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리폼드 (First Reformed, 2017)
감독: 폴 슈레이더
주연: 에단 호크, 아만다 사이프리드
잠자던 의식을 깨우는 영화
어두운 사회 현실과 그로 인해 파괴되어 가는 인간의 내면을 탐구한 영화 <택시 드라이버 (1976)>의 각본을 썼던 폴 슈레이더는 사회적 이슈가 되는 주제를 분석적인 문체로 꾸준히 영화로 만들어온 각본가이자 비평가인 노장감독이다.
2017년에 개봉한 그의 신작 영화 퍼스트 리폼드(First Reformed)는 기후 변화가 야기할 인류의 절망과 그것을 가속화하는 정치 기득권과 결탁한 종교의 타락을 바라보는 한 성직자의 내면적 고통과 갈등을 깊이 통찰하고 묵상한다.
특히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고등학생 역으로 얼굴을 알리고, <비포 선라이즈> 등에서 로맨티스트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에단 호크가 이 영화를 통해 30회가 넘는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만큼 에단 호크의 역대급 인생 연기를 만나볼 수 있다.
관광지로 전락한 교회
영화의 첫 장면은 아날로그 텔레비전 화면과 비슷한 4:3 비율의 프레임으로 뉴욕 스노우 브리지에 위치한 퍼스트 리폼드 교회의 첨탑을 향해 카메라가 천천히 앞으로 움직이면서 시작한다. 보통 영화의 스크린은 가로로 긴 화면을 사용하는데, 폴 슈레이더 감독은 관객들이 인물과 공간에 집중할 수 있도록 4:3 비율의 화면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어 발목 길이의 검은 색 예복을 입은 목사 에른스트 톨러가 엄격함과 왠지 모를 불안함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등장한다.
영화의 무대가 되는 퍼스트 리폼드 교회는 1767년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세운 교회로 올해로 250주년을 맞는 유서 깊은 교회지만, 지금은 지교회인 ‘풍요로운 삶(Abundant Life)’이라는 대형교회의 소유다.
주인공 톨러 목사는 대형교회의 지시에 따라 이제는 관광지로 전락한 퍼스트 리폼드 교회에서 가끔 관광객을 맞이하고 기념품을 팔며 간신히 교회를 유지하고 있다. 예배 시간에는 고작 서너명의 관광객들에게 설교를 하고, 골동품이 된 오르간은 수리 비용이 없어 사용할 수 없다. 교회 건물에 문제가 생기면 그가 직접 고쳐야 한다. 그리고 그의 설교는 지루하다.
고통 위에 고통
톨러 목사는 대단히 지적이지만 어딘지 우울하다. 혼자 밥을 먹고 외출도 하지 않는다. 주로 독서를 하거나 설교 준비를 하고, 고장난 곳을 고치고 정원에서 일을 하고 간혹 관광객이 오면 안내하는 일을 한다.
그가 이라크 전쟁에 군목으로 있을 때 아들을 권해서 이라크에 파병되었다가 죽었다. 그로 인한 죄책감과 아들을 잃은 슬픔과 고통으로 아내와의 결혼생활도 이혼으로 끝이 났다. 그 과정에서 폐암까지 걸려서 그는 설교를 하면서 간혹 기침을 한다. 정신적 슬픔과 육체의 병으로 심신이 황폐해진 그는 매일 고해성사나 신앙적 번민 같은 일기를 쓰며 고통을 달랜다.
절망 아래 절망
그러던 어느 날 메리라는 여성이 자신의 남편을 만나 상담해 달라고 요청한다. 톨러 목사는 근처에 ‘풍요로운 삶’이라는 대형교회가 있고, 그 교회 목사는 유능하고 상담원도 많으니 그 교회에서 상담하는 어떻겠냐고 권하지만, 메리의 남편 마이클은 그 교회는 기업 같아서 싫다고 하여 톨러 목사가 만나게 된다.
메리는 임신을 한 상태였는데, 그녀의 남편 마이클은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던 중 캐나다에서 옥살이를 하고 최근 집으로 돌아온 급진적인 환경운동가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마이클은 지구의 온난화로 황폐해진 환경과 격변하는 자연재해들을 이야기하며 이런 곳에 아이를 데려올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실까요? 우리가 세상에 저지른 일을요?”
