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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있는 시] 5월의 반성문 – 임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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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있는 시] 5월의 반성문 – 임문혁

5월의 반성문

임 문 혁

 

어떤 사람이 넌센스 퀴즈를 냈다

‘반성문’이 영어로 뭔지 아세요?

금방 답이 떠오르질 않았다

반성문은 영어로 ‘글로벌’이에요. 글로 벌!

아하, 그렇군요!

반성문을 가장 많이 써야 할 때는

12월이 아니라 5월이군요

1일 근로자의 날 – 모범 근로자가 아니었고

5일 어린이날 – 착한 어린이도 아니었었고

8일 어버이 날 – 효도도 못 했고

어버이다운 어버이도 못 되었으니까요

15일 스승의 날 – 스승의 은혜를 잊고 살았고

저 자신도 존경 받는 스승이 되지 못했으니까요

반성문을 써도 참 많이 써야 될 것 같습니다

아참, 그런데 반성문을 영어로 쓰라면 어떡하죠?

한문으로 쓰라 하면 또 어쩌죠?

큰 스승이요 은인 중의 은인이신 세종대왕,

그분이 태어나신 날, 5월 15일을 잊고 살았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쓰는 모든 글은 반성문이어야 마땅합니다

글로 벌, 글로 벌을 단단히 받아야 합니다

그래도, 한글로 쓸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세종대왕님, 태어나셔서 참 고맙습니다

한글 만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작가의 말

근로자의 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세종대왕 탄신일 등 5월은 기억해야 할 날들이 참 많은 달입니다. 그런데, 그런 날을 맞으면 어쩐지 마음 한 구석에 좀 걸리는 게 있습니다. 반성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많은 후회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저는 세종대왕 탄신일을 잊고 살았다는 죄송함이 컸습니다. 우리들은 한글로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편지 쓰고, 일기도 쓰고, 여러 가지 서류도 작성하면서 살았습니다. 저는 국어교사를 했고, 한글로 시를 써서 시인이 된 사람이기에 그런 생각이 남보다 더 많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이 신문도 한글로 발행되고, 여러분도 한글로 기사 내용을 파악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세종대왕님, 태어나셔서 참 고맙습니다. 한글 만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임문혁

시인, 교육학박사, (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1983년 《한국일보》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시집으로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귀.눈.입.코] 등이 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