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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삶] 귀 – 임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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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삶] 귀 – 임문혁
작은 소리도 마음을 열고 귀담아 듣자. ©mediadj.kr

건강 검진 – 청력 검사
‘삐-‘ 소리 나는 쪽 손을 드세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주 작은 소리예요 잘 들어 보세요
끝내 손을 들지 못했다

그 동안 사자 호통, 호랑이 외침만 듣고 살다가
토끼의 말, 다람쥐 하소연, 귀 막고 살다가
이렇게 되었구나
바람 소리, 강물 소리, 달의 말, 별의 노래
들을 수 없게 되었구나

그 동안, 귀또리가 울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침묵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귀를 닫은 것이었구나

▶ 작가의 말
병원에 건강 검진을 받으러 갔습니다.
귀가 잘 들리는지 청력검사를 하는데, 헤드폰을 머리에 씌우고는 소리가 나는 쪽 손을 들라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겁니다. 아주 작은 소리예요. 잘 들어보세요.
그래도 들리지 않아 끝내 손을 들지 못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동안 크게 떠들어대는 큰 소리만 듣고 살았더라구요.
작고 약하고 힘 없는 사람들의 말이나, 바람 소리 강물 소리 달이나 별의 속삭임엔 신경도 쓰지 않았더라구요.
그동안 귀뚜라미가 울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침묵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귀를 닫은 것이었더라구요.
앞으로는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이며 살아야겠습니다.

임문혁
시인, 교육학박사, (전) 진관고등학교 교장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외딴 별에서』, 『이 땅에 집 한 채…』, 『귀.눈.입.코』 등이 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