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트럼프 대통령을 ‘evil (악마)’ 또는 ‘idiot (멍청이)’이라는 프레임으로만 바라보면 한미간의 외교와 무역 문제는 물론, 북한 핵문제와 남북평화, 중국과의 무역 문제 등에 있어 국익에 큰 해가 된다는 판단 아래, 이준길 한미관계연구원 원장이 미국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1월에 쓴 『트럼프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전문을 연재한다.
유력한 흑인 후보
공화당의 황태자 젭 부시를 가문의 후광을 입은 전형적인 ‘기득권’이자 무능한 ‘로우 에너지(Low Energy)’라고 공격해 침몰시킨 트럼프는 이어 그 다음 유력 후보들을 차례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17명이나 되는 공화당 후보들은 인종별로도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아시아인으로는 인도계 루이지애나 주지사 바비 진달(Bobby Jindal)이 있었고, 흑인으로는 샴쌍둥이 분리수술로 대통령 훈장을 받은 신경외과 의사 출신의 벤 카슨, 그리고 중남미 출신으로는 아버지가 쿠바인인 텍사스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Ted Cruz)와 부모가 둘 다 쿠바인인 플로리다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Marco Rubio)가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돌풍을 일으키며 무서운 상승세를 타고 있던 후보가 흑인 의사 벤 카슨이었다.
벤 카슨(Ben Carson)은 1951년생으로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카슨은 평생 선출직에 출마해본 적이 없는 그야말로 순수한 정치 아웃사이더였다.
카슨은 예일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후 미시간 의과대학에 진학해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존스홉킨스 대학병원 소아신경외과 과장으로 세계 최초로 샴쌍둥이 분리수술을 성공시키며 ‘Gifted Hands’로 명성을 날렸고, 신실한 기독교인으로서 폭넓은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정치에 발을 들여 놓게 된 계기는 2013년 백악관에서 오바마대통령이 주최한 국가조찬기도회 연설 때문이었다. 연단에 선 벤 카슨은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는 없다. 그러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시작으로 연단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한 오바마 케어와 부유세에 대해 비판했다.
그는 오바마 케어에 들어가는 이많은 돈을 관료기구에 보낼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건강저축계좌를 만들어 의료비를 부담할 것과,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가릴 것 없이 모든 이가 십일조 헌금처럼 소득의 10%를 세금으로 낼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 저널>은 “벤 카슨을 대통령으로”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한 신경외과 의사가 미국을 위한 두 가지 대범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고 극찬했다.
트럼프보다는 카슨
카슨은 초기에는 크게 주목받는 후보가 아니었다. 그는 정치 경험이 없어서 말투가 느리고 표정에도 생동감이 없었다. 그러나 트럼프가 젭 부시를 밀어내고 점점 유력한 후보로 부상하자, 트럼프의 신앙심에 회의를 품은 많은 공화당 기독교인들이 카슨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벤 카슨의 인기가 급상승하며 전국단위 설문조사 1위로 등극했다.
트럼프는 일단 가장 큰 적수였던 젭 부시를 무너뜨린 후 다른 15명의 후보들 중 젭 부시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후보를 집중 공격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또한 언론에서도 어떤 후보의 영향력이 미미할 때는 그에 대해 다루지 않다가 그가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는 순간부터 그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한다. 카슨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드디어 카슨에게도 언론들이 날카로운 매스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벤 카슨 = 수퍼 로우 에너지!
카슨은 2015년 10월 25일 NBC<밋 더 프레스(Meet the Press)>에 출연해 “지금은 부드럽고 점잖게 이야기하지만 10대 때는 사람들을 돌, 벽돌, 야구 방망이, 망치 등으로 공격했다. 그리고 내가 14살 때 누군가를 칼로 찌르려고 했다는 얘기를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카슨이 자신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스스로 하게 된 이유는 트럼프때문이었다. 트럼프가 젭 부시 이후 다크호스로 떠오른 카슨에 대해 ‘수퍼 로우 에너지(Super Low Energy)’라는 별명을 붙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카슨은 자신의 강한 이미지를 강조하려다가 엉뚱하게 어린 시절의 폭력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그런데 카슨이 밝힌 폭력성이 너무 도가 지나쳤기 때문에 과거에 카슨이 자신의 책이나 언론 인터뷰에서 했던 얘기들이 하나둘씩 언론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치명적인 사건은 카슨이 어렸을 때 어머니의 머리를 망치로 치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트럼프가 유세 때마다 카슨의 폭력성을 집중적으로 언급했고, 언론들은 트럼프의 말을 인용해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결국 수퍼 화요일 다음날인 2016년 3월 2일, 카슨은 트럼프에게 항복하고 대통령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열흘 후 카슨이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고 트럼프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특히 흑인들에게 트럼프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 결과적으로 흑인들이 오바마 때처럼 적극적으로 힐러리에게 투표하지 않도록 제지하는 면에서 그가 중요한 역할을 한것으로 분석된다.
대선이 끝난 후 카슨은 주택도시개발장관을 맡아 트럼프 행정부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준길 한미관계연구원 원장
현재 연재되고 있는 『트럼프와 대한민국』을 책으로 구입하고 싶으신 분은 [email protected]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조속한 시일 내에 종이책으로 출판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