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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의 사람 이야기] 한국인의 정을 아는 사람, Charles 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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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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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의 인연
인터뷰를 약속한 월요일 저녁. 그린빌의 날씨는 그리 추운 편은 아니었지만 스산한 빗줄기에 젖은 어깨가 서늘해졌다. 자주 만나서 익숙한 얼굴이지만 오늘은 인터뷰를 위해 만나다보니 왠지 새롭게 느껴진다. 오늘 만나게 될 주인공은 한국과의 우연한 인연으로 한국을 좋아하게 된 Charles Thompson이다.
그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1999년, 그린빌에 있는 기숙 고등학교에 유학온 한국 학생들을 만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후 2009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 동두천시에 있는 미군 캠프에서 군생활을 했고, 지금은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둔 아빠이자 소프트 웨어 회사의 시스템 관리자로 근무하고 있다.

한국 파견 근무 자원
한국에서의 생활은 어땠을까?
“한국에서 근무하는 동안, 사실 제 상관 때문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이웃에 사는 한국분들 덕분에 즐거운 기억을 많이 만들었죠. 제가 살던 아파트의 이웃들이 참 친절했고, 작은 모임에 저를 가끔 초대해 주시기도 했어요.”

미군으로 한국에서 근무를 했다면 한국 파견을 자원했다는 이야기인데, 어떻게 한국 파견을 자원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고등학교 시절 저희 가족은 뉴저지에 살았고, 저만 이곳 밥 존스 기숙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어요. 그때 한국에서 유학 온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친구들과 함께 한국교회도 나가보게 되었죠. 나를 반겨주는 한국인들의 친절함과 친근함이 참 좋았어요. 그리고 나중에 군입대를 했는데 왠지 한국으로 가고 싶더라고요. 그때 저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셋이나 있었지만 그냥 한국에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국 파견을 자원하게 됐어요.”

군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했는데 예를 들면 어떤 일이 힘들었을까?
“2012년인가 제가 있던 동두천에 큰 폭우가 내렸어요. 집들이 물에 잠기고 건물들이 무너지기도 했어요. 그때 제가 살던 아파트에서 근무지까지 3마일(5Km) 정도 됐는데 도로가 물에 잠겨서 갈 수가 없었죠. 물이 가슴높이까지 차 오른 상태라서 상관에게 전화해 나갈 수가 없다고 했더니, 상관이 하는 말이 죽어도 군부대에서 죽어야 한다며 무조건 나오라는 거였어요. 그의 태도에 너무 화가 나고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더 높은 상관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니 그제서야 결근을 허락받을 수 있었죠.”
미국 군대와 한국 군대는 많이 다르다고 하지만 그래도 군생활을 해본 분들이라면 대충 짐작이 가는 상황일 것이다. 군부대에는 늘 이런 ‘고춧가루 상사’가 있는 법이니…….

한국인, 한국 문화
그러면 한국에서 근무하는 동안 한국 사람들이나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꼈을까?
“물론 그건 사람마다 다르겠죠. 그런데 제 경험에 의하면 많은 한국 사람들이 첫 만남부터 친해지지는 않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만남이 계속되면 누구보다 정이 많고 친절한 사람이 한국 사람들이에요. 그렇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술집이나 길거리에서 시비를 걸고 쓸데 없는 말을 하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어서 싸움이 붙는 경우도 있었어요. 물론 제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똑같은가보다. 우리가 여기서 외지인으로서 겪는 일이 내 나라 내 고향땅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참 씁쓸하다.
어찌됐든 이래저래 한국과 꽤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 왔으니 한국어 실력도 꽤 좋을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이 친구와 한국말로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다.
“아, 아직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볼 정도는 아니에요. 공부를 했다고는 하지만 잠깐 하다가 일 때문에 못하고 또 잠깐 하다가 그만두고 그래서 아직도 비기너 수준이에요. 그래도 넷플릭스나 유투브를 통해서 한국 프로그램을 많이 보고 있어요. 제가 고등학교 시절엔 한국에 이런 프로그램이 전혀 없었는데 지금은 한국 프로그램이 많아져서 좋아요. 미국 사람들이 대부분 자막을 좋아하지 않지만 저는 상관없이 잘 보고 있어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말한 ‘자막’이라는 1인치의 장벽을 넘어 신세계를 경험한 사람이 여기에도 있었나보다.

내친 김에 그동안 한국문화원이나 여러 한국 행사에 자주 참여한 사람이기에 그린빌의 한국 커뮤니티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제가 경험한 한국 관련 행사는 늘 즐거웠어요.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고, 여기 미국 사람들과도 충분히 교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보다 규모나 범위가 좀 더 커져야 할 것 같아요. 지금 한국 문화는 파급력이 상당해요. 모든 매체들이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K-POP을 대부분이 알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보여준 한국 음식과 한복 소개 정도로는 부족하죠. 한국분들의 더 많은 참여도 굉장히 중요하고요.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그린빌에 있는 한국분들은 만날 때마다 친절하고 밝아서 시간이 갈수록 더 큰 교류의 장을 만드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해요.”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게 겨울비가 아니라 봄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봄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