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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요리] 5. 레 마미톤스에 한국의 맛을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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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요리] 5. 레 마미톤스에 한국의 맛을 전하다
비빔밥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혜리 셰프 ©김혜리
김혜리 Carmen Kim
셰프, 요리연구가, 푸드스타일리스트
Canada Red seal Chef
(캐나다 국가공인 기술자격)
[email protected]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설날에 맞춰 한식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의 맛
캐나다에 오기 전, 저는 음식을 잘 먹기만 했지 직접 요리를 하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는 음식이 입에 잘 맞지도 않고, 아무리 맛있는 것도 매일 먹기엔 물려서 마트에서 피클을 사다가 느끼함을 달래며 엄마가 해주시던 한국 음식을 그리워했답니다. 그러다가 마치 가뭄의 단비처럼 우연히 한국 음식 비슷한 것을 발견하고는 너무 반가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캐비지롤(Cabbage Roll),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 이탈리안 웨딩 수프(Italian Wedding Soup)입니다.
고기와 야채로 속을 채워 돌돌 만 양배추를 토마토 소스와 함께 쪄서 만든 캐비지롤은 한국의 김치찜 비슷한 맛이었고, 독일어로 ‘신맛이 나는 양배추’라는 뜻의 사우어크라우트는 양배추를 발효시켜 만든 백김치 같았습니다. 그리고 “뜨끈하고 시원한” 국물이 생각나는 날에는 이탈리안 웨딩 수프를 미역국이라 생각하며 들이키곤 했답니다.

나의 뿌리 한식
이제는 캐나다에 온 지도 벌써 9년이 되어가고 셰프로서 한국의 맛을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몇 년 전 캐나다의 요리학과에서 요리 공부를 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요리의 기초부터 세계의 다양한 요리의 이론 공부와 실습을 병행하며 열심히 배우던 어느 날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도대체 언제쯤 한식이 수업에서 언급이 될까?’
다양한 민족이 모여 사는 캐나다에서 여러 나라 유학생들과 현지인에게 동서양의 요리를 가르치는데, 한식이 제대로 언급되거나 실습의 주제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다른 아시아 요리는 종종 언급되기도 하는데 말이죠. 요리학도인 제 입장에서는 그런 상황이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제 자신을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나는 과연 한식을 잘 알고 있나? 외국인이 나에게 한식에 관해 물어보면 한국 요리의 역사와 종류, 만드는 방법 등을 자신 있게 말해 줄 수 있나? 저의 솔직한 대답은 “잘 모르겠다”였습니다. 저는 한식을 잘 먹기만 했지, 한식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학교 도서관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한식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한식에 대해 더 잘 알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그렇게 뜬구름 잡듯 한식에 대해 공부하며 한식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레 마미톤스에 한국인 최초로 한식을 전하다
몇 년 전 모교의 캐나다인 교수 셰프님의 부탁으로 레 마미톤스(Les Marmitons)라는 미식가 클럽의 요리 강습을 도와드린 적이 있습니다. 레 마미톤스는 고급 음식, 와인 및 요리 예술에 대한 공통 관심사를 가진 미식가 및 사회 지도층 신사 클럽으로, 공인된 마스터 셰프를 초대해 셰프의 안내에 따라 다양한 요리를 배우며 코스에 어울리는 와인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요리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는 아마추어 요리사들의 정기적인 미식 사교모임입니다.
‘레 마미톤스’라는 단어는 프랑스어로 어린 요리사, 즉 주방장의 도우미를 의미합니다(프랑스어 발음으로는 ‘르 마미통’). 레 마미톤스의 전통은 유럽에서 시작되었고, 30여 년 전 스위스 이민자들에 의해 북미에 소개되었습니다. 북미 최초의 레 마미톤스 지부는 1977년 몬트리올에서 설립되었고 그 후 캐나다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저는 기회가 될 때마다 이 모임에 교수 셰프님의 어시스턴트로 참여했는데, 어느 날 레 마미톤스로부터 한식을 가르쳐 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깜짝 놀랐지만 아주 짧은 고민 후 바로 대답했습니다. “안 될 것 없지요. 좋아요!”
그날부터 한식 강의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어떤 한식 요리를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참 많은 고민이 되었습니다. 소개하고 싶은 요리가 정말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구할 수 있는 한식 재료와 서양인의 기호를 고려한 끝에 “발효음식의 나라 한국”이라는 주제를 정하고 코스 메뉴를 계획했습니다.

