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운전을 하고 다니다 보면 여기저기에 분홍색 꽃나무들이 예쁘게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꽃 색깔도 흰색부터 연분홍, 꽃분홍, 진분홍까지 아주 다채롭다. 한국의 고속도로에서 많이 보았던 꽃인데, 미국에서는 6월 말이 되면 가는 곳마다 풍성하게 핀 이 꽃을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혹시 이 꽃나무 이름이 뭔지 아시는지?
한국에서는 이 꽃나무를 배롱나무라고 부른다. 어감이 재미 있다. 그런데 이름의 어원을 따라가 보면 더 재미 있다. 배롱나무는 ‘백일홍나무’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백일홍은 원래 한해살이 풀꽃이다. 7월부터 9월까지 100일 동안 핀다고 해서 ‘백일홍’이다. 꽃이 선명하게 오래 피어서 조경용으로 아주 인기가 많다. 실제로 풀꽃이 100일 정도 간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백일홍 풀꽃 말고 100일 동안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었으니, 사람들이 이 나무를 백일홍나무 또는 목(木)백일홍이라고 불렀다. 그러다 나중에는 백일홍나무 ⇒ 배기롱나무 ⇒ 배롱나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나무 이름이 이렇게 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블루릿지 산 밑에 살던 시절, 옆집 할머니 마마 제이니(Mama Janie Correll)를 따라 밭농사를 지었다. 그때 할머니가 말씀하시기를, “5월이 되기 전에 밭에 씨를 뿌리면 안 돼. 도토리 나무의 마른 잎사귀가 다 떨어지고 나면 그때 씨를 뿌려야 해. 나의 엄마 마마 비(Mama Bee)가 가르쳐준 거란다.”
그리고 할머니는 미국 농부들이 사용하는 농사 달력을 갖고 계셨는데, 그 달력에 따르면 5월이라도 씨를 뿌려도 되는 날과 안 되는 날이 정해져 있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어느 해 날씨가 좋길래 농사 달력의 날짜를 무시하고 오이 씨앗을 심었는데 그 해에는 오이가 단 한 개도 안 열리더라는 믿기 어려운 경험담을 전해 주시기도 했다.
그래서 할머니가 농사 달력을 보고 정해 주신 날짜에 할머니랑 같이 감자, 옥수수, 오이, 토마토, 수박을 심고, 할머니가 안 심는 배추, 무, 부추, 쑥갓, 들깨, 고추까지 다 심고 나니 어느 새 5월이 훌쩍 지나고 6월에 접어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여기저기에서 저 예쁜 분홍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색깔도 가지가지, 풍성한 꽃송이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때는 거기서 계속 살 거라 생각해서 저 꽃나무를 마당에 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당장 할머니 댁으로 달려가 마마 제이니에게 물었다. “마마 제이니, 저 꽃나무 이름이 뭐예요?” 그러자 할머니께서 ‘크립 머틀’이라고 알려 주셨다. “예? 아이고, 어렵네요. 스펠링 좀 써 주세요.” 해서 알게 된 배롱나무의 영어 이름은 Crepe Myrtle! 머틀 비치에서 왔나 싶었지만, 원산지는 중국이었다.
그런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미국 사람들이 이 꽃나무를 부르는 방식이 매우 다양했다. Crape Myrtle, Crapemyrtle, Crepe myrtles, Crepemytles… 그 중에서도 남부에서는 전통적으로 Crepe Myrtle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우리 할머니가 왜 잘못 알려주셨는지 이해가 되었다. 정확한 학명은 lagerstroemia crape myrtle이라고 한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Crape Myrtle의 종류가 무려 60여 가지가 넘는다는 것이다. 더운 여름 내내 예쁜 꽃을 피우고, 가을이 되면 잎이 밝은 오렌지색이나 빨간색으로 물들어 가을 분위기를 더해 주기 때문에 정원수로 가장 인기 있는 수종이라고 한다.
그런데 만약 마당에 배롱나무를 심을 거라면 어떤 색 꽃나무를 심을지 신중하게 고르셔야 할 것 같다. 여름 내내 100일 동안 그 꽃을 매일 보게 될 테니 말이다. 어린 묘목에도 꽃이 피고 가격도 $10 내외이니, 이 즈음에 종묘장에 가셔서 꽃 색깔을 보고 마음에 드는 꽃을 골라 심으면 좋을 듯하다. 내가 고른 것은 붉은빛이 도는 ‘다이나마이트 크립 머틀’인데, 강력한 붉은 꽃송이들이 폭발하듯 흐드러지게 피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자, 이제 지나가다 저 꽃나무를 보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꽃나무 이름을 알려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