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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지기 트럼프] 8. 공화당의 황태자 젭 부시에 대한 공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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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지기 트럼프] 8. 공화당의 황태자 젭 부시에 대한 공략

편집자주 – 트럼프 대통령을 ‘evil (악마)’ 또는 ‘idiot (멍청이)’이라는 프레임으로만 바라보면 한미간의 외교와 무역 문제는 물론, 북한 핵문제와 남북평화, 중국과의 무역 문제 등에 있어 국익에 큰 해가 된다는 판단 아래, 이준길 한미관계연구원 원장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1월에 쓴 『트럼프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전문을 연재한다.

공화당의 황태자
젭 부시(Jeb Bush)는 아버지와 형이 미국 대통령을 지냈고 자신 역시 플로리다 주지사를 지냈기 때문에 그의 대선 출마는 이미 정해진 사실이었다.

그런데 2008년에 형 부시 주니어가 임기를 마치자마자 동생인 자신이 대통령직을 이어받는 것이 국민 정서상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바로 출마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후 공화당 대선 후보하면 바로 젭 부시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에게 대선 후보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2012년 대선에서 밋 람니(Mitt Romney)가 오바마에게 패한 후 유력한 다음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젭 부시가 2016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 부각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따라서 트럼프가 대선 출마 선언을 한 2015년 6월 16일 당시, 공화당 내에서 젭 부시는 이미 가장 막강한 후보였다. 또한 민주당에서 힐러리가 후보로 지명될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공화당에서는 클린턴 집안과 맞설 후보는 부시 집안밖에 없다고 믿고 있었다.

젭 부시 = “Low Energy”
트럼프는 자신을 포함해 17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차별화시키고 대중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는 지름길은 선두 주자인 젭 부시를 꺾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공화당원들이 당시 공화당 정치 기득권에 대한 불만이 많다는 점을 적극 이용해 두 번이나 대통령을 지낸 부시 가문의 젭 부시를 대표적인 ‘기득권자’로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이어 트럼프는 자신의 특기 중 하나인 브랜딩 실력을 정치에서도 십분 활용했다. 그는 제품 브랜딩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는데, 이것을 젭 부시 추월작전에 이용한 것이다. 그의 전략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꼬리표 붙이기’이다. 트럼프는 젭 부시의 약점을 언론에 집중 부각시키기 위해 젭 부시에게 ‘로우 에너지(Low Energy)’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꼬리표의 위력
트럼프가 젭 부시를 ‘로우 에너지’라고 부르게 된 사건이 있었다. 2015년 8월 19일, 트럼프와 젭 부시는 뉴햄프셔에서 동시에 유세를 펼치고 있었다. 서로 약 30~40 km 떨어진 곳에서 거의 비슷한 시간에 두 사람이 타운홀 미팅을 가졌는데, 트럼프 모임의 참석자는 약 2,500명이었던 반면, 젭 부시 모임의 참석자는 약 150명 정도에 그쳤다. 게다가 그날 젭 부시는 평소대로 진지하고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나간 반면, 트럼프는 학교 강당을 가득 메운 지지자들에게 이런 말을 던졌다.
“여러분, 저쪽에 있는 젭의 참석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잠을 자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젭 부시는 ‘로우 에너지’거든요!”

150명이 참여한 젭 부시의 타운홀 미팅 © MSNBC
2500명이 참여한 트럼프의 타운홀 미팅 © MSNBC

이때부터 트럼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젭 부시를 ‘로우 에너지’라고 불렀고, 트럼프 자신은 물론이고 트럼프의 캠프 참모들도 언론 인터뷰를 할 때마다 젭 부시의 ‘로우 에너지’ 이미지를 확산시켰다.

처음에는 그냥 웃어넘기던 유권자들도 점점 젭 부시를 나약하고 우유부단하며 무능한 ‘로우 에너지’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한 달도 되지 않아 젭 부시는 미국 국민들에게 ‘로우 에너지’로 각인되고 말았다. 나중에는 사람들이 젭 부시를 볼 때마다 ‘로우 에너지’를 맨 먼저 연상하게 되었고, 이어지는 선거 유세에서 보여준 젭 부시의 모습은 ‘로우 에너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와 형의 후광 덕분에 쉽게 대선 후보가 되었기 때문에 강인한 이미지는 없었다. 그의 말하는 모습이나 제스처 또한 보기에 따라서는 ‘로우 에너지’로 보일 수도 있었다.

이기는 전략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 정치에서도 상대 후보에게 나쁜 별명을 붙여 깎아내리는 일은 금기에 속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정치 관행 대신 자신의 경험을 따랐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패 중에 가장 효과적인 패를 사용했다. 트럼프가 젭 부시에게 ‘로우 에너지’라는 별명을 붙였을 때 처음에는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별명이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브랜딩의 힘을 트럼프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전략대로 ‘로우 에너지’라는 별명은 결국 공화당의 황태자 젭 부시를 낙마시키고 말았다.

이준길 한미관계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