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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삶] 저린 사랑 – 정끝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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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삶] 저린 사랑 – 정끝별
사랑 가득한 팔베개. 그런데 건강에는 좋지 않다. ©Newsnack

저린 사랑

당신 오른팔을 베고 자는 내내
내 몸을 지탱하려는 내 왼팔이 저리다
딸 머리를 오른팔에 누이고 자는 내내
딸 몸을 받아내는 내 오른팔이 저리다
제 몸을 지탱하려는 딸의 왼팔도 저렸을까
몸 위에 몸을 내리고
내린 몸을 몸으로 지탱하며
팔베개 돌이 되어
소스라치며 떨어지는 당신 잠에
내 비명이 닿지 않도록
내 숨소리를 죽이며
저린 두 몸이
서로에게 밑간이 되도록
잠들기까지 그렇게
절여지는 두 몸
저런, 저린 팔이 없는

▶ 정끝별 (1964~ ) 1988년 <문학사상> 신인상.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은는이가』,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수상.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교수

▶ 시 해설
남편이 내어준 갸륵한 오른팔을 아내가 베고 누웠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 모르게 자신의 왼팔로 살짝 버티며 무게를 덜어내려 애쓰고 있었을 것입니다. 한참이 지나자 남편은 오른팔이 저려옵니다. 아내도 왼팔이 저려옵니다. 하지만 그 저림을 참고 함께 절여지면서 부부는 하나가 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딸(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딸의 왼팔은, 잘은 모르지만, 아직은, 저리지는 않겠지요.
이 시는 발음이 비슷한 ‘저리다’와 ‘절이다’의 의미를 십분 활용하여 서로 배려하는 사랑의 의미를 오묘하게 잘 표현해내고 있습니다.
사랑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힘든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참고 견디며 배려하면서 하나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실 현실의 사랑은 아프기도 합니다. 그 아픔을 숨기고 참는 배려가 있으면 사랑의 고통이 사그라들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견딤을 통해 사랑은 성숙해지고, 말을 아끼고 몸으로 실천하는 배려가 있으면 사랑은 아름답게 승화됩니다. 아내는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듯하지만, 팔을 내어주는 남편의 마음이 갸륵해서 불편을 참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당신 잠에 내 비명이 닿지 않도록 내 숨소리를 죽이는 게’ 바로 사랑입니다.

임문혁
시인, 교육학박사, (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귀.눈.입.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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