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작은 도시 그린빌(Greenville) 다운타운은 미국에서도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이지만, 오늘 찾아간 웨스트 그린빌의 예술 거리(Art district)는 커피 한 잔 들고 구경하며 걸어다니기에 딱 좋은 동네다. 말복더위는 지났지만 태양의 열기가 여전한 오후 3시, 박영숙 화가의 갤러리에서 탄산수 한 모금으로 더위를 식히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박영숙 작가는 2004년 남편의 직장 관계로 미국 뉴멕시코로 이주한 후 그곳에서 14년간 활동하다가 두어 달 전 이곳 사우스 캐롤라이나 그린빌로 이주하여 작은 아트 갤러리를 열었다. 본인의 작품 외에 여러 작가들의 그림이 걸려 있는 하얀 벽은 가난한 사진가의 눈에는 그저 부럽고 멋진 꿈의 공간이었다. 박영숙 작가와 인사를 나눈 후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도록을 들고 갤러리에 찾아가
맨 먼저,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 영어에 대한 부담과 이방인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넘으셨는지 여쭤보았다.
“솔직히 좀 행운도 있었던 것 같아요. 미국에 와서 제 도록을 들고 여러 갤러리들을 방문했더니 오히려 그들이 먼저 개인전을 제안했어요. 제가 이삿짐 속에 가지고 온 작품 27점이 있어서 우선 그걸로 시작했고, 나중에 그림짐들이 더 도착한 후에 더 많은 전시회를 할 수 있었어요. 아마도 동양인의 정서와 신비함이 그들을 매료시킨 건 아닐까 생각해요. 그 후로 갤러리에서 전속화가가 되었고 2008년부터 그곳 아트센터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죠.”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미국에 오자마자 갤러리에서 먼저 개인전과 전속을 제안하다니…. 사족을 좀 덧붙이자면, 한국의 갤러리는 대부분 대관 수익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작품 전시 주기가 상당히 짧은 편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의 갤러리도 전속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곳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아직 대세는 아닌 듯하다. 그런데 미국에 오자마자 전속화가라니! 그런데 박영숙 작가의 다음 얘기를 들으니 이것이 단지 행운이 아니었음을 곧 깨닫게 되었다.
포트폴리오 만들고 사람들 만나야
“이곳에도 재주와 능력이 출중한 한인들이 있을 거에요. 그런데 이민 사회의 특성상 자신의 전공을 포기하고 다른 직업을 갖는 가장들과, 엄마이고 주부라는 이유로 자신의 전공을 뒷전으로 미뤄둔 분들이 있을 거에요.
그런데 그렇다고 포기하지 말고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밖으로 나가 큐레이터나 갤러리의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해요. 그러다보면 동양인이라는 신분이 차별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신비함으로 어드밴티지를 받을 수도 있어요. 계속 준비를 하고 사람을 만나야 해요.
예전에 어떤 분이 실력이 있어서 제가 추천을 해준 적이 있어요. 그런데 투잡을 하느라 작품 준비를 제대로 못했나 봐요. 그래서 전속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죠. 물론 일이 힘들지만 그래도 스스로 기회를 만들고 잡아야 해요.“
한인 예비작가들과의 소통 기다려
이곳 그린빌 예술 거리에 갤러리를 오픈한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알리고 또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교류 전시하면서 한인 예비작가들과의 소통을 위해 작업과 전시를 겸할 수 있는 오픈 갤러리를 선택했다고 한다.
좋은 그림 vs 잘 그린 그림
그림에 문외한인 사람으로서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인지 여쭤보니 이런 대답을 해주셨다.
“풍경화를 보면 정말 세밀하게 잘 그렸다 싶은 그림이 있어요. 또 정밀화처럼 묘사가 잘된 그림은 사진처럼 똑같기도 하죠.
그런데 작가의 개성이 들어 있지 않으면 그건 그냥 ‘잘 그린 그림’이에요. 어설프게 보이는 인물화라도 작가의 개성이 분명하게 묻어나야 해요. 그래서 이 그림은 누구의 그림이구나, 누구의 붓터치구나 하는 특징과 개성이 분명하게 있어야 해요. 이게 좋은 그림이에요.”
문득 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피카소가 정물화를 못 그려서 추상화가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그의 표현 방식이 추상화에 더 적합했을 뿐이고, 그의 그런 독특한 표현 방식이 그를 위대한 화가로 만들었다.” 나만의 지문이 찍힌 작품을 만들고, 나만의 방식으로 인생을 살라는 메시지 같았다.
박영숙 작가와의 이야기를 마치고 태양 아래 예술 거리를 다시 걸었다. 그동안 내 삶에 대해 고민하며 지고 있던 마음의 짐이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