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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의 사람 이야기] 한국말은 못하지만 한국사람입니다 – 위장내과 의사 수지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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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의 사람 이야기] 한국말은 못하지만 한국사람입니다 – 위장내과 의사 수지 킴
2019년 그린빌 코리안 나이트 진행자이며 K-Drum 멤버인 한국인 내과 의사 수지 킴 ©제롬
제롬,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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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864) 477-0643

만남이 두려운 시절
햇살은 점점 따가워지지만 몸과 마음은 아직 스산한 겨울에 갇힌 듯 집안에만 머물러 있다. 마트에서 화장지와 손 소독제를 사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이고, 누구와 만나 커피 한 잔 하는 것조차 두려워진 상황이다. 덕분에 평소 같으면 별일 없이 진행되던 인터뷰 약속도 모두 뒤로 미뤄지고 심지어 거절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시절이 하도 뒤숭숭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감사하게도 인터뷰를 수락해준 오늘의 주인공 수지 킴에게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 참고로 이 인터뷰는 영어로 진행되었다.

차별이 싫어 이민 결심
현재 그린빌에서 내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수지 킴은 3살 때 외과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 뉴욕주 뉴버그 시티로 이민을 왔다고 한다. 1960년대 한국에서 아버지가 외과 의사이면 상당히 안정되고 부유한 생활을 누리고 살았을 터인데 굳이 왜 미국 이민을 선택하셨는지 궁금해진다.
“아버지는 충북 천안에서 외과 의사로 일하셨고, 공군 군의관 출신이세요. 그런데 당시 한국에는 사회 정서상 장남 우선주의가 있어서 차남이었던 아버지는 늘 차별을 받고 장남인 형님에게 모든 걸 양보해야 하는 한국의 유교문화를 싫어하셨어요. 그래서 미국 이민을 선택하게 되셨죠.
당시 뉴버그라는 도시는 미국 의사들이 기피하던 곳이었어요. 그래서 의료인력이 많이 부족했고, 그 때문에 필리핀이나 한국 등 아시아계 의사들의 이민이 가능했지요. 그리고 얼마 후 뉴욕시로 자리를 옮겨서 암수술 전문의로 일하셨어요.
저는 펜실베니아에서 공부하다가 애틀랜타 에모리 대학에서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조교수(GI Fellow)로 있었고, 그 후 콜럼비아와 그린빌을 놓고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그린빌을 선택하게 됐어요.”
필자도 형님과 나이 차이가 5살이나 나는 막내인지라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게다가 1960년대였다면 장남과 차남에 대한 차별이 훨씬 더 심했으리라 짐작된다.

한국말 못해요
다음 질문은 조금 예민할 수 있는 부분인데, 그녀가 한국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가족들도 모두 한국사람인데 한국말을 못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제가 어릴 때 엄마가 한국말을 가르치려고 한국 교회에 데리고 나가셨어요. 그런데 제가 워낙 잘 못하니까 손을 놓게 되신 것 같아요.
사실 부모님은 미국에 오면서부터 저희 세 자매에게 완전한 미국인이 되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두 분은 한국어로 대화하셨지만 저희들에게는 영어로 말씀하셨지요. 1960년대에 이민을 왔고, 그리 좋은 도시도 아닌데다가 이민자 수도 많지 않아서 당시로서는 그것이 부모님이 생각하신 최선이셨을 거라 생각돼요. 아, 그런데 가끔 크게 혼내실 때는 한국말로 혼내셨어요.ㅎㅎㅎ”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수지 킴은 그린빌 코리안 나이트 파티의 진행자이며, K-Drum 멤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과 고국에 대한 관심이 생겼을 법도 한데 어땠을지 궁금하다.
“코리안 나이트 진행은 윤 원장님이 워낙 부끄러워하셔서 제가 거의 떠밀리다시피 맡게 됐어요. 자라면서 제 얼굴이 한국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은 사실 많지 았았어요. 예전에 비해 한국이 많이 성장했고 어떤 분야는 세계제일을 달리고, K-POP과 K-드라마가 유명해지고 영향력이 커진 정도만 알고 있었죠. 무엇보다 제 일이 워낙 바쁘다보니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다 한 2년 전에 한국문화원 윤 원장님이 사물놀이를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주셨어요. 알아보니 이 사물놀이가 상당히 마음을 흥분시키기도 하면서 또 젠틀한 느낌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참여해서 처음부터 배우기 시작했고 지금은 퓨전 퍼커션 모임인 K-Drum 모임도 같이 하고 있어요. 멤버들은 대부분 외국인들이에요. 국적만 미국이지 실은 여러 나라 출신이 모인 거지요.
지금의 한국 문화는 알리는 수준은 이미 넘었다고 봐요. 현지 문화와 포용하고 함께하는 단계라고 생각돼요. 저도 그중 한 명일뿐이고요.”

코로나 사태에 한마디
마지막으로 의사로서 현재 COVID-19 사태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물어보았다.
“미국이 선진국이기는 하지만 보험과 의료 시스템은 거의 망한(broken) 상태라고 봐요. 그러다보니 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싸고, 없는 사람들은 더욱 더 궁지로 내몰리고 있지요. 게다가 정치인들의 사태 숨기기와 늦은 각성이 사태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어요. 사람들이 왜 헬스 케어 시스템을 불신하는지, 대통령과 정부를 불신하는지 알아야 해요.
지금은 의사로서도 뭐라고 말하기가 힘든 상황이에요. CDC에서 알려준 지침대로 기본에 충실하게 손 잘 씻고, 외출 삼가고, 증상이 있으면 바로 신고해서 검사받는 것이 최선인 것 같아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사상 초유의 전 지구적 위기 상황을 맞이하면서 정치 지도자들이나 의료계나 시민들이나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도 인터뷰에 응해준 수지 킴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서로 몸조심하라는 인사와 함께 총총히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