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 놀이
취학 전 아이들은 보통 유치원에 다니지만 집에서 혼자 노는 시간도 많습니다. 이럴 때 아이들은 혼자서 역할 놀이를 하곤 합니다. 자기가 이런저런 상황을 설정하고 장난감과 대화를 이어 나갑니다. 물론, 아이 혼자 주고받는 대화가 좀 억지스럽거나 부자연스럽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럴 듯하게 감정을 실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혼자 하는 역할 놀이를 통해 상상력을 키워나가고 동시에 자신의 언어 능력을 빠르게 향상시킬 준비를 하게 됩니다.
언어 습득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실제 대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향상되는 과정이지만, 충분한 시간 동안 자기 스스로의 연습이 더해지면 훨씬 더 빠른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유학생들의 고민
20여년 전 미국 어학연수 중에 여러 한인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중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 온 학생들부터 미국에 온지 2~3년 된 학생들까지, 저는 만나는 학생들에게 영어를 얼마나 잘 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자신 있게 “영어를 잘한다”고 대답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제가 보니 어릴 때 미국에 와서 7~8년을 보낸 학생들은 일상에서 별 어려움 없이 영어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대만큼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것은 대부분 2~3년차 유학생들이었죠.
한국에 있는 많은 학생들이 미국에서 2~3년만 있으면 영어를 당연히 잘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죠. 2년, 3년, 4년… 시간이 흘러도 영어 실력은 별로 늘지 않고, 원어민과의 대화는 늘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때로는 영어를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자극을 받기도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그 열정은 어느새 수그러들게 됩니다.
원어민 친구
미국인 친구들과 가벼운 인사는 나누지만 더 깊은 우정으로 발전시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만약 자신에게 친절한 착한 미국인 친구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형성하며 우정도 쌓고, 말하기 실력을 향상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어가 서툰 외국인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하는 미국인은 많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한국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가 서툰 한국어로 나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면 그의 서툰 한국어를 기다려주고 이해하려고 애쓸 만큼 우리 일상이 여유롭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우 아이러니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원어민 친구를 사귀어야 하지만, 원어민과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영어 실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혼자 하는 출력 학습
이것이 혼잣말을 하며 노는 아이들을 이야기한 이유입니다. 미국인과 대화하며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영어회화 책을 보며 표현이나 문장을 익히는 입력학습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영어 지식을 밖으로 꺼내는 출력학습이 더 필요한 것입니다.
출력학습으로 가장 쉬운 방법은 간단한 문장을 글로 빠르게 쓰는 것입니다. 빠른 시간 안에 글로 쓸 수 없는 문장은 실제 대화에서 사용될 가능성도 낮습니다. 따라서 빠른 글쓰기가 실제 대화 능력을 상당히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빠른 글쓰기보다 더 도움이 되는 방법은 말하기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거울 앞에서 자기자신과 말하기 연습을 해보록 조언하지만, 어색해서 실천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보다 조금 더 쉬운 방법은 잠자기 전에 몇 분 동안 그날 있었던 일을 영어로 녹음하는 것입니다. 스마트폰 덕분에 누구나 쉽게 녹음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편안한 분위기에서 혼자 말하기가 어렵다면 원어민과의 대화에서는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있었던 일을 시간 순서로 말하다보면 말할 내용이 없어서 머뭇거리는 시간이 줄어들 것입니다. 또한 혼자서 한번 말해본 표현은 실제 대화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영어로 녹음한 것을 나중에 들어보면 스스로 교정할 수 있는 실수와 안 좋은 습관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 배운 표현들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유창한 표현력을 기를 수 있게 됩니다.
실천과제
아이들에게는 혼잣말을 하는 것이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이지만 성인들에게는 어색한 행동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원어민들과 더 효과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혼자 말하기와 같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튜터를 고용하거나 전화영어, 화상영어 등을 통해 대화 상대를 찾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음성을 녹음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무료로 할 수 있는 말하기 훈련입니다. 상대방에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서 자신의 영어를 더 정확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혼자 말하기 훈련은 일단 부담없이 스마트폰 녹음 기능을 켜고 혼자 영어로 말을 해보세요. 처음에 한번만 해보면 이게 의외로 흥미로운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매일 잠자기 전에 5분~10분 동안 하루를 돌아보며 좋았던 일, 감사한 일을 녹음하는 습관을 들여보세요. 시간이 지날수록 말하기 실력도 향상되고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