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가는 딸에게
외할머니 시집오실 때
외할머니 어머니는 딸 품속에
조약돌 하나 넣어주셨단다
돌이 말하면 비로소 너도 말하렴
그때부터 외할머니는 돌이 되어 입을 닫으셨단다
우리 어머니 시집보내실 때
외할머니는 딸 품속에
모란꽃잎 자수를 넣어주셨단다
모란이 하는 말을 따라서 하렴
그때부터 어머니는 모란 입술로 꽃말 따라 하셨단다
이제 네 차례가 왔다
네 품속에 무얼 넣어 보낼까?
시 한 편 곱게 적어 넣어준다면
네게서 새록새록 시가 피어날지도 모르는데
시처럼 노래처럼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딸아, 이제 네가 시를 완성해다오
▶ 작가의 말
이 시는, 인간 특히 여성의 삶과 말, 언어를 매개로 삶을 엮어가는 존재의 표현과 소통, 그리고 언어를 통한 삶의 형상화라는 시 등 여러 가지를 아울러 생각하게 하는 시입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은 순종과 인내와 희생의 삶을 강요받았습니다. 그래서 전통사회에서는 딸을 시집보내면서 귀머거리 3년, 눈멀어 3년, 벙어리 3년이라는 경구를 주입시켜 보냈다고 합니다.
이 시의 외할머니는 시집오실 때 품속에 어머니가 넣어준 조약돌 하나를 품고 와서 그때부터 돌이 되어 입을 닫으셨다고 합니다. 말의 위험성을 철저히 경계하신 것이지요. 그런 외할머니는 어머니를 시집보내면서 돌 대신 모란꽃잎 자수를 넣어 주셨지요. 돌 벙어리에서 향기로운 꽃 입술이 되게 하신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 내신 것입니다.
이제 딸이 시집을 갑니다. 그 애 품속에 무얼 넣어 보내야 할까요? 아파트 열쇠요? 고급 승용차 키요? 거액의 예금 통장이요? 오랜 고민 끝에 이런 결정을 합니다.
삶의 깊은 진실과 선함과 아름다움이 짙게 스며든 시 한 편을 곱게 적어 넣어준다면, 딸에게서는 새록새록 시가 피어날 거야. 그 애는 시처럼, 노래처럼,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거야. 이제 시인은 간절한 소망을 품고 기도하면서 시 한 편 곱게 적어 품속에 넣어 보내기로 합니다. 시집가는 딸이 이제 하나의 소중한 존재로 피어나고 자기의 삶을 시처럼 아름답게 가꾸어 완성해 주기를 당부하고 기대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