담소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아내나 여자 친구가 끔찍하게도 싫어했던 자기 어머니를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혹은 매일 술에 취해 살았던 친정 아버지처럼 자신의 남편이 컴퓨터 게임이나 마약에 중독되어 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굳이 자신이 그리 싫어했던 부모와 닮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일까? 이런 현상에 대해 헨드릭스 박사는 ‘우리가 어릴 때 미처 끝내지 못한 일(Unfinished business)’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바로 ‘내게 상처 주었던 부모를 고치는 일’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슷한 배우자를 만나 못다한 일을 마무리짓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현재의 관계를 통해 치유받고자 하는 욕구이지만, 사실은 그 상처를 현재의 관계에서 계속 반복하며 오히려 상처가 덧나는 경우도 많다.

쉽게 상처를 받는 아내

S양은 남편과의 잦은 싸움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하루 종일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씨름을 하다보면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돌아올 때쯤이면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남편에게 화가 났다. ‘내 인생은 뭔가, 내가 애들 똥기저귀나 갈려고 돈 들여 공부했나’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그 날은 어김없이 남편에게 비난의 화살이 날아갔다.

남편의 어떤 말에 그렇게 화가 나는지 물으니 S양은 “오늘 당신 뭐했어?”라는 말이라고 했다. 남편이 집에 발을 들여 놓으며 “당신, 오늘 뭐했어?” 라고 물으면 그 말이 “당신 오늘 뭐했길래 집안 꼴이 이 모양이야?”라고 들렸다. 사실 남편은 그냥 관심을 보이고 싶어 다정하게 물어 본 말일 수도 있는데, 아내는 그 말에 상처를 받았다. 나쁜 뜻이 전혀 없는 가벼운 물음에도 S양은 “나 정신없는 거 안 보여? 당신이 애를 한번 봐줬어, 청소를 해줬어?”하며 공격 모드로 돌아섰다.

과거의 상처와 동거 중

반복되는 갈등의 뿌리를 찾는 과정에서 S양은 딸만 있는 가정의 큰딸로 태어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을 못 낳아서 대를 끊어 놨다는 할머니의 비난에 어머니는 큰딸을 어느 아들 부럽지 않게 보란 듯이 잘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내세울 것 없는 집안에서 큰딸에 대한 기대가 너무 높았고 S양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해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에 늘 눌려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대와 요구는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처럼 느껴졌고 자신은 항상 부족한 존재로 느껴졌다. 부모의 비현실적인 기대를 채울 수 없었던 그녀의 마음은 항상 패배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자존감이 낮아지면서 남들이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받곤 했다.

“오늘 뭐했어?”라는 남편의 말은 “너는 대체 오늘 한 일이 뭐냐?” 라고 하시던 부모님의 목소리와 겹쳐졌다. “애들이 왜 이리 극성이냐?”라는 남편의 푸념은 “너는 대체 뭐 하고 사는 거냐, 애 하나 똑바로 못 키우고…….” 라는 부모님의 비난을 연상시켰다. S양은 자신의 가정에서 남편과 아이들뿐만 아니라 친정 부모님의 비난의 목소리와도 함께 살고 있었다. “너는 뭘 해도 부족해.“라는 어릴 때의 메시지를 지금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계속 듣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느꼈던 분노와 서운함과 부담감을 이제 부모님의 자리를 대신한 남편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자기 남편도 늘 비판적이었던 자신의 부모님과 다를 게 없다고 절망하면서. 남편은 어느 새 자신이 미워하던 친정 부모님과 꼭 닮아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정서적으로 ‘부모를 떠나’는 것은 과거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정서적인 독립은 이제 부모의 문제, 혹은 부모와의 갈등이 내게 그렇게 큰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부모를 사랑하고 잘 섬기지만, 그 당시 현실에서 생긴 상처를 계속해서 곱씹지 않는 ‘건강한 분리’를 의미한다.

부모와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Unfinished business)는 그것을 대면하고 넘어서고 치유받는 과정을 거쳐야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내가 치유되어야 내 배우자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다. 내가 나의 부모로부터 정서적으로 진정한 독립성을 확립할 때 비로소 과거의 영향에서 벗어나 내 배우자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배우자는 어쩌면 지금 억울한 오해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모님이나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받았던 과거의 상처가 현재의 내 삶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과거와 현재를 분리하지 못하는 나의 잘못 때문에 나의 배우자는 내게 상처주었던 과거의 어떤 사람으로 매도되고 부당한 취급을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성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