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M이 필요하대요
몇 해 전 초가을에 메릴랜드에서 만난 선배가 생각난다. 지나간 세월이 남긴 잔주름, 곱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 사이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 잔잔한 미소도 여전했다. 50여년 전 기숙사 생활에서 시작해 어느 새 할아버지가 된 이민생활 이야기로 한참 이야기 꽃을 피우다, 잠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그가 물었다.
선배: 항상 웃는 얼굴에 목소리도 여전한데, 건강관리는 어떤가?
필자: 혈압이나 당뇨, 코레스테롤도 정상이고, 생활하는 데는 아무 문제 없어요. 그런데 매달 체크해보니 비타민 M이 필요한 것 같답니다.
선배: 도대체 비타민 M이 뭔가? 은퇴한 의사로서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래서 어리석은 것 같지만 나의 궤변을 늘어놓았다.
비타민은 생명(vita) 유지에 필요한 아민(amine)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비타민의 종류는 A에서 K까지로 약 15종이지만, 알려지지 않은 비타민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비타민은 많은 양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몸에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식품을 통해 섭취해야만 한다. 그런데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는 사람은 실제로 10%도 되지 않기 때문에 비타민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영양소라고 할 수 있다.
야맹증과 적록색약
어릴 때 나는 밤눈이 어두워 해가 지면 밖에 나가 놀 수가 없었다. 밤눈이 어두운 것은 야맹증이고, 비타민 A 부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어머니가 사다주신 소간을 먹어야 했는데, 먹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덕분에 눈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중학교 입학시험 때 신체검사를 했는데, 나는 빨간색과 녹색이 섞인 글씨를 구분하지 못했다. ‘적록색약’이라고 했다. 적록색약자는 이공계를 선택할 수 없고, 문과나 음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운전면허시험을 보았다. 적록색약 테스트지의 색깔은 구별하지 못하지만, 신호등 색깔은 구분할 수 있다고 해서 의사의 진단서를 첨부해 면허증을 받았다. 야맹증은 비타민 A를 먹으면 되지만, 적록색약은 약도 없었다.
진정한 웰빙
어릴 때는 비타민 A가 필요했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마음에도 비타민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건강에 대해 검색해보니, 건강이란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것만이 아니었다.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행복한 상태(well-being)에 있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잘 먹는 것으로 웰빙을 추구하지만, 진정한 웰빙은 몸과 마음이 사회 공동체 안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마음의 비타민 M
건강한 몸을 위해 비타민을 먹어야 한다면, 건강한 마음을 위해서는 무엇을 먹어야 할까? 성경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A joyful/cheerful heart is good medicine, 잠언 17:22).”이라고 말한다.
기쁨과 즐거움이 마음의 좋은 약이라면 그것이 곧 마음의 비타민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마음에 좋은 약(Medicine)을 ‘비타민 M’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을 생기로 가득 채워줄 기쁨과 즐거움, 즉 비타민 M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나는 몇 가지 좋은 ‘M’을 발견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성(Mind), 선악을 분별하는 마음(Mind), 날마다 새로워지는 마음(Mind)…
이렇게 생각해보니 비타민 M은 우리 주변에 아주 가까이, 그리고 아주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날마다 챙겨 먹으면 마음이 아주 기쁘고 건강해지는 진정한 마음의 양식, 마음의 영양소였다. 비타민 M을 하루라도 거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결핍 증세가 나타났다.
100세 시대의 건강
뉴욕에 살 때다. 아내가 말하길, 이제 아이들도 다 컸으니 우리도 건강을 챙겨보자고 했다. 그래서 큰 맘 먹고 집에서 가까운 헬스클럽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매니저가 상냥하게 맞아주었다. 설명을 듣고 시설을 둘러보았지만,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했다. “선택은 당신이 하는 것이다. 지금 결정하면 행복해지지만, 결정을 못하면 언젠가 후회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건강이 점점 나빠져 불행할지도 모른다.”
요즘은 100세 시대의 건강이 화두다. 매스컴을 보면 건강 정보와 영양제가 넘친다. 그러다 헬스클럽만 나오면 귓가에 그 음성이 쟁쟁하다.
나는 결정을 하지 못한 것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다만, 몸을 위한 건강보다 마음의 건강에 더 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몸 건강은 아내의 덕으로 그럭저럭 유지했지만, 마음의 건강은 오로지 내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나와 남과 모든 이웃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시대다. 공동체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살려면 마음의 건강을잘 챙겨야 한다. 비타민 M은 비싸지 않다. 시간과 장소의 제한도 없고, 부작용도 없다. 그리고 모든 세대에게 영원히 필요한 약이다.
오랜만에 선배와의 만남. 나는 말로 비타민 M을 늘어놓았지만, 그는 삶속에 비타민 M이 가득한 것 같아 부끄러웠다. 선배는 천연 비타민 M을 많이 나누자면서 내 손을 잡았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진다. 메릴랜드의 선배를 생각하니, 저절로 마음에 미소가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