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한의원
얼마 전 침을 맞을 일이 있어서 예전에 다니던 한의원에 갔더니 그 한의원이 없어졌다. 헛걸음을 하고 발걸음을 돌리는데 길 건너편에 큰 한의원 간판이 보였다. 우리 동네 한의원은 대부분 규모가 작은데 그 한의원은 유독 규모가 컸다. 가보니 간호사도 5명이나 있고, 진료 침대도 대략 20개가 넘는 것 같았다. 대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냥 돌아서려는데 안내 데스크에 있던 간호사가 인사를 건넸다.
“고객님,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오셨네요.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오래 기다리지 않으셔도 되니까 먼저 접수부터 하시겠어요?”
그렇게 접수를 하고 조금 있다가 곧바로 한의사의 진료를 받았다. 둘째 날, 셋째 날에도 역시 손님이 많았다. 다른 한의원들은 규모도 작고 자주 폐업을 할 정도로 영업이 잘 안 되는데, 이 한의원은 어떻게 이렇게 큰 규모를 유지하고 손님도 그렇게 많은지 궁금했다.
마음을 받아주는 명의
침을 맞고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이 한의원의 수입을 추측해봤다. 내가 낸 진료비와 침대 숫자, 손님 숫자 등으로 대략 계산을 해보니 상당한 수입이 예상되었다. 그리고 넷째 날 드디어 이 한의원에 손님이 많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유는 바로 원장의 환자 응대방식이었다.
원장의 환자 응대 방식은 놀라웠다. 원장은 환자에게 먼저 인사를 하면서 환자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김종명 고객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떠세요?”
“어깨가 뻐근하고 콕콕 찌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원장은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반복해서 말했다.
“어깨가 뻐근하고 콕콕 찌르는 것 같으세요? 여긴 어떠세요?”
내가 하는 말을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되돌려주고 난 후에 자기 말을 했다. 나에게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다른 환자에게도 똑같았다. 환자에게 먼저 인사하고 환자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OOO 고객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떠세요?” 하는 인사로 진료를 시작했다. 그리고 환자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반복해서 말해주었다.
“그렇군요. 여기가 뒤틀리기도 하고, 여기도 묵직하네요. 여기는 어떠세요?”
이 분은 실력 있는 한의사다. 왜냐하면, 환자가 아픈 부위를 설명하면, 환자가 쓰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해서 되돌려주기 때문이다.
사람들마다 아픈 부위를 설명하는 단어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콕콕 쑤신다’고 말하고 다른 사람은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고 한다. 환자가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프다고 했는데, 의사가 콕콕 쑤시는 것처럼 아프냐고 받아주면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가 자신의 증상을 제대로 알아들은 건지 마음이 찜찜해진다. 그리고 자신의 아픔을 제대로 잘 알아주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 한의사는 환자가 자신의 아픈 부위와 증상을 자기가 설명한 단어로 받아주니까, 마치 자기의 아픔을 정확하게 잘 알고 있는 실력 있는 의사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한의원은 항상 손님이 넘쳐난다. 내가 치료를 받으러 다닌 3주 동안 항상 그랬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 한의사는 이렇게 말하는 방법을 스스로 깨달은 걸까? 아니면 누구한테서 배운 걸까?
입으로 듣는 경청
코칭 언어에서, 상대방이 사용한 단어를 그대로 받아주는 것을 ‘언어의 한 방향 정렬’이라고 하고, 요약해서 되돌려주는 것을 ‘패러프레이징(paraphrasing)’이라고 한다. 이 한의원 원장은 언어의 한 방향 정렬과 패러프레이징 기법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내가 코칭을 하면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코치님, 제가 원래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코치님만 만나면 제가 말이 많아지고 수다쟁이가 되는 것 같아요. 거 참 신기하네요.”
또 이런 말도 자주 듣는다.
“코치님, 이런 말은 제가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는데, 코치님에게 이런 것까지 말하고 있네요. 아내에게도 해보지 않았고, 친구나 동료들에게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말인데, 참 신기합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미소를 짓는다. 고객들이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간단하다. 코치가 ‘입으로 듣는 경청’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나름의 입으로 듣는 경청 방법이 있다. 상대방의 말을 단어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요약해서 되돌려주는 것이다. 단어를 바꾸지 않는 이유는 고객이 쓰는 단어에는 고객의 인생이 그대로 녹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고객이 쓰는 단어엔 그 사람의 감정과 욕구, 가치관, 신념이 녹아 있다. 그래서 고객이 사용하는 단어를 웬만하면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해서 요약해준다. 그리고 요약할 때는 길게 하지 않는다. 핵심만 간결하게 요약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기분, 생각, 욕구다. 따라서 내가 경청하는 방식은 상대방의 기분, 생각, 욕구를 간결하게 요약해서 입으로 되돌려주는 것이다. 이게 바로 입으로 듣는 경청이다. 이것이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 하고 수다를 떨게 하고 비밀스런 이야기를 털어놓게 만드는 비결인 셈이다. 우리 동네 한의원의 원장은 입으로 듣는 경청을 한다. 그래서일까? 이 한의원에는 오늘도 손님이 넘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