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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길 칼럼] 중남미 밀입국 이산가족 vs 남북 이산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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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길 칼럼] 중남미 밀입국 이산가족 vs 남북 이산가족
헤어짐의 순간 (금강산=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제2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마지막날인 22일 오전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작별상봉 행사를 마친 이산가족들이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2015.10.22 [email protected]/2015-10-22 16:15:50/
이준길 한미관계연구원 원장 (변호사, 법학박사)

지난 6월 30일 미국 전역에서는 멕시코 국경을 통해 밀입국하다가 체포된 부모들과 어린 자녀들이 형사 절차를 거치는 동안 부모와 아이들을 분리 수용하는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있었다. 밀입국 부모들과 아이들을 분리 수용하는 정책은 최근 미국 국토안보부가 멕시코 국경을 통한 밀입국을 막기 위해 강화시킨 이민 정책의 일환이다. 이 정책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자, 지난 6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내려 분리 수용을 금하고 부모와 어린 아이들을 함께 수용하게 했다.

필자 역시 이러한 움직임을 지지하는 바이다. 법의 시각에서 보면 밀입국을 시도한 부모들이 미국의 이민법을 위반했고, 미국의 형법상 성인이 수용된 곳에 자녀를 함께 수용할 수 없는 원칙에 대해 이해는 하지만, 아주 어린 아이들을 부모와 분리 수용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인도주의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사안과 관련해 미국 민주당 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압박해 행정명령을 내리게 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90세 이상 이산가족 1만명
그리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미국 민주당 의원들이 그 동일한 관심과 인도주의 정신을 수십년 간 생사도 모른 채 헤어져 살다가 생을 마감하고 있는 우리 한반도의 이산가족들에게도 쏟아줄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남북한 정부가 오는 8월 20일~26일까지 금강산에서 거의 3년만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상봉 대상이 남북한 각각 100명에 불과하다. 이산가족들은 이 100명 안에 뽑히기가 로또당첨보다 더 어렵다며, 90세가 넘은 이산가족 숫자만 남한에 1만 명이 넘는데 100명씩 만나게 해주는 정치성 이벤트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그리고 많은 이산가족들의 소원은 북에 있는 자식들의 생사확인이라고 한다. 참으로 가슴이 저리는 아픔이다.

남북 이산가족의 표본 중 하나가 바로 문재인 대통령 가족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어머니 강한옥 여사는 모든 친정 식구들을 북에 두고 남편을 따라 홀로 피난을 내려 와서 아직까지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릴 때마다 혹시라도 이번에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볼 수 있을까 기대와 실망이 교차했을 것이다. 또한 혹시라도 남북한에 평화 체제가 빨리 구축되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 보았을 것이다. 강한옥 여사도 이미 90이 넘었다. 이분들이 살아 생전에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다시 만나볼 수 있을지, 그분들이 나고 자란 고향땅을 다시 한번 밟아볼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남북 이산가족인 문재인 대통령 어머니 강한옥 여사 ©중앙일보

우리 한민족에게 이산가족의 이야기는 이토록 오래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온 아픔의 세월이자, 실낱같은 희망과 체념 속에 이어진 고통의 세월이었다. 이 길고 긴 눈물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의 민주당 출신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1945년 얄타에서 한반도를 둘로 갈라 놓은 결과였다. 그런데 이제 이 피눈물을 멈추게 하려고 남북 이산가족의 상징인 문재인 대통령과 73년 전 한반도를 갈라 놓은 미국을 대표하여 미국의 공화당 출신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평화 정착을 위한 초석을 놓고 있다.

