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시할머니 댁도 가자
결혼한지 2년 되었고, 저는 29살, 남편은 31살이에요. 저는 서울에서 석사 졸업했고 금융권 기관에서 근무해요. 연애를 오래 한 건 아니지만 둘 다 자리잡혔고 남편이 혹시 지방 발령날지 모른다고 서둘러 하고 싶다고 해서 일찍 결혼했는데, 결혼하고나니 말이 자꾸 바뀌는 것 같아서 요즘 싸울 일만 느네요.
친정 부모님은 전문직이라 여유롭지만 자식들에게 금전적인 부분에서 관대하진 않으셔서 취업 전까지 당신들 재산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그래서 결혼 허락하고 서울에 저희 신혼집을 마련해 주셨을 때 저도 굉장히 당황했어요.
시부모님은 가부장적이신데 몇 번 인사 드리러 갈 때는 정말 까맣게 몰랐어요. 아버님도 식사를 차리시고 과일을 깎으시고 살뜰히 챙겨주셔서, ‘우리집하고 분위기가 비슷하구나’ 했는데, 결혼하고 나니 이젠 앉아서 다 시키세요.
결혼 전에 남편과 약속하기를, 명절에 양쪽집 번갈아 먼저 가기였어요. 추석에 시부모님 먼저 찾아뵈면, 설에는 친정을 먼저 가기로요. 남편은 남동생, 여동생 있고, 저는 오빠가 미국에서 박사과정 밟고 있어요. 그래서 오빠가 한국에 명절에 맞춰 올 수가 없어서 부모님 두 분만 계실 때가 많아요.
물론 저희 부모님은 명절에 두 분 오붓하게 쉬신다고 안 와도 된다고 하세요. 두 분이 워낙 바빠서 명절에 같이 쉬실 때 여행을 가기도 하시는데, 그래도 아버지는 여전히 서운해하셨어요. 정말 딱 한번 명절 오후에 시댁에서 일찍 나와서 저녁에 친정 도착했더니 너무 좋아하셨거든요. 언제 오나 기다리면서 아버지가 직접 갈비찜도 만드셨다고…
제가 작정하고 저번에 남편 집 갔으니 이번에는 우리 집 가야 한다고 주장하진 않지만, 2번 연속 명절에 저희 집에 못 갔으면 이번에는 꼭 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이번에는 시할머님댁도 가자고.
명절 내내 우리 식구 좀 챙겨
시할머님댁 경상도예요. 시부모님이 같이 가자고 하는데, 저보고 연휴 전전날 시댁 와서 음식하고 하루 자고, 연휴 전날 시할머님댁 가서 음식을 또 하자는 거예요. 추석 당일에는 차가 막히니까 전날 가야 한대요. 그리고 올라오는 중간에 경치 좋은 데 가서 하루 자고 명절 다음날 점심 먹고 올라오자는 거예요. 나는 우리 부모님 보러 빨리 가고 싶은데…
그래서 남편한테 우리 차 가지고 따로 가면 안 되겠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시누이 남편도 같이 간대요. 미혼인 도련님까지. 그렇게 7명이 한 차에 낑겨 타고 8시간을 가야 해요. 심지어 시부모님 댁에 가서 자는 것까지 합하면 4박5일이네요.
그래서 제가 싫다고 했더니 싸웠어요. 우리끼리 차 가지고 따로 출발하는 것도 계산적이래요. 가족애를 모른다고요. 자기 아버지가 살면 얼마나 사신다고 그러냐고. 시아버지는 저희 엄마보다 더 젊으세요.
평소에도 시부모님 자주 찾아뵙고, 6월에 시부모님 두 분 모시고 집에서 직접 요리해서 식사 대접도 했어요. 그런데 남편이 추석 연휴가 기니까 시할머니 댁 갔다가 올라와서 우리집에서 다 같이 남은 명절 연휴를 보내자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도대체 나는 명절에 시댁을 몇날 며칠을 챙겨야 하는 거냐고 따졌어요. 그랬더니 6월에 시부모님 초대할 때 도련님이랑 시누이 부부를 못 불렀다고, 시부모님이 좋은 집 살면서 동생들 너무 무시한다고 하셨대요.
너 이렇게 계산적인 여자였냐?
결혼할 때 시부모님이 남자가 집 해오란 법 없다고, 자기들은 아들 잘 키워서 보내는 거니 아깝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정말 1원 한푼 안 주셨어요. 거기다 명절, 생신, 어버이날, 당신들 결혼기념일에는 조선시대가 따로 없어요. 며느리 도리 운운하시며 용돈과 직접 차린 잔칫상을 원하세요. 그런데도 남편은 그런 시부모님이 안쓰러운지 완고하게 저를 끌고 가려고 하네요. 저는 제 부모님이 더 안쓰러운데요.
시할머니 뵙고 와서 우리집에서 명절 또 보내자는 얘기 나왔을 때 제가 너무 화가 나서 말했어요. 우리가 사는 집, 차, 하다못해 니가 애지중지하는 명품 양복, 시계, 누가 해줬냐? 장인 장모는 챙길 거 다 챙겨주면서 간섭이라곤 없는데, 나는 시댁 가서 갓 지은 밥 한번 먹어본 적도 없다. 가족이라면 물질적인 건 아니더라도 마음이라도 와야 나도 마음을 주고 살지, 우리 부모님이 너한테 왜 잘해 주겠냐, 널 사랑해서겠냐? 상황 판단 잘해라 했어요.
남편은 제가 이렇게 계산적인 여자인지 몰랐다고 하네요. 도대체 제가 계산한 부분이 뭔가요? 내가 해준대로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딸이 부모 보고 싶어 하는 것도 계산적인 행동인가요? 결혼하고 조금씩 쌓인 서운함이 이번 명절을 계기로 터진 것 같아요. 혼인신고 미루다가 혼인신고한지 지금 반년 되었는데 이제 본색을 드러내는 걸까요?
출처: 네이트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