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슬
일상은 여전히 어수선하지만 날씨는 이제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감돈다. 어느 새 가을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듯하다. 아이들은 다시 학교에 가지만(일주일에 한 번) 불안감 속에 서로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지도 못한 채 수업을 하고, 어른들 역시 아직은 친한 사람들조차 만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아는 지인의 딸이 한국에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오랜만이라는 핑계로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다.
오늘 소개할 사람은 29살의 방송연예과 학생이며 나름 인생의 사연도 많은 배우 윤슬 양이다. 아직 유명하지는 않지만 여러 편의 연극과 뮤지컬 무대, 그리고 단편영화에도 다수 출연한 배우다.
배우의 꿈
우선 맨 처음 미국에 오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고등학교 올라가는 시점에 교환학생으로 처음 미국에 왔어요. 한국과는 굉장히 다른 환경에 놀랐고 그 다른 점이 저는 좋았어요. 부모님도 그걸 이해해주셔서 1년 후에 아빠가 미국에 있는 회사로 자리를 옮기셨고 가족들이 모두 텍사스 휴스턴으로 이민을 오게 됐죠. 저는 잠깐이나마 미국에서 생활을 했으니 아무래도 적응하는 데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지만 다른 가족들은 처음에 좀 고생을 했어요.”
그런데 가족들과 미국으로 이민 와서 공부하며 잘 살다가 다시 한국에서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 참 특이하게 느껴진다.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배우가 너무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순풍산부인과의 아역배우 미달이를 좋아했고, 어린이 신문에 나온 연기학원 광고를 보면서 ‘나도 하고 싶다…….’ 하며 동경했죠. 엄마는 저의 이런 모습을 그저 어린아이가 갖는 한때의 막연한 꿈 정도로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러다 미국에 와서 고등학교 시절 ‘드라마 클래스’에서 활동한 것이 직접적인 동기가 됐어요. 그때 배우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죠.”
한국 무대로
그렇다면 배우로서 왜 미국이 아닌 한국 무대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무척 궁금해진다.
“당시 제가 살던 곳에서는 배우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게 굉장히 막연하게 느껴졌어요. 만약 캘리포니아였다면 어떻게 길이 있지 않을까 더 열심히 찾아봤을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영어보다는 한국어가 더 편해서 한국으로 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휴스턴 대학에 진학하려고 했는데 그 학교 연극영화과에서는 국제학생을 아예 받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비즈니스 전공으로 입학해서 의대에 진학할 생각으로 생물학으로 전과를 했죠.
그런데 오로지 공부만 파고드는 생활이 점점 더 싫어지더라고요. 고등학교 때는 사이드로 드라마를 할 수 있었지만 대학에서는 그럴 여유도 없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미용실에 갔을 때 미스코리아 예선에 참가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고, ‘포토제닉’상을 받게 됐어요.”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포토제닉상을 받은 후 그녀의 삶이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당시 미스코리아 대회 중계사인 SBS에서 다큐멘터리와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그때 연기를 하고 싶다는 갈망이 다시 올라오더라고요. 그래서 부모님께 한국에 가서 연기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매달렸어요. 부모님은 제가 한국 대학에서 공부를 한다는 조건 하에 허락을 하셨고, 저는 2013년도 수능을 보고 동덕여대 방송연예과 14학번으로 입학했어요.”
부모님이 쉽게 허락하셨을 것 같지는 않은데, 큰 갈등은 없었을까?
“갈등은 사실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에요. 저는 아직 이룬 것이 없이 꿈만 바라보며 살고 있고, 엄마는 이런 저를 이해하면서도 늘 걱정이 되니까 지금도 말다툼의 연속이죠, 뭐.”
후일담을 들어보니 그 과정에서 엄마와 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의사가 될 줄 알았던 딸이 갑자기 한국에 가서 배우가 되겠다고 하니 부모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이 되기도 한다.
재주가 좋은 건지 능력이 좋은 건지 윤슬 양은 한국에서 프리랜서 통역가로도 활동 중이다.
“처음엔 대학 진학하기 전에 아르바이트로 영어유치원에서 잠깐 일을 했어요. 그런데 학교생활과 병행하기가 어려워서 통역 일을 하게 됐어요. 덕분에 평창올림픽 때는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그리고 올 초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진단키트 회사인 ‘젠큐릭스’에서 일을 했어요.”
밝은 에너지를 주는 배우
연기자라는 직업은 언뜻 보기엔 하나의 직업군 같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세분화된 영역이다. 누구나 주연을 차지할 수는 없으며, 때로는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이 되기도 하고, 잠깐 유명해졌다가 사라지는 스타들도 많다. 하지만 백발이 되어도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서 만날 수 있는 노장 배우들도 있다. 그녀는 어떤 연기자를 꿈꾸고 있을까?
”저는 그냥 연기가 좋아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본다는 게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잖아요. 인터뷰나 오디션에서 밝은 이미지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에게 밝은 에너지를 전해주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어떤 배역에 한정되기보다는 제가 할 수 있는 환경과 기회들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녀의 인생에서 앞으로 써 나갈 페이지가 훨씬 많기에 인터뷰 글은 이 정도에서 줄인다. 그리고 그녀가 어떤 배역으로 나오든 ‘윤슬’이라는 배우는 믿고 보는 배우로 성장해 나가길 뜨겁게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