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 함민복 (1962~ ) 충북 중원 출생. 1988년 <세계의 문학> 등단. 시집으로『우울씨의 일일』, 『자본주의의 약속』,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말랑말랑한 힘』등. 김수영 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등 수상
▶ 시 해설
한 해를 다 보내는 연말을 맞이하여, 부부 생활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부부가 함께 평생을 잘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긴 상을 마주 들고 좁은 통로를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는 무거운 상을 둘이 같이 들고 갈 때,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뒷걸음으로 걸어야 합니다. 앞으로 걷는 사람과 뒤로 걷는 사람은 서로를 잘 읽으며 보조를 맞추어 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는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 위의 음식들이 다 쏟아져버립니다.
다 온 것 같다고 해서 상을 먼저 탕 하고 내려놓아서도 안 됩니다. 상대방 걸음의 속도를 맞추며 조심조심, 한 발 또 한 발 걸어가야 합니다.
부부 생활의 어려움이, 긴 상을 마주 들고 좁은 길을 걷는 것과 같다는 비유가 참 찰떡같습니다.
새해부터는 KOREAN LIFE 독자 여러분들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고, 가족관계 내에서도 더 찰떡 같은 부부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