한인들의 목소리, 미국내 여론 형성에 큰 영향
최근 필자는 남북평화와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Korean-Americans call for peace treaty to end family separation (한국계 미국인들이 이산가족 문제를 종결하기 위하여 평화협정을 촉구하다).” 2018년 6월 30일자 보스턴글로브 기사였다. 보스턴글로브 기사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QR 코드를 스캔하시면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프로 7월 2일자 기사에 보니 이분들은 북미 정상회담 이틀 후인 6월 14일과 6월 30일에 보스턴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집회를 열어 한반도 평화를 위한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편집부 Keumjoo Lee)

특히 6월 30일에는 보스턴 커먼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두번째 집회가 진행되었는데, ‘보스턴행동’과 ‘세사모’가 보스턴 지역의 평화 및 인권 운동단체인 ‘메사추세츠 평화행동(Massachusetts Peace Action)’, ‘평화와 인권 위원회(Committee for Peace & Human Rights)’ 등과 연대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미국 현지인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한반도 평화협정 지지에 대한 여론을 형성하고 있었다.

마침 트럼프 대통령의 이민정책 중 하나인 ‘가족 분리'(Family Separation)’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가 같은 장소에서 열려서 이 집회의 목적과 맥락을 같이 하며,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한국의 이산가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남북한 분단으로 인해 헤어진 가족들이 70년 가까이 겪어 왔던 슬픔과 고통에 대해 라티노 이민자의 가족 분리 정책을 반대하는 대다수의 미국인들의 공감과 더불어 평화협정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냈다.

이금주(보스턴 행동/세사모)씨는 자신의 가족이 1951년에 북한에서 내려온 이산가족으로서 이 문제에 더 깊은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미국의 주요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를 극복하는 방법은 재미 한인들이 우리의 목소리를 내어 미디어의 관심과 주목을 끌고 현지 미국인들 사이에서 평화협정 체결 및 북한의 핵포기를 포함한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 등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 이산가족에 대해 미국 현지인들의 이해와 공감 및 평화협정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내고 있는 이금주씨 ©GLOBE CORESPONDENT

또한 보스턴 행동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문제는 전적으로 한국이 자주적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시각으로 보아야 하며, 트럼프 지지 여부와 상관 없이 미국인들도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위해 트럼프의 평화협상 과정을 지지해야 하고, 상하원 의원들에게 평화협정을 지지하라는 요청을 하자고 당부했다. 한편 한국전에 참전했던 두 미국인 베테랑이 집회에 참여해 한반도 평화와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뜨거운 지지를 보여주어 눈길을 끌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보스턴 2차 집회는 한인들이 지역 평화운동단체와 연대해 우리의 목소리를 낼 때 현지 미국인들의 지지와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미국내 여론 형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매우 뜻깊은 활동이다. 집회 참석자들은 이 일이 이제부터 시작이며, 고국 한반도의 평화를 향한 대장정에 우리 보스턴 세사모 행동도 언제나 함께할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저작권자: 뉴스프로]

