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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나들이] 현대 조각의 창조자 로댕의 삶과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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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나들이] 현대 조각의 창조자 로댕의 삶과 작품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로댕 미술관 (구 비롱관) ©Klook
박영진 NC 미술관 안내원 [email protected]

NC 미술관의 로댕 작품들
‘로댕’ 하면 누구나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 조각상을 떠올릴 만큼 로댕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조각가이다. 20세기 현대 조각의 창조자로 평가받는 로댕의 뛰어난 예술성과 천부적인 재능은 조각에 생명력과 감정을 불어넣어 사실적이고 생생한 묘사를 가능하게 했다. 이렇게 유명한 로댕의 청동 작품을 NC 미술관은 운 좋게도 무려 30점이나 보유하고 있다. 서관 건물과 서관 밖의 야외 공원에 아주 근사하게 전시되어 있다.

조각의 기본적인 표현 기법에는 크게 소조와 조각 기법이 있다. 소조 기법은 점토를 덧붙여가며 작품을 완성하는 방법이고, 조각 기법은 목재나 석재를 깍아가며 완성하는 방법이다. 미켈란젤로 이후 조각가들이 주로 소조 기법으로 작품을 제작했기 때문에 조각 기법이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로댕이 조각 기법으로 작품을 제작하면서 침체된 조각 예술을 부활시켰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로댕 자신은 주로 점토를 이용한 소조 기법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그런 다음 로댕은 자신의 조수인 부르델(Antoine Bourdelle, 1861-1929)에게 자기가 만든 모형을 대리석으로 조각하게 하는 방법으로 많은 석조 작품을 남겼다. [참조 1]

작품명 : 지옥의 문(The Gates of Hell)
작가명 : 오귀스트 로댕 (Auguste Rodin), 프랑스 태생 (1840-1917)
제작년도 : 1880-1917, 1928년에 루디에(Rudier) 주조공장에서 주조
규격 : 250 x 157 ½ x 33 ½ in. (635 x 400 x 85 cm)
재료: 청동
소장 : 로댕 미술관

필생의 걸작, 지옥의 문
로댕은 1840년 파리 빈민가에서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고, 14세때부터 조각가로서의 기초를 닦기 시작했다. 그후 아버지의 퇴직으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진 로댕은 젊은 시절에 갖가지 부업을 하였고, 석고를 살 돈이 없어서 흙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연이은 미술학교 입학의 실패와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따랐던 둘째 누이의 자살로 인해 큰 충격을 받은 로댕은 조각가의 길을 포기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수도원의 에마르 신부는 로댕이 조각 활동을 다시 시작하도록 설득하며 정신적, 물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로댕은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The Dying Slave)>에서 영감을 받아 1880년에 <청동시대(The Age of Bronze)>를 제작해 대회에 출품하였고, 그 작품이 입상하면서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 후 프랑스 정부로부터 새로 건립하는 장식미술관의 문 작업을 의뢰받게 되었다. 언제나 미켈란젤로를 꿈꾸었던 로댕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The Last Judgement)>에 있는 인물들, 그리고 그가 좋아했던 단테의 『 신곡(Divine Comedy)』에서 영감을 받아 인간의 고통을 다룬 <지옥의 문(The Gates of Hell)>을 작업하기로 결정하였다.

작품명 : 세 그림자(The Three Shades)
작가명 : 오귀스트 로댕 (Auguste Rodin), 프랑스 태생 (1840-1917)
제작년도 : 1886년경에 모형 제작, 1901년경에 확대, 1981년에 로댕 미술관에서 주조
규격 : 75 ½ x 75 ½ x 42 in. (191.8 x 191.8 x 106.7 cm)
재료: 청동
소장 : N.C. 미술관, Iris and B. Gerald Cantor 기증

로댕은 단테의 지옥을 표현하기 위해 데생에만 1년을 매달렸다. 그리고 인간의 사랑·고통·죽음을 상징하는 200여 개의 조각이 한데 어울린 <지옥의 문(The Gates of Hell)> 작품을 30여년 동안 작업했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옥의 문>을 제작하며 <생각하는사람>, <키스>, <세 그림자>, <아담>, <이브> 등 주옥 같은 작품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참조 2]

로댕은 <지옥의 문>을 제작하던 도중 1883년말 젊은 여성들을 위한 강연을 하면서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1864-1943)을 만났다. 로댕의 연인이자 동료로서 클로델은 1885년부터 로댕의 조수가 되어 <지옥의 문> 제작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몇몇 여인상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로댕과 클로델은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기도 했지만, 또한 경쟁자이면서 창의력에 대한 의심 때문에 서로에게 극복할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했다.

로댕 미술관
로댕의 사후인 1919년에 개관한 로댕 미술관은 로댕이 말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처하던 비롱관(Hotel Biron)이다.

비롱관은 원래 신앙공동체가 사용하던 건물이었는데, 건물이 철거 위기에 놓이자 로댕은 평소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갖고 싶었던 차에 그의 모든 컬렉션을 국가에 기증하는 조건으로 자신의 미술관을 건립할 것을 제안하여 현재의 로댕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우리가 세계 여러 곳에서 석고나 청동 소재로 된 로댕의 똑같은 작품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프랑스 정부에서 공인한 복수의 작품들이 로댕의 진품으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고통·죽음의 세 그림자
로댕은 1880년에 <지옥의 문> 앞에 세울 <아담>을 만들었다. 그 후 <아담>을 조금 변형시켜 <그림자>를 만들고, <그림자>를 똑같이 3개를 만들어 서로 다른 각도로 결합한 것이 <지옥의 문>에서 맨 위에 있는 높이 98cm의 <세 그림자>이다. 위 사진에 소개된 <세 그림자>는 1901년에 로댕이 인체의 크기와 비슷하게 확대한 것이다.

이 작품에서 로댕이 세 명의 똑같은 사람을 사용한 것은 단테의『신곡』에 나오는 “나를 통해 슬픔의 나라로 가는 길, 나를 통해 영원한 고통으로 가는 길, 나를 통해 영원히 버림받은 사람들에게로 가는 길”이라는 구절을 형상화한 것이다.

<세 그림자>는 모두 고개를 왼편으로 떨구고, 왼팔을 가운데로 모으고 있다. 이것은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지옥의 고통에 짓눌려 있는 인간들을 표현한 것이다. <세 그림자>의 팔, 다리, 가슴 등의 근육은 힘차고 거칠면서도 근육의 힘줄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손을 다른 신체에 비해 크게 묘사함으로써 인간의 절망적인 감정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참조 3]

로댕은 양감과 비례, 리듬과 운동, 빛과 음영을 통해 그의 작품에 사실적인 생동감을 더하며 20세기 현대 조각의 시대를 활짝 열었다.

더 깊이 있는 감상을 위해 아래의 질문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여러분이 <천국의 문>을 조각한다면 어떤 작품들을 만들어 넣으시겠습니까?

• 여러분은 힘들고 지쳤을 때 어떤 자세를 취합니까?

• 고대 그리스 조각상들과 로댕의 작품들을 비교할 때, 다른 점과 비슷한 점은 무엇인가요?

참고자료:
1. http://www.leechanglim.co.kr
2. 네이버 백과사전
3. Rodin, The Cantor Foundation gift of the N.C. museum of art, 2010

NORTH CAROLINA MUSEUM OF ART
2110 Blue Ridge Road Raleigh, NC 27607
T. 919-839-NC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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