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라이나에 큰 눈이 한번 지나 간 후 필자가 찾은 곳은 노스 캐롤라이나 헌터스빌에 있는 어느 태권도장이다. 이곳에서 뉴욕의 인터넷 신문 발행인이자 대표기자 로창현님이 북한 방문 강연회를 열었기 때문이다. 캐롤라이나 열린방송 주관, 드래곤 챔피언 태권도장 후원으로 열린 이번 강연회는 남북 판문점 선언 이후 현직 기자 최초의 북한 방문 취재기라는 점과 기자 개인의 취재 방문이란 점에 의의가 있을 듯하다. 필자의 부모님도 개성과 황주가 고향인 망향인이시라 더 관심과 부러움이 큰 시간이었다.
통일 기러기 현직 기자
먼저 자신을 ‘통일 기러기’라고 칭한 이유부터 물어보았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갈 때 고려항공을 이용했어요. 비행기 안에서 보니 땅은 중국땅이고, 비행기는 북한 비행기인데, 승객인 나는 남한 사람이더라고요. 그 순간 내가 기러기 같다는 생각이 스치면서, 내가 무언가 알리고 전하는 가교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때부터 ‘통일 기러기’라고 부르게 됐어요.”
그렇다면 이번에 북한을 방문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
“원래는 세계 최초의 유라시아 횡단 마라토너인 강명구씨와의 인연 때문이었어요. 그분의 마라톤 대장정의 끝이 평양이었는데, 그곳에서 만나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하고 LA의 통일 시민단체 대표와 함께 중국에 가서 비자를 신청했는데 거절됐어요. 아마 그때 상황이 좀 예민했었나봐요.
그런데 거기까지 가서 빈손으로 돌아오기가 좀 억울해서 다시 개인적인 취재 목적으로 비자를 신청했더니 한 달 정도 지나서 입국비자가 나오더라고요.”
내가 본 그대로
강연회에서 보여준 영상 중 현지 주민과 인터뷰한 내용이 있었는데, 북한 주민을 직접 만나본 느낌이 어땠는지 궁금했다.
“북한 주민들과 만나본 제 느낌은 ‘그냥 같은 사람이다’였어요. 그동안 언어 교류가 없었던 탓에 달라진 말도 있지만(영상에 보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윷놀이를 하면서 ‘도개걸슝모’라고 한다.) 다를 거 없는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거였어요.”
우리 부모님 세대의 실향민들 중에는 반공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는 분들도 있는데, 이런 분들에게 남북간 상호교류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했다.
“그분들께 제일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분단 당시의 북한과 지금의 북한은 아주 다르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단은 기자로서 제가 본 사실 그대로를 그분들께 더 많이 알려 드리고 싶어요. 지금 북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신다면 95%의 분들은 생각이 바뀌게 되실 거라고 생각해요.”
통일은 가슴으로
“그리고 저는 통일은 가슴으로 하는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그분들이 직접 북한에 한번 가보시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2천불 정도의 비용이면 7박8일 정도의 북한 방문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4월 평양마라톤대회나 AOK(평양 문화유산 답사 프로그램) 행사에 맞추어 다시 한번 북한에 다녀오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상호간에 사실을 더 많이 알리는 데 집중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더 많은 통일 기러기들이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을 오가며 상호교류와 평화, 그리고 통일의 봄바람을 전해주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