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뷰티 (The Great Beauty, 2013)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
주연: 토니 세르빌로, 사브리나 페릴리
진정한 아름다움
인간은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고 싶어한다. 자신이 세상을 살다간 시간 속에서 뭔가 의미를 찾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하루하루 우리를 압도하는 실존적 고민과 세상의 편견에 휩쓸려 자신을 잃어버리고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갈증만 느끼다 결국 죽음의 문턱에 다다를 때 우리는 인생의 허무를 느끼게 된다.
영화 그레이트 뷰티(The Great Beauty)는 삶의 허무와 권태에 빠진 소설가 젭 감바르델라의 심리적 여정을 그린 영화이다. 그의 경험과 깨달음을 통해 영화는 관객들에게 인생에서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되묻고 있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 영화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의 계보를 잇는 파올로 세렌티노 감독의 작품으로 2013년 타임지 선정 최고의 영화 2위에 올랐다. 그리고 2014년 칸느영화제 경쟁부분 초청, 제86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성공은 아름다운가?
영화 그레이트 뷰티의 주인공 젭 감바르델라는 40년 전에 <인체의 기관>이라는 단 한 권의 소설로 부와 명예를 얻고, 로마 사교계의 왕으로 불리며 자신의 아름다운 집에서 환락의 파티를 즐기며 산다.
그러나 세상적 성공을 이룬 같은 젭은 그 소설 이후 아무런 작품활동도 없이 한 잡지사의 인터뷰 기자로 소일하며 하루하루 자신의 삶에서 권태감을 느끼게 된다.
어느 덧 65세 생일을 맞은 젭은 자신의 화려한 생일파티에서 광란의 시간을 즐기는 듯하지만 왠지 허무하고 무의미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다. 결국 그는 파티를 뒤로 하고 ‘이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데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독백을 남기고 홀로 로마 거리를 배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 시절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엘리자의 부고를 듣고 그는 깊은 상실감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삶과 죽음, 그리고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는 마당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관찰하고, 로마의 거리와 강을 따라 산책하며 아름다운 풍경과 건축물을 감상하고, 현재에 더 가까이 관심을 기울이며 우리 삶에서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예술은 아름다운가?
예술은 보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움의 발현이다. 그러나 예술적 아름다움을 대해 젭은 종종 회의적인 시선을 던진다.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것이 트렌드인 전위 공연 예술가들은 과격하면 과격할수록 많은 관객들로부터 환호와 박수를 받는다.
또래 친구들과 놀고 싶은 어린 소녀 예술가를 억지로 끌고 와 거대한 캔버스에 페인트를 던지는 포퍼먼스를 강요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비정하기만 하다. 그러나 페인트를 던지고 뭉개며 절규하는 이 소녀를 걱정하던 마음은 소녀가 이것으로 수백만 달러를 벌 것이라는 말에 금세 사그라지고 만다.
또한 젭의 작가 친구는 오랜 노력 끝에 자신의 희곡을 무대에 올린 후 막상 찬사를 받게 되자 회의를 느끼며 로마를 떠나버린다.
로마의 부자들은 대성당처럼 엄숙해 보이는 보톡스 진료소에서 고백성사를 하듯 진지하게 줄을 서 자신의 얼굴의 모자란 곳을 주사기로 찔러 채워 넣으며 성형을 하고, 예술 애호가인 척하는 귀족들, 신념의 허구에 빠져있는 좌파 지식인들, 부유한 사업가와 그의 아내 등 사회적 성공을 이룬 이들의 허구와 위선적인 삶을 보면서 젭은 환멸과 함께 공허감을 느끼게 된다.
죽음은 아름다운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인간의 또 다른 욕망을 목도하며 허무감에 빠져 있던 젭은 친구의 딸이자 스트립퍼인 라모나를 만나 따뜻한 인간적 교감을 나누게 된다. 그런데 라모나에게는 가족들도 모르는 병이 있었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 영화에서 ‘죽음’은 인간의 유한성, 즉 언젠가는 사라질 거라는 사실에 근거한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상기시킨다.
젭에게 삶의 아름다움을 가져다줄 것만 같았던 라모나와의 사랑도 그의 아련한 첫사랑 엘리자에 대한 기억도 죽음으로 인해 영원히 아름답게 남게 된다.
그런데 장례식조차 일종의 사교행사로 여기던 젭은 더 없이 훌륭하게 보일 만한 애도의 방법을 아무 감정없이 읊조리다가, 정작 친구 아들의 장례식에서 관을 들어줄 친구 하나 없이 외롭게 죽어간 아이의 관을 들면서 울음을 터트리게 된다.
죽음은 멀리서 보기엔 아름다울 수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오롯이 남은 자들의 몫이다.
그 사건 이후 시종일관 냉소적이고 씁쓸한 표정을 하고 있던 잽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난다. 엘리자를 잃고 평생 그녀를 애모하고 살겠다며 흐느껴 울던 엘리자의 남편이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것을 보았을 때, 라모나가 예술작품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을 때, 일주일 동안 키스를 하고 있다는 어린 커플들을 보았을 때 잽은 미소를 짓는다. 그는 작고 사소한 일상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일까?
우리 일상의 작고 사소한 순간들은 분명 아름답지만 그것이 과연 젭이 찾고 있던 인생의 진정한 아름다움이었을까?
영적인 것은 아름다운가?
젭의 시선은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로 향한다. 그때 성인의 반열에 오른 수녀 마리아가 바티칸의 초청으로 로마를 방문하게 되고, 그녀는 젭의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된다.
식물의 뿌리만 먹고 살며 병자를 치유하는데 일생을 바친 104살의 성녀는 시종일관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젭에게 왜 다른 작품을 쓰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잽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름다움을 찾고 있었어요…. 그런데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리자 성녀가 말한다. “내가 왜 식물의 뿌리만 먹고 사는지 아나요? 뿌리는 근원이기 때문이에요.”
그녀의 이 한마다는 젭이 아름다움을 찾는 여정을 마치고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하도록 돕는다.
진정한 아름다움
젭은 깨닫게 된다. 아름다움의 근원은 생명이고, 우리 삶 자체라는 것을. 그가 발견하고자 했던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인간의 근원적 노스탤지어일뿐, 그것은 저 너머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눈부시게 빛나던 젭의 18살 첫사랑의 기억은 현기증 나도록 아름다운 그 순간이었을 뿐. 그 이상의 것은 모두 저 너머의 것이다.
그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저 너머엔 저 너머의 것이 있다. 나는 저 너머에 있는 것은 다루지 않겠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시작된다. 결국 다 속임수다. 모든 게 속임수다.’
다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젭의 마지막 독백과 영화 초반부에 인용된 셀린느의 <밤의 끝으로의 여행> 중 ‘삶은 모두 소설과 같은 허구이며 죽음으로 향하는 여행’이라는 구절은 삶에 의미를 찾고자 하는 실존적 고민에 힌트를 던져준다.
자신이 추구하던 것이 부재함을 온전히 깨달은 인간의 자유로운 생각과 상상은 우리 삶에 활력을 더해주고, 우리의 가장 중요한 근원인 ‘삶 그 자체’를 더욱 사랑하게 한다.
내 인생을 사랑하자
인간은 지금도 자기 인생에 부여된 어떤 특별한 의미를 찾아 밤의 끝을 향해 진지하고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여행을 하고 있다. 그 여행자들에게 다른 여행자가 이런 말을 들려준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
남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일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 – 킴벌리 커버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