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피플 [미국 생활기] 미국인 남편과는 나눌 수 없는 즐거움 한 가지

[미국 생활기] 미국인 남편과는 나눌 수 없는 즐거움 한 가지

0
[미국 생활기] 미국인 남편과는 나눌 수 없는 즐거움 한 가지

 

여러분, 남자친구 또는 남편과 함께 냉면집에 가서 물냉면과 비빔냉면이 둘 다 먹고 싶을 때 어떻게 하시나요? 중국집에 가서 짬뽕도 먹고 싶고, 탕수육도 먹고 싶을 때 어떻게 하시나요? 간단하죠. 물냉, 비냉 둘 다 시켜서 나눠 먹으면 되죠. 탕수육, 짬뽕 둘 다 시켜서 나눠 먹으면 되고요. 그런데 이 간단한 일이 저희 부부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ㅠ.ㅠ

연애 시절 남편과 차이나타운에 밥을 먹으러 갔었습니다. 그곳은 무제한 코스 요리집이어서 메뉴에 있는 음식은 다 먹을 수 있고, 추가 주문도 무제한이었습니다(다만 시간 제한이 90분). 메뉴를 보고 각자 먹고 싶은 것을 고른 후, 남편과 제가 중복해서 고른 메뉴는 하나만 주문을 했습니다. 같이 나눠 먹고 모자라면 추가 주문하면 되니까요.

제가 주문한 음식이 먼저 나와서 같이 먹자고 했더니 자기 음식도 곧 나올 거라며 사양하더라고요. 그리고 남편이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자 남편 앞으로 가져가서 먹더니, 이후에 남편과 제가 중복되게 고른 음식이 나오자 남편이 그건 제 앞으로 밀어주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나) 이건 나눠 먹자.” “(남친) 왜? 내 것도 곧 나올 거니까 먼저 먹어.” “(나) 아니야, 나눠 먹으려고 하나만 시켰어. 모자라면 또 주문하면 되니까.” 그랬더니 이해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남친) 왜 내 건 주문 안 했는데???” “(나) 자기 걸 주문 안 한 게 아니라, 자기랑 나랑 이 메뉴가 중복되니까 하나 시켜서 나눠 먹고, 맛있으면 추가하고 맛 없으면 다른 음식 맛보려고 그랬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여전히 남편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아웃백에 밥을 먹으러 갔죠. 저는 아웃백의 간판메뉴인 베이비 백립과 퀸즐랜드 샐러드가 먹고 싶은데, 남편은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죠. ‘흠~, 백립과 스테이크를 시키면 양이 너무 많으니까 내가 백립을 포기하고 스테이크와 퀸즐랜드 샐러드를 같이 나눠 먹으면 딱 되겠네.’ 그렇게 주문을 하고 스테이크와 샐러드가 나오니, 저는 음식들을 테이블 가운데에 나란히 놓아 달라고 서버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갑자기 스테이크를 자기 앞으로 당겨 가는 겁니다. 그러더니 샐러드는 제 앞으로 놓아 주더군요. “(나) 이거 자기랑 나눠 먹으려고 시킨 거야. 나 혼자서 다 못 먹어.” “(남친) 나는 내 스테이크가 있잖아. 난 샐러드 별로 안 먹고 싶어. 다 못 먹겠으면 그냥 남겨.” ‘아니, 지금 그 말이 아니잖아…ㅠ.ㅠ 샐러드도 나눠 먹고, 스테이크도 나눠 먹자는 건데 ㅡ.ㅡ;;’ 그날 저는 스테이크 한 점 한 점이 남편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째려보며 허니 머스터드 소스에 풀때기 팍팍 무쳐서 먹었드랬죠. ㅠ.ㅠ

이렇게 연애 시절 경험으로 미국 사람들은 음식을 나눠 먹지 않는다는 걸 철저하게 깨달았습니다. 결혼 후 남편에게, 내가 예전에 메인메뉴 혼자서 다 못 먹으니까 나눠 먹는 게 어떠냐고 물었을 때 무슨 생각 들었냐고 물어보니, “Get your own food lady! (니 꺼 먹어, 아가씨야!)”

그런데 문제는 몸으로 직접 배운 이 깨달음을 돈 때문에 실행하지 못할 때가 있다는 거죠. 식당에 가서 남편 메인메뉴 하나, 제 메인메뉴 하나, 샐러드, 에피타이저를 먹고 싶은 대로 주문하면 결국 다 먹지도 못하고 남겨서 집에 싸오게 되는 겁니다. 집에 싸와서 나중에 데워 먹지도 않아요.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결국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하게 되죠.

아무리 생각해도 양이 많은 미국 음식을 기분 좋게 다 먹는 방법은 남편과 제가 사이좋게 에피타이저 하나, 샐러드 하나, 메인메뉴 하나 이렇게 나눠 먹는 건데, 남편은 남겨도 괜찮다며 그냥 제 음식을 따로 시키라고 하니까 돈 아끼고 싶은 아줌마 마음에 차라리 제가 메인메뉴를 안 먹고 마는 거죠. 그냥 샐러드의 풀때기나 에피타이저로 배를 채우게 되는 겁니다.

남편 말로는 아주 꼬맹이일 때야 혼자서 주문한 음식을 다 못 먹으니 형제끼리 나눠 먹었지만, 청소년기에 접어 들면서부터는 각자의 음식은 다 따로 시켜서 먹었다는군요. 그래서 제가 음식을 나눠 먹자고 했을 때도 이해하기 힘들었고, 이거 맛 봐도 되냐고 해 놓고 계속 자기 음식을 뺏어(?) 먹으니 적응이 안 되더랍니다. 하지만 이제 저랑 살다 보니 서바이벌 파워로 어느 정도 극복이 되어서 샐러드 정도는 나눠 먹고, 메인메뉴도 제가 뺏어 먹기 전에 자진해서 저에게 먹여줄 정도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자상해서 먹여 주는 게 아니고, 자기가 주는 것만 받아 먹고 더 이상 자기 음식에 손대지 말라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 시켜서 나눠 먹는 즐거움은 미국인 남편과는 누려볼 수가 없답니다. 물냉과 비냉, 둘 다 먹고 싶으면 혼자서 두 개 다 시켜야 합니다. 만약 제가 비냉을 시키고, 남편이 물냉을 시켰다면 남편의 물냉은 한 젓가락 얻어 먹고 나면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한국의 식당에서 먹는 음식들은 푸짐한 한그릇 음식들이 많아서 메뉴 하나를 2인분으로 주문해서 나눠 먹을 수가 있지만, 그 즐거움을 누리려면 한국까지 가야 한다는 게 문제. 그러니 저에게 있어 남편과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은 아주 호사스러운 즐거움일 수밖에 없답니다.

스마일 엘리(Smile Ellie)
국제결혼으로 미국으로 이주한 후, 현재 사우스 캐롤라이나 블러프턴에 거주하는 두 아이의 엄마. 미국 생활정보, 일상, 문화 차이를 소개하는 smile ellie의 일상 시트콤 블로거.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