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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광기 어린 스승의 채찍질, 위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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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칼럼] 광기 어린 스승의 채찍질, 위플래쉬
예술적 광기와 타율적 억압에 사로잡힌 천재의 삶, 위플래쉬 ©New Statesman
박성윤
미주 한인 우리세상 방송에서
‘박성윤의 영화는 내 인생’ 코너 진행
[email protected]

위플래쉬 (Whiplash, 2014)
감독: 데미안 샤젤
주연: 마일스 텔러, J.K. 시몬스

위대한 재즈 드러머를 꿈꾸다
“나는 최고가 되고 싶어. 그러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고, 그래서 너와 사귈 수 없을 것 같아.”
미국 최고의 음악학교 쉐이퍼 아카데미에 갓 입학한 드러머 앤드류는 위대한 재즈 드러머가 되기 위해 여자친구 니콜에게 단호하게 이별을 고한다.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로 아카데미 6관왕을 석권한 데미안 샤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며, 선댄스 영화제를 비롯한 각종 영화제와 평단으로부터 극찬을 받은 영화 <위플래쉬>. 천재를 갈망하는 광기어린 스승의 채찍질과 위대한 욕망을 품은 제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스승과의 만남
앤드루는 교내 평범한 밴드의 보조 드러머다. 앤드루의 아버지는 한때 작가를 꿈꾸었으나 지금은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소박한 삶을 꾸려가며 가끔 앤드루와 영화를 보러 간다. 앤드루는 그 영화관에서 일하는 니콜을 예전부터 짝사랑해 오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사귀게 된다.
어느 날 앤드류가 학교에서 늦게까지 드럼 연습을 하고 있을 때, 교내 최고 밴드인 ‘스튜디오 밴드’의 지휘자 플레처 교수가 연습실로 들어와 앤드루의 실력을 테스트한다. 플레처 교수는 완벽주의와 가학적인 교육방식으로 악명이 높았다.
플레처에게 발탁된 앤드루는 얼마 후 있을 재즈 밴드 경연대회에 보조 드러머로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밴드의 절대권력자인 플레처 교수는 앤드루가 자신의 박자에 못 맞춘다며 그에게 의자를 집어던지고 뺨을 때려가며 박자를 익히게 한다. 굴욕감과 악에 받친 앤드루는 손바닥에서 피가 날 만큼 미친듯이 드럼 연습에 몰두하며, 여자친구 니콜에게도 이별을 고한다.
그런데 경연대회 당일, 앤드루는 실수로 드럼 악보를 잃어버리게 되고, 메인 드러머는 악보 없이는 연주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플레처는 악보를 외워버릴 정도로 연습한 앤드루를 메인으로 지명하고, 결국 ‘스튜디오 밴드’는 1등상을 거머쥐게 된다. 그 악보가 왜 사라졌는지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플레처의 소행이 아니었을까 추측할 뿐이다.

스승의 채찍질
플레처 교수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Good job(그 정도면 됐어)!”이다. 그는 전설적인 재즈 색소폰 연주자 챨리 파커가 볼품 없는 연주를 하자 함께 공연하던 재즈 드러머 조 존스가 심벌즈를 풀어 그에게 던져버린 사건 이후 찰리 파커가 위대한 재즈 연주자 ‘버디 리치’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일화를 에로 들며 자신의 가혹한 교육방식을 정당화한다.
플레처 교수는 재능은 있으나 한계를 넘지 못하는 앤드루에게 온갖 끔찍한 욕설과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가하며 한계 너머로 몰아붙인다. 앤드루 역시 그의 권력 아래 복종하거나 반항하면서 광적으로 드럼 연습에 집착한다. 드럼스틱 때문에 살갗이 찢어진 앤드루의 손과, 그의 땀과 피로 물든 드럼은 인간의 위대함과 천재의 광기를 동시에 보여준다.
버디 리치 같은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이 되고 싶은 앤드루와, 그의 욕망을 알아보고 가혹한 채찍질(Whiplash)을 가하며 제자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조련사 플레처. 그들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보다는 악어와 악어새를 연상시킨다.

광기의 끝
어느 날 플레처 교수는 자신의 제자였던 션 케이시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며 눈물을 흘리고, 학생들과 그의 음악을 들으며 추모한다. 그러나 사실 션은 교통사고가 아니라, 플레처의 학대로 인해 극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을 한 것이었다.
플레처가 션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은 자신의 교육방식에 대해 전혀 반성도 후회도 없으며, 단지 음악적 동지나 훌륭한 성과를 잃은 상실감을 슬퍼할 뿐임을 보여준다.
앤드루 역시 또 다른 션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었다. 그는 정말 ‘피나는 노력’ 끝에 스튜디오 밴드의 메인 드러머로 재즈 경연대회에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대회장으로 가던 중 그가 탄 버스가 펑크나는 바람에 급히 렌터카를 빌려 달려가던 앤드루는 그만 트럭과 충돌하고 만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상황에서도 앤드루는 죽을 힘을 다해 겨우 대회장에 도착해 무대에 오르지만, 뇌진탕이 와서 연주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플레처는 앤드루를 밴드에서 쫓아내 버리고, 이에 격분한 앤드루가 그에게 달려들었다가 결국 퇴학을 당하고 만다.
평생의 꿈이었던 드럼 연주를 다시는 할 수 없게 된 앤드루에게 션의 변호사가 찾아와 션이 플레처를 만난 이후 극도의 불안감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목을 매 자살했다며, 플레처의 가혹행위에 대해 증언해줄 것을 부탁한다. 신변보호를 약속받은 앤드루는 그의 가혹행위에 대해 증언하고, 플레처는 해임된다.

인생의 반전
그 후 꿈이 없이 살아가던 앤드루는 우연히 어느 재즈바의 연주자 리스트에서 플레처의 이름을 보고 들어가 그와 재회하게 된다. 플레처는 얼마 후 카네기홀에서 있을 연주회에 앤드루를 드러머로 초대한다. 영화의 반전은 여기서부터다.
앤드루는 아버지와 함께 다시 한번 부푼 가슴을 안고 카네기홀 무대에 오르지만, 곧 당황하게 된다. 플레처가 앤드루에게 다가와 조용히 한마디를 건넨다. “내가 모를 줄 알았나? 네놈이 찔렀다는 걸.”
그리고 플레처는 앤드루가 모르는 새로운 곡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플레처가 앤드루를 완전히 엿먹이려는 계략이었고, 결국 앤드루는 연주를 망치고 관중들은 냉소에 찬 박수를 보낸다. 절망 속에 무대를 내려온 앤드루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갑자기 앤드루가 다시 무대 위로 성큼성큼 걸어 나간다. 그리고 플레처의 리드 없이 바로 드럼 솔로 인트로를 시작하고 당황해 하는 플레처에게 말한다.
“당신이 내 신호를 받아!”
순식간에 밴드를 장악한 앤드루가 연주를 계속하자 플레처는 지휘를 하기 시작한다. 드럼을 온통 땀으로 적시며 광기어린 연주를 이어가는 앤드루를 보던 플레처는 앤드루가 자신이 원하던 제2의 찰리 파커가 되었음을 확인한다. 앤드루와 플레처는 묘한 눈빛을 교환하며 광기어린 연주를 계속하고, 관중들은 이 완벽한 리듬에 감동하고 전율한다.
그런데 모든 감각이 열리는 듯한 황홀경 속에 영화가 막을 내린 후에도 관객들은 이것이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모호하다. 다만 샤젤 감독은 앤드루가 꿈을 이뤘지만, 션이나 찰리 파커처럼 비극적으로 죽을 수 있다는 인터뷰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