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저의 지난 이야기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올해 7월은 제가 캐나다에 온지 8년이 되는 달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 8년간의 캐나다 정착기와 요리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서로 다른 직장 문화
꿈에 그리던 파인다이닝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저는 하루하루가 참 즐겁고,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이민자인 제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피할 수 없는 언어 장벽과 동료들과의 크고 작은 트러블, 그리고 학교와 직장에서의 경쟁과 시기 질투 등 참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한 가지 예로, 제가 처음 캐나다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때 한국과 캐나다의 직장 문화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에서 하던 대로 혼자 묵묵히 내가 할 일을 빨리 잘 해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사적인 대화를 피하고 일에 집중하면서 일과 관련된 대화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캐나다 동료들은 일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다른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제 기준에서 조금 too much talk으로 느껴진다고 해도 말이죠.^^;; 이런 문화적 차이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첫 라인 쿡 경험
처음 호텔에서 요리를 시작했을 때 저는 주로 연회 요리를 담당했습니다. 그러다 얼마 후 *알라카르트 요리를 하며 주방 *라인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른손잡이인 제가 왼손으로 프라이팬을 컨트롤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정말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프라이팬에 동전을 넣고 왼손으로 프라이팬을 돌리는 연습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연습할 여유도 없이 하루에 수백 명씩 되는 손님들의 요리를 하며 무거운 팬을 들다보니 어느 새 왼손을 쓰는 것에 익숙해져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몇 가지 요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알라카르트(à la carte) : ‘식단에 따라서’라는 의미의 프랑스어로, 호텔이나 식당 등에서 손님이 자신이 원하는 메뉴를 마음대로 한 가지씩 주문하는 일품요리
*라인 쿡(Line Cook) : 호텔이나 큰 식당 주방에는 전채 담당, 디저트 담당, 핫파트 요리사들이 각자의 라인에서 협업해 하나의 접시를 완성하는데, 이들을 라인 쿡이라고 한다.
주방 조직과 팀워크
주방에는 나름의 조직문화가 있습니다. 라인 쿡으로 일하면서 저도 처음에는 실수도 많았고 셰프에게 따끔하게 혼이 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셰프는 리더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고, 요리사는 셰프에게 무조건 “Yes Chef”로만 답해야 합니다.
모든 직업군이 그렇겠지만 주방은 팀워크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항상 위험한 불과 칼을 다루는 주방의 특성상 일을 할 때 동료와 호흡이 잘 맞아야 하고 자신이 맡은 포지션에서 제 역할을 다하면서도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는 바로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갑자기 요리사 한 명이 부상을 당하거나 응급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많은 손님들이 와 있는 상황에서 서비스를 중단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남은 동료들이 의기투합해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서비스를 마무리해야 합니다.
따라서 요리사는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면서 동시에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자신이 어떤 기분과 태도로 요리를 하느냐에 따라 주방의 분위기와 음식의 맛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요리 철학
저는 요리사로서 요리의 첫 번째 우선순위는 위생, 그 다음 첫 번째는 안전, 그 다음 첫 번째는 맛이라고 생각합니다. 간혹 어떤 요리사들이 요리의 시각적인 요소에만 너무 집중하다가 정작 맛을 보면 그 재료들의 조합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든지, 이유 없이 멋을 부리기 위해 음식에 장식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이어 캐나다에서 우연히 시작하게 된 요리사라는 직업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스스로 요리를 좋아하기 위해 ‘요리는 예술이야’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습니다. 그 생각이 저를 더 나은 요리사가 되도록 이끌어주었지만, 동시에 비주얼만 화려한 요리를 만들지 말자는 경각심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물론 요리에 있어 시각적인 요소가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의 본질은 맛이라는 신념을 항상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타이밍과 완성도(디테일)입니다. 왜냐하면 요리사들이 주방에서 매일 똑같은 메뉴를 반복해서 만들더라도, 서빙을 받으시는 손님들은 한 분 한 분이 모두 다른 분이기에 한 접시 한 접시를 모두 ‘처음 만드는 요리’처럼 한결같은 정성으로 차가운 요리는 차갑게, 뜨거운 요리는 뜨겁게 코스의 순서와 타이밍에 맞춰 완벽한 모습으로 테이블에 올려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요리사는 멀티태스킹을 하며 실수 없이 라이브로 끝까지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공연자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바쁘더라도 각 요리 접시마다 사용해야 할 재료와 절대 사용하지 말아야 할 재료를 정확히 알고, 재료 준비와 조리과정에서의 교차오염(Cross contamination)에 대해 항상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실수가 있으면 즉시 버리고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또한 요리사는 메뉴에 정해진 요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손님이 많아 정신 없이 바쁜 시간에 예약 없이 갑자기 알레르기가 있는 손님이 방문하시는 경우, 아무리 바쁘더라도 모든 주방기구를 구분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은 물론, 그 손님의 특별한 요청에 귀 기울여 실수 없이 서비스를 해야 합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요리를 동시에 조리하면서 머리로는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 하고, 불과 칼을 다루며 침착하면서도 신속하고 정확하게 프로페셔널한 요리를 해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신적, 육체적으로 정말 많은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매일의 서비스가 끝나고 나면 마치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처럼 녹초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늘 하루도 실수 없이, 컴플레인 없이, 고객들에게 만족과 기쁨을 드렸다는 뿌듯함 속에서 새로운 힘을 얻게 됩니다.
창작요리의 시작
제가 일했던 이탈리안 다이닝의 특성상 정말 많은 종류의 파스타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기존의 메뉴들 외에도 날마다 셰프의 새로운 스페셜 메뉴를 선보여야 하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메뉴를 고민하고 창작하는 일이 저는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창작메뉴를 계속 연구하는 과정에서 요리에 한계가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고, ‘요리는 예술’이라는 저의 신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나이아가라의 특성상 제가 일했던 이탈리안 파인다이닝에는 세계 각지에서 많은 손님들이 오셨는데, 하루는 세계적인 팝의 황제 마이클 볼튼이 카지노 내의 공연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스태프들과 함께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늦은 시간이라 가벼운 식사만 하셨지만 제가 직접 요리를 해서 전해 드릴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또한 캐나다의 유명한 셀러브리티 셰프 마이클 스미스(Michael Smith)가 방문했을 때, 한식을 접목해 만든 저의 창작요리를 선보이며 요리에 대해 설명해 드렸던 적도 있습니다. 요리사에게 있어 자신이 만든 요리를 잘 설명하는 프리젠테이션 능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요리 레시피 대신 그동안 제가 파인다이닝에서 창작했던 몇 가지 요리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의 더 많은 요리 레시피와 캐나다에서의 생활 이야기는 저의 유투브 채널에 꾸준히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그럼 저의 요리 이야기 다음 편도 기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 유투브 채널 : Carmen Kim Can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