정치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지난호 특집기사에서 필자도 강조하였듯이 남북평화와 관련하여 이제는 우리 한인들이 똘똘 뭉쳐 적극적으로 정치적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이금주씨가 지적하였듯이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미국의 주요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를 극복하는 방법은 재미 한인들이 우리의 목소리를 내어 미디어의 관심과 주목을” 끄는 것이고, 또한 “트럼프 지지 여부와 상관 없이 미국인들도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위해 트럼프의 평화협상 과정을 지지해야 하며, 상하원 의원들에게 평화협정을 지지하도록 요청을” 해야 한다.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해 밀입국자건 전쟁포로건 어린아이들을 부모와 함께 두자는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해 우리 한인들이나 미국인들, 그리고 전 세계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남북 이산가족이 다시 만나야 한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이산의 기간과 고통을 놓고 생각할 때 중남미 밀입국 이산가족과 남북한 이산가족을 수평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겠지만, “이산가족”이라는 단순한 정의를 적용하자면 밀입국 이산가족과 남북한 이산가족은 모두 동일한 “이산가족”이다. 그러나 같은 이산가족이라도 미국 내에서 얼마나 정치력을 가진 그룹이냐에 따라 미국인들로부터의 너무나 다른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씁쓸한 기분이다. 우리가 똑같이 미국에 살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얼마나 영향력이 있느냐에 따라 똑같은 사안도 이렇게 다르게 취급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더구나 밀입국 이산가족들의 비인도적인 상황에 항의하는 집회에 참석하는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인 입장에서 반트럼프 진보 그룹이다. 구체적으로 지난 6월 30일 미 전역의 대대적 시위는 MoveOn 등의 진보진영 단체들이 주도한 것이었다. 이들이 정치적 영향력이 큰 히스패닉계 사람들을 위한 사안에는 적극 나서서 대대적인 시위를 통해 문제를 시정하는 반면, 트럼프 밉다는 이유로 우리 한인들의 길고 긴 이산가족들의 고통과 슬픔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남북평화의 노력은 자신들의 진영논리에 따라 방해를 하는 그들의 행동이 위선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한인들의 정치력을 키워야 할 때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 한인들도 이제 미국의 주인이다. 그동안은 개인과 가족의 생존이 최우선 과제였기 때문에 한인들이 하나의 그룹으로 단합된 정치적, 사회적 힘을 기르고 활용하는 부분에서 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하나의 그룹으로 한 목소리를 내서 정치적 영향력을 끼쳐야 하는 중요한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남북평화를 위한 지금의 이 골든타임에 우리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를 도와 주겠는가? 밀입국 어린아이들의 분리 수용 문제도 히스패닉 그룹이 먼저 문제를 제기해 전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대된 것이 아닌가?

워싱턴 DC에서 열린 밀입국 가족 분리 수용에 반대하는 집회 ©연합뉴스

이에 우리나라 언론에 촉구한다. 미국의 중남미 밀입국 이산가족들의 분리 수용 문제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시위에 참여한 한국의 진보 그룹들은 아무리 트럼프가 싫더라도 미국 때문에 발생한 남북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문재인–트럼프의 남북평화 노력을 적극 지지하고 지원해 주기를 바란다.

결론적으로 트럼프에게 공로가 넘어간다는 이유로 남북평화를 방해하는 미국 주류 언론, 민주당 의원들, 일부 진보 그룹들에게 다음과 같이 강조해야 한다. 미국 주류 언론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미국 민주당 의원들과 진보들은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밀입국 이산가족이 함께 지낼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며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 주류 언론과 미국 민주당 의원들 및 진보들은 똑같은 인도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단 며칠이 아니라, 거의 70년 동안 분리된 “남북 이산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문재인–트럼프가 주도하는 남북평화 프로세스를 도와야 한다. 단지 트럼프에게 공로가 넘어가는 게 싫다는 이유 하나로 남북평화 체제를 방해하는 행위는 지금의 민주당 의원들의 선배인 민주당 루스벨트 대통령이 1945년에 얄타회담에서 남북을 갈라 놓아 생긴 남북 이산가족을 다시 한번 생이별시키는 “제2의 얄타 행위”이다.

우리가 그들의 행동이 우리 남북한 이산가족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항의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가 나서야 한다.

중남미 밀입국 가족들을 위해 싸우는 당신을 지지한다. 그런데 미국의 힘의 논리에 의해 73년 전 강제로 분리되어 자식들의 생사도 모르고 살다가 죽어가고 있는 남북한 이산가족들이 있다. 그들 중 90세 넘은 사람들이 남한에만 1만명이 있다. 그분들의 단 한 가지 소원은 죽기 전에 북에 두고 온 자식들의 생사라도 아는 것이다. 할 수 있다면 죽기 전에 그들의 얼굴을 확인하고 품에 한번 안아 보는 것이다. 이들의 처절한 슬픔과 고통에도 당신들의 관심과 지지를 보여달라. 이것이 단지 트럼프 때문에 등을 돌릴 수 있는 일인가? 당신들이 가진 인도주의 정신과 인간애를 우리 남북한 이산가족들의 슬픔을 끝내는 데 함께 모아 달라.

이준길 한미관계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