셰프의 노트 ©김혜리

한식 요리법? 느낌 아니까!
30여 명의 레 마미톤스 회원들이 코스별로 팀을 나누어 함께 요리를 했기 때문에 게스트 셰프로서 저는 자세한 조리법 설명서(레시피)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재료들의 이름부터 만드는 과정까지 영문으로 레시피를 작성하고 사용할 재료에도 혼선이 없도록 하나하나 라벨을 붙이는 과정에서 한 가지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아, 그동안 내가 한식 요리를 할 때 내 느낌대로 요리해 왔구나.’
서양 요리 레시피를 보면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의 정확한 용량, 온도, 조리시간과 만드는 방법, 몇 인분인지 등이 세세하게 정리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원하는 양을 요리할 수 있는 반면, 한식은 예로부터 만드는 사람의 손맛을 중요하게 여겨 ‘한줌’, ‘한소끔’, ‘적당히’, ‘솔솔’, ‘칼칼하게’, ‘자박자박하게’, ‘푹 고아낸다’ 등의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래서 처음 한식 요리를 배우는 사람들은 이런 표현 때문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식 재료의 영문 표기 역시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 레시피를 작성하는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저도 제가 먹는 요리를 할 때는 그날 그날 기분 따라 입맛 따라 ‘느낌 아니까’ 요리법을 애용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한식이 세계화되기 위해서는 외국인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정확한 한식 레시피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식 요리법이 더 다양한 언어로 소개된다면 머지않아 세계의 요리학과 교재에도 실리게 될 거라고 생각됩니다.

캐나다 신사들의 단아한 만두 빚기
레 마미톤스 그룹 실습에 앞서 먼저 한식의 기본인 오미(五味)와 오색(五色) 고명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한식의 대표적인 발효식품인 장(醬)을 소개하며 한식은 여유식(Slow food)으로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레 마미톤스 회원들에게 한식 강의를 하고 있는 김혜리 셰프 ©김혜리

▶오미(五味)
단맛(甘) : 설탕, 꿀, 조청, 물엿
짠맛(鹹) : 소금, 간장, 된장, 고추장
신맛(酸) : 식초, 감귤류의 즙
쓴맛(苦) : 생강
매운맛(辛) : 고추, 겨자, 천초, 후추, 생강

▶오색(五色) 고명
붉은색 : 고추, 대추, 당근
녹색 : 쪽파, 호박, 오이, 미나리
노란색 : 달걀 노른자
흰색 : 달걀 흰자
검정색 : 목이버섯, 석이버섯, 표고버섯

서양의 코스 요리에서 에피타이저는 보통 샐러드나 수프로 정해지는데 저는 한국의 만둣국을 첫번째 메뉴로 정했습니다. 만두 빚는 방법도 배우고 국물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요리이기 때문입니다. 만두피에 비트와 녹차를 이용해 색을 내는 법을 알려준 후, 모든 과정은 회원들이 직접 만들어 나갔습니다.

즐겁게 만두를 빚고 있는 레 마미톤스 회원들의 모습 ©김혜리
직접 만든 만두 국물을 붓고 있는 레 마미톤스 회원의 모습 ©김혜리

두 번째 코스는 백김치와 연근 칩과 함께 접시에 담은 생선 무조림.

요리 시범을 보이고 있는 김혜리 셰프 ©김혜리
생선 무조림 플레이팅 ©김혜리

세 번째 코스는 불고기 비빔밥.

불고기를 양념에 재우고 있는 모습 ©김혜리
비빔밥을 플레이팅하고 있는 모습 ©김혜리

마지막 디저트는 찹쌀가루와 식용 꽃을 이용해 만든 화전과 호두곶감말이, 그리고 수정과를 만들고 그 옆에 솔잎에 잣을 끼워 함께 플레이팅했습니다.

한식 디저트 플레이팅 ©김혜리
한식 디저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혜리 셰프 ©김혜리

저의 요리는 본연의 맛에 충실하면서 저만의 스타일을 살려 접시에 담는 것입니다. 시각적인 포인트를 살리되 멋을 부리기 위해 먹을 수 없거나 맛이 어울리지 않는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맛과 멋이 조화를 이룬 요리를 하려고 합니다.

이날 와인의 경우, 한식과 페어링(Paring)할 수 있는 한국의 전통주를 캐나다에서 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시어머니께서 알려주신 방법으로 제철 식재료들을 이용해 담가 두었던 효소와 함께 칵테일을 만들어 함께 시음을 했습니다.
레 마미톤스에서 한국인 최초로 한식 강의를 하며 한국의 맛을 알릴 수 있었던 즐겁고 뜻깊은 경험이었고, 마지막에 레 마미톤스 회장님으로부터 감사패도 전달 받았습니다.

