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착각
내가 재미있는 유머로 사람들을 즐겁게만 해주면 만사 오케이일까? 내 유머를 듣고 웃는 사람들은 다 나를 좋아할까?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직원들과 늘 유머를 나누는 사장님이 있었습니다. 그가 유머를 날릴 때마다 직원들은 꺄르륵 웃음을 터뜨렸지요. 그런데 어느 날 사장님이 유머를 던졌는데 다른 직원들은 웃는데 한 여직원은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기분이 언짢아진 사장이 그 여직원에게 왜 웃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여직원이 대답했습니다. “저 내일 퇴사하잖아요!”
웃음이 때로는 권위에 대한 복종일 때가 있습니다. 재미있어서 웃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직장 상사이거나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그냥 웃어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머로 사람들을 웃기기 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유머를 던지기 전에 먼저 내가 신뢰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웃음의 상하관계
언젠가 어느 기업체 팀장을 만났는데 자기 회사 사장님은 유머감각이 넘친다고 합니다. 회의시간에도, 술자리에서도, 외부미팅에서도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놀라운 재주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사장님의 유머가 역겹다고 합니다. 재미있게 듣다가도 듣고나면 온 몸에 닭살이 돋고 마음까지 오그라든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걸까요?
그는 자신의 사장님을 “신뢰가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직원들을 안하무인으로 무시하고, 직원과의 약속을 자기 마음대로 헌신짝처럼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신뢰가 제로라는 겁니다. 그런 사장님이 직원들에게 계속 유머를 던지니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역겹게 느껴질 수밖에요. 그냥 체면 치레로 웃어는 주지만 속으로는 그 인간 면상에 죽빵이라도 한 대 날려주고 싶은 심정이라는 겁니다.
호감이 있는 웃음
믿음과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의 유머에 진심으로 웃어주기란 쉽지 않습니다. 유머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별로 미덥지 않을 것입니다.
몇 년 전 미국 메릴랜드대학교의 로버트 프로빈 교수가 한 가지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캠퍼스에서 웃고 떠드는 1,200명의 대화 내용을 분석해보니 농담이나 우스운 이야기 때문에 웃는 경우는 10~20%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반면 ‘만나서 반가워’와 같은 사소하고 일상적 대화를 나눌 때 사람들은 가장 많이 웃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호감이나 친밀감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 자체가 즐거워서 웃는 것이지, 상대방이 던진 농담 때문에 웃는 일은 생각보다 아주 적었던 것입니다.
신뢰가 있는 웃음
호감이나 친밀감에서 나오는 웃음보다 더 강력한 것은 신뢰에서 나오는 웃음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사람을 진심으로 믿고 신뢰한다면 그 사람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까지도 편안하고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손자는 손자병법에서 장수의 최고 덕목 중 하나로 신(信)을 강조합니다. 병사들과 장군 간에 신뢰가 없으면 전투를 수행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임금과 장수, 병사들 간에 신뢰가 없이는 적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뢰을 얻지 못한 사람의 말이나 유머는 코웃음을 유발할 뿐입니다.
신뢰 없는 사람의 유머
신뢰가 깨진 사람의 말은 나쁜 의도가 없더라도 듣는 사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모든 말이 짜증으로 다가오는데 거기서 유머를 한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
반대로 신뢰하는 사람이 던지는 말은 호기심과 기대감이 저절로 생깁니다. 심지어 그 사람의 실수나 재미없는 말에도 웃음이 나고 즐겁습니다. 이것이 신뢰관계에서 나오는 웃음입니다.
춘추전국 시대, 스승인 공자에게 자공이 물었습니다. “나라를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공자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국민들이 먹고 사는데 애로가 없게 하고(足食), 국방을 튼튼하게 하며(足兵), 백성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民信). 이 3가지 중에서 백성의 신롸가 가장 중요하다.”
공자는 밥이나 안전보다 백성에게 신뢰를 얻는 것이 첫번째라고 말합니다. 한마디로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것입니다.
신뢰의 가치
불신이 생길 때 인간관계는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되며, 조직이나 가정에서도 신뢰가 없으면 불필요한 시비와 감정 낭비가 발생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머를 던지는 것은 마치 펑크난 타이어로 도로를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속도가 나지 않는데 계속 엑셀레이터를 밟고 있으면 엔진에 무리가 가서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유머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머 그 자체가 아닙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진정한 웃음을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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