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전쟁
친하게 지내던 한 친구 부부의 일상에서 가끔씩 벌어지는 전쟁이 있다. 시어머니가 왔다 가신 날이면 어김없이 언성이 높아지고, 집안에 물건이 부서진다. 그러면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집을 뛰쳐나온다.
아내가 말하기를, 시어머니가 오시면 자신에게 막말을 하신단다. 살림도 엉망이고, 시부모 공경할 줄도 모르며, 부모한테 배운 게 없어서 다 그 모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같이 오면 남편은 자기네 식구들하고 나가 맛있는 걸 사먹고 들어온단다. 심지어는 시댁 식구들과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방에서 자기들끼리 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따졌다. 나와 아이가 먼저냐, 아니면 어머니가 먼저냐. 남편의 반응은 바보 같은 소리 하지도 말라며 무시하거나, 아니면 자기 어머니를 흉본다고 불처럼 화를 냈다.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이 남편은 마마보이의 전형이다. 시어머님의 입장에서 보면 며느리를 잘못 들여 식구들 사이를 갈라놓고 집안을 망치게 생긴 형국이다.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두 여자 사이에 끼어서 죽을 맛이거나, 자신의 가족을 무시하는 아내가 원망스럽다.
각자의 이유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녀가 원하는 것은 남편이 자신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확인받고 싶을 뿐이다. 자신을 진짜 가족으로 여기는지, 자신을 제일 우선으로 여기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리고 자신이 좀 부족해도 남편이 자기 편을 들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남편은 아내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잘못이 있어서 부모님께 야단 맞는 게 뭐가 이상하며, 가족간에 네 편 내 편을 나눠서 뭘하겠냐고 했다. 남편이 바라는 것은 아내가 자신의 가족이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이해해주고 존경하고 사랑으로 섬겨주길 바라는 것이다. 자신의 가족을 무시하고 싫어하면, 그것은 남편인 자신을 무시하고 싫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자신이 온 인생을 희생해서 키운 아들이 행여나 푸대접을 받을까 조바심이다. 며느리가 아들 아침을 안 챙겨줄까, 설거지를 시킬까, 자식 챙기느라 남편은 뒷전이지 않을까, 자나깨나 걱정이시다. 당신께서 그렇게 사랑으로 키운 자식이 여자 때문에 마음 고생하고 사는 것 같아 못내 안타까운 것이다.
이렇게 한 사람씩 이야기를 들어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모두들 나름대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가족의 하부구조
가족의 건강도를 살펴보는 방법 중 하나가 그 가족의 하부구조(Sub system)을 살펴보는 것이다.
한 사람이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바로 이 핵가족이 한 가족 시스템을 형성한다. 그런데 한 가족 시스템 안에서 하부구조가 생겨나게 된다. 쉽게 말하면, 누가 누구와 편이 되느냐 하는 편먹기 전쟁이다. 이 친구 가정의 구조는 시어머니와 아들이 한 팀, 며느리와 손주가 한 팀인 구조다.
한국의 많은 가정에서 아내와 자녀가 한 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차에 탈 때도 부부가 나란히 앞좌석에 앉지 않고, 아버지와 큰아이가 앞좌석에 앉고, 어머니와 동생이 뒷좌석에 앉는다. 다음 날 출근해야 하는 남편이 혼자 편하게 자도록 아내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방에서 잔다. 이 모든 장면이 가족의 하부 구조를 말해주는 힌트가 된다.
중심을 잃은 가정
젊을 때는 돈 버느라 정신 없어서, 혹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더 좋아서, 또는 일이 너무 바빠서 집을 자주 비운 한국의 아버지들은 가정에서 자신이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게 된다.
그러다보면 어머니들에게는 자식들이 친구가 되고 애인이 되며 마음의 의지처가 된다. 아들딸들이 아버지의 부재를 대신 채워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자식들이 성장하고 독립하고 결혼을 할 나이가 되면 어머니는 자식들을 떠나 보내는 일이 더 힘들고 더 아플 수밖에 없다.
부부끼리 노는 법을 잊어버린지 오래인 가정은 자녀들을 출가시키면서 큰 진통을 겪게 마련이다. 가족의 하부구조에서 중심을 잃고 살아온 대가를 이때 고스란히 치르게 되는 것이다.
부부가 한 팀이 된 가정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건강한 가정의 구조는 부부가 중심이 되는 것이다. 창세기 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혼자 있는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주시며 말씀하신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육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과 자신의 가정을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스스로 책임지고 꾸려 나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부부’라는 팀이 한 가정의 중심에 위치하는 구조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자녀들이 자라서 결혼을 하게 되면 그들의 최우선 순위는 더 이상 부모가 아니라 자신의 배우자가 되어야 한다. 너무도 사랑하는 아들이 여자를 만나더니 정신이 쏙 빠진 듯이 보인다면 속이 상하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자신들의 건강한 가정을 꾸려 나가는 첫걸음이다.
그래서 “자식 다 소용없어. 뭐니뭐니 해도 영감이 최고야!” 하는 할머니들의 푸념같은 조언은 사실은 성경적인 관점과 매우 부합한다.
나와 내 배우자가 우리 가정의 중심축이다. 그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나와 내 배우자, 우리의 자식들, 그리고 우리의 부모님도 안정감과 안전감을 누리고, 서로 균형을 잡으며 모두 다 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러므로 내 가정과 부모님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부들은 이것을 꼭 기억하셔야 한다. 가재는 게편이다. 그리고 나는 내 배우자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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