톨러 목사는 “이 세상에 아이를 데려오는 절망은 세상에서 아이를 떠나 보내는 절망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위로하며 인생에 늘 공존하는 절망과 희망을 같이 붙잡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앙적 고뇌와 번민
톨러 목사는 마이클과 대화하며 자신의 내적 고통으로 인해 그동안 자신이 구축해온 신앙과 신념에 회의를 품게 되고 세상을 보는 자신의 시선이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는 병원에서 금지한 위스키를 매일 마시며 더욱 더 깊은 고뇌에 빠지고 그의 몸은 점점 더 쇠약해져간다.
어느 날 메리는 창고에서 마이클이 제조한 자살폭탄 조끼를 발견해 황급히 톨러 목사에게 가져오지만, 이튿날 마이클은 대기업의 유독성 폐기물 처리장에서 장례를 치러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살한다.
마이클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톨러 목사는 ‘풍요로운 삶’ 교회에 도움을 요청하는데, 교회로부터 정치적 행동을 자제하라는 경고를 받는다. 그 교회가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대기업으로부터 엄청난 기부금(헌금)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톨러 목사는 대기업의 환경오염과 불법행위에 침묵하고 암묵적인 공모를 하며 세상을 파괴하고 있는 교회에 대해 실망과 분노를 느끼며 그의 신앙적 갈등이 더욱 고조된다.
“신이 직접 이 세계를 정화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신이 움직이기 전에 우리가 이 세계를 정화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하는가?”
마이클의 죽음 이후 톨러 목사는 메리에게 정신적인 위안을 제공하면서 그들은 어느 샌가 서로의 영적 교감의 상대가 된다. 어느 날 메리와 툴러 목사가 중력을 거슬러 공중부양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하고 신비로운 영적 체험이며, 영화 <희생(1986)>에서 주인공 알렉산더가 인류를 구하기 위해 마리아와 한 몸이 되어 중력을 떨치고 수평으로 공중에 떠오르는 장면의 오마쥬이기도 하다. 여주인공들의 이름이 성모 마리아를 연상시키는 것 또한 우연이 아닌 듯하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퍼스트 리폼드 교회의 250주년 기념행사가 ‘풍요로운 삶’ 교회의 도움으로 진행된다. 그날 아침 톨러 목사는 자신의 병든 몸을 대의를 위해 경각심을 일깨울 제물로 바칠 결심을 한다. 자살폭탄 조끼 위에 예복을 입고 교회당으로 가려던 그는 행사장에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메리가 있는 것을 보고 황급히 폭탄 조끼를 벗는다. 그리고 자신의 뜻이 좌절되자 마치 인류를 위해 죽음을 선택했던 예수처럼 쇠가시줄을 온몸에 감으며 고통으로 신음한다.
그는 이어 피가 배어나는 예복을 입은 채 두번째 자살 시도로 청소용 화학세제를 마시려고 컵에 붓는다. 그 순간, “에른스트!” 하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메리의 음성을 듣고 컵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그리고 메리와 툴러 목사의 깊고 격정적인 키스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이 애매한 마지막 장면은 결국 사랑만이 희망이라는 진부한 결론이라기보다는, 끝없는 절망에 다다른 인간이 희망을 선택하고 변화(Reform)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톨러가 그의 일기에 썼던 신학자 토머스 머튼의 한 구절. ‘절망은 너무나 위대한 자존심의 발전이며, 신이 우리보다 창조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이상의 자기 확신이다.’라는 말은 절망의 뿌리가 결국 인간의 오만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자살 직전 톨러가 새 생명을 잉태한 메리를 품에 안은 것은 결국은 그가 희망을 선택한 상징적이면서도 강렬한 피날레이고, 절망의 순간 희망을 보라는 슈레이더 감독의 바람이기도 하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 트래비스는 길거리에 난무하는 더럽고 타락한 것들을 제거해 세상을 정화하려 했고, 톨러 목사는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을 지키기 위해 테러를 감행하려고 했다. 범죄자 트래비스와 신실한 목사 톨러, 두 주인공은 세상의 정반대에 있는 것 같지만 폭력과 파괴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했던 모습은 서로 닮아 있다.
타락한 세상에서 죄책감이 마비된 개인들과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의 자기 파괴적 충동, 그리고 보속의 가능성 등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슈레이더 감독의 비관적이지만 무기력하지 않은 인간의 내면 탐구와 깊은 통찰이 느껴진다.
또한 교회는 사회정치 문제에 침묵해야 하는가? 환경오염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헌금을 받고 교회를 확장하며 그들을 축복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교회의 큰 규모에 자긍심을 느끼고 가난한 동역자를 무시하는 것은 옳은가? 등의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끝으로 슈레이더 감독은 지금 인류의 앞에 놓인 환경문제와 그에 맞닿아 있는 절망의 절박함을 이 영화를 통해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