레 마미톤스 회장이 김혜리 셰프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김혜리
나이아가라 컬리지 알란 커(Alan Kerr) 교수님과 함께 ©김혜리

우리의 자랑스러운 K-Food가 머지않아 세계 곳곳의 요리 학교에서 당당히 소개되는 날을 꿈꿔 봅니다. 그리고 다음 편에서는 한식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바이러스가 세상을 덮쳐 혼란스러웠던 한 해가 지나가고 어느 덧 새해가 되었습니다. 새해에는 독자 여러분들의 가정에 좋은 일만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참조

  1. 레 마미톤스 웹사이트 https://lesmarmitons.com
  2. 레 마미톤스 나이아가라 지부 https://niagara.lesmarmitons.com/photo-gallery

설날을 위한 특별식, 장미 만둣국 (Rose Dumpling Soup)

장미 만둣국 ©김혜리

▶ 만두피 재료 준비

  • 만두피 40개 분량
  • 중력분 4컵, 소금 1큰술, 식용류 1큰술, 차갑거나 미지근한 물 또는 비트즙 200ml

▶ 비트즙 만들기

  1. 빨간 비트 1개를 껍질을 제거한 후 믹서에 갈기 좋은 크기로 썰어 준비합니다.
  2. 사용할 용량의 1.5배 정도의 차가운 물과 함께 믹서에 간 뒤, 체에 걸러 즙을 사용하거나, 착즙기를 이용해 비트즙을 만듭니다.
  • 천연색 만두피 : 노란 비트즙, 녹차 가루, 시금치즙 등의 천연재료를 사용해 다양한 색의 만두피를 만들 수 있습니다. (레시피 영상 참조)

▶ 만두피 만들기

  1. 믹싱볼에 미리 준비한 중력분, 소금, 식용유, 비트즙을 넣고 주걱으로 덩어리가 뭉쳐질 때까지 섞다가 반죽이 어느 정도 뭉쳐지면 손으로 반죽합니다. 반죽을 비닐봉지에 넣어 공기를 차단한 후 실온에서 1시간 정도 발효시키거나, 반죽을 하루 전날 미리 만들어 냉장 보관했다가 사용하기 2시간 전에 실온에 꺼내두었다가 사용합니다. 반죽이 숙성되는 동안 만두소를 만듭니다.
  2. 숙성된 반죽을 비닐봉지에서 꺼내 매끄럽고 탄력이 생길 때까지 2분 정도 더 반죽합니다.
  3. 작업대에 밀가루를 살짝 뿌리고 반죽을 4~8등분 한 뒤,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시 비닐 봉지에 넣어 작업하는 동안 나머지 반죽이 마르지 않도록 합니다.
  4. 반죽을 밀대로 고르게 밀어 얇고 넓게 민 후 밥그릇 또는 원형 쿠키커터 등을 이용해 여러 개의 만두피를 동그랗게 찍어내거나, 하나씩 밀어서 만두피를 만듭니다.

▶ 만두소 재료 준비

  • 당면 1다발(건면 기준 50~60g). 당면을 뜨거운 물에 15분 정도 불린 후 물기를 빼서 식힌 다음 잘게 썰어 준비합니다.
  • 단단한 두부 반모(250g). 두부를 으깬 후 면보에 짜서 물기를 제거합니다.
  • 다진 쇠고기 또는 돼지고기 200g
  • 양파 ½개(100g), 버섯(표고버섯, 느타리 버섯, 새송이 버섯 등) 100g, 당근 100g, 양배추 100g, 쪽파 또는 부추 40g, 달걀 1개(선택), 청양고추(선택)
  • 소금 1큰술, 후추 ½큰술, 맛술 또는 청주 2큰술, 마늘 1큰술, 생강 ½큰술, 간장 3큰술, 굴소스 2큰술, 참기름 1큰술, 고춧가루 1작은술

▶ 만두소 만들기

  1. 큰 믹싱볼에 다진 고기를 넣고 소금, 후추로 간을 한 뒤 마늘, 생강, 간장, 맛술 또는 청주, 굴소스, 참기름, 고춧가루를 넣고 잘 섞어줍니다.
  2. 잘게 썬 양파, 당근, 양배추, 쪽파 또는 부추, 그리고 끓는 물에 데쳐서 식힌 후 잘게 썰어 물기를 뺀 버섯을 넣고 잘 섞어줍니다.
  3. 마지막으로 당면, 두부, 달걀(선택), 청양고추(선택)를 추가해 재료들을 모두 잘 섞은 다음 냉장고에 30분 정도 숙성시킵니다.
  • 익은 김치를 잘게 썰어 넣어 김치만두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장미만두 빚기

  1. 만두피 4장 사이사이에 물을 뭍여 조리대 위에 올려놓습니다.
  2. 각 만두피 중앙에 1큰술의 만두소를 올린 후, 만두피 윗면에 달걀물 또는 물을 살짝 바릅니다.
  3. 만두피를 아래에서 위로 접어 올려 떨어지지 않도록 잘 붙입니다.
  4. 만두를 옆으로 굴리며 장미 모양을 만들고 끝 부분에 달걀물 또는 물을 뭍혀 마무리합니다.
  5. 만두피를 바깥쪽으로 살짝 펼쳐 꽃봉오리 모양을 잡습니다.
  6. 찜기에 면보를 깔고 만두를 올린 뒤 10~15분 정도 찝니다. (마지막에 찬물을 약간 부으면 만두가 더 쫄깃해지고 잘 떨어집니다.)
장미만두를 빚는 과정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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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men Kim Cooking &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