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엄
꽃나무가 아름다운 것은
그 뿌리 밑에
두엄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의
두엄입니다.
예수도
석가도
인류의 두엄입니다.
두엄이 있어서 꽃나무는
저리 향그럽고
두엄이 있어서
아이들은 저리 어여쁘고
두엄이 있어서 인류는
멸망 대신 사랑을 배웁니다.
▶ 허영자 (1938~ ) 경남 함양 출생. 196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투명에 대하여』, 『아름다움을 위하여』, 『마리아 막달라』, 『꽃피는 날』, 『친전』 등이 있다.
▶ 시 해설
여러분은 혹시 ‘두엄’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두엄은 땅에 구덩이를 파고 풀‧낙엽‧가축의 배설물 따위를 넣어 썩힌 거름, 즉 퇴비입니다. 말하자면 화학 비료가 아닌 천연 비료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꽃나무가 아름다운 것은 그 뿌리 밑에 두엄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시인은 갑자기 어머니를 불러옵니다. 어머니는 자신을 두엄처럼 썩혀 자식들을 성장시키는 밑거름, 즉 비료가 되신 분이라는 것이지요. 이 통찰이 얼마나 놀라우며, 가슴 찡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시인은 여기서 또 한 발짝 더 나아갑니다. 예수나 석가 같은 분도 인류의 두엄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줍니다.
그렇습니다. 두엄이 있어서 꽃나무는 저렇게 향그럽고, 두엄이 있어서 아이들은 저렇게 어여쁘고, 두엄이 있어서 인류는 멸망 대신 사랑을 배웁니다.
우리도 누군가의 거름이 될 수 있다면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이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