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중시하는 민족
교육열에 있어서 전 세계에서 한국을 따라올 나라가 없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그 결과, 한국 학생들의 공부 시간은 전 세계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나 아이큐 검사 등에서도 늘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 부모와 학생들이 교육에 거의 전부를 쏟아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저만치 앞서 가는 민족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유대인이다. 미국에서 자녀교육을 위해 엄마가 전업주부를 하는 민족은 한인과 유대인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두 나라는 자녀교육에 열과 성을 다하지만, 결과에 있어서는 큰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그 격차를 좁히기 위해 우리가 유대인들의 자녀교육 방법에 있어서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13살까지는 부모의 책임
유대인의 삶의 모든 영역은 그들의 종교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자녀교육 역시 종교적 책임과 의무의 일부이다. 유대인은 자녀가 하나님의 선물이며, 성인식을 치르는 13살이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 기른 다음 하나님께 다시 돌려 드려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책임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에게 주어진다.
그래서 13살 미만의 자녀가 있는 아버지는 반드시 매일 저녁 자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고, 식사 후에는 그들의 율법인 토라와 탈무드를 함께 읽고 토론한다. 만약 정말 중요한 약속이 있는 경우에는 손님을 집으로 초대해서 만날 정도로 유대인 아버지는 이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유대인의 혈통은 모계에 따라 결정되는데, 유대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야 한다. 유대인을 유대인답게 기르는 데 있어서 어머니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유대인 부모는 자녀를 자신들의 소유물로 여기지 않으며, 하나님 앞에 자신과 동등한 인간이라고 믿기 때문에 모든 약속과 규칙을 정할 때 반드시 먼저 자녀의 동의를 구한다. 아이에게 화가 나면 우선 기도를 하고, 마음이 차분해진 후에 아이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한다. 이렇게 해서 남자 아이는 13살, 여자 아이는 12살이 되면 성인식을 치르고, 이후 아이는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온전한 성인으로 인정 받는다. 참고로, 자녀에게 화가 날 때 유대인 부모들이 반복해서 읽고 암송하는 기도문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 아이의 물음에 대답해주고, 수많은 갈등을 해결해주고, 율법대로 살아가도록 가르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화가 치밀어 오르고, 비난과 매질로 아이의 영혼을 짓밟고 싶을 때마다 이를 이겨낼 수 있는 자제력을 주소서. 사소한 짜증과 아픔, 고통, 보잘 것 없는 실수와 불편에 눈 감게 하소서. 참을성을, 그보다 더한 참을성을, 그리고 그보다 더한 참을성을 주소서. 제가 아이의 생각과 기분을 깊이 헤아리고 있음을 아이가 알 수 있도록 서로 공감하게 하소서. 고통과 좌절의 순간에도, 아이의 존재를 처음 깨달았을 때 느꼈던 환희와, 아이가 첫 걸음마를 뗐을 때의 기쁨과,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의 희열을 결코 잊지 않게 하소서. 지치고 힘들 때에도, 아이를 위해 움직일 수 있는 힘과 건강을 주소서. 신념과 긍정의 힘으로 자신 있는 삶을 대하는 기쁨과 웃음과 열정을 주소서. 모진 말과 조롱, 비난으로 아이의 영혼을 파괴하지 않도록 침묵을 주소서. 아이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포용력을 주소서. 아이뿐만 아니라 시간과 이해와 표현을 필요로 하는 내 내면의 아이도 사랑하게 하소서.”
유대인의 경제교육
유대인의 경제교육은 특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의 체계적인 경제교육은 크게 9단계로 이루어진다.
1단계 돈에 대한 가르침
유대교 경전에서는 ‘부는 신의 축복’이라고 가르친다. 돈이 많을수록 선행을 베풀 기회가 많아져 천국에 가까워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탈무드에서는 가난은 죄악이라고 표현하며, 인생의 모든 걱정이 돈 걱정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우주의 어느 것도 가난보다 나쁜 것은 없다. 빈곤은 가장 큰 고통이다. 가난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은 자신의 어깨 위에 전 세계 고통의 무게를 운반하는 사람과 같도다. 만약 이 세계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저울 위에 놓고 다른 한편에 가난을 놓는다면 그 균형은 가난쪽으로 기울어지리라.”
2단계 엄마의 암송 교육
유대인 어머니는 아이에게 원대한 꿈을 심어주기 위해 매일 아기 목욕을 시킬 때마다 기도문을 암송해서 들려준다. 아기가 태어나면 유대인 엄마는 아기 목욕을 시킬 때마다 먼저 아기에게 동의를 구하고 기도문을 암송하며 아기의 몸을 씻어준다.
얼굴을 씻어주며, “하나님, 이 아이의 얼굴은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의 소망을 갖고 자라게 하소서.”
입을 씻어주며, “하나님, 이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복음의 말이 되게 하소서.”
손을 씻어주며, “하나님, 이 아이의 손은 기도하는 손이요, 사람을 칭찬하는 손이 되게 하소서.”
발을 씻어주며, “하나님, 이 아이의 발을 통해 온 민족이 먹고 살게 하소서.”
머리를 감기며, “하나님, 우리 아이의 머릿속에 지혜와 지식이 가득차게 하소서.”
가슴을 씻어주며, “하나님, 우리 아이의 가슴에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소서. 5대양 6대주를 가슴에 품고 살게 하소서.”
배를 씻어주며, “하나님, 우리 아이의 오장육부가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게 하소서.”
성기를 씻어주며, “하나님, 우리 아이가 자라서 결혼하는 날까지 순결을 지켜,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을 이루고 축복의 자녀를 준비하게 하소서.”
엉덩이를 씻어주며, “하나님, 우리 아이가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자리에 앉게 하소서.”
등을 씻어주며, “하나님, 아이가 부모를 의지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소서.”
아이가 자라는 동안 엄마가 수 백번 반복해서 들려주는 이 기도가 아이의 높은 자존감과 자아실현의 토대가 되어준다.
3단계 아이와 규칙 정하기
유대인은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계약의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규칙을 정하고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아이가 3살이 되면 규칙을 정하기 시작하는데, 이때도 반드시 아이에게 먼저 동의를 얻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 아빠한테 뽀뽀하기, 가지고 논 장남감 제자리에 갖다 놓기, 식사 후 그릇 설거지통에 갖다 놓기, 물건을 쓰고 제자리에 놓기 등을 차근차근 가르친다. 규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일상이 되고, 그것이 삶의 방식이 되고 성격이 되도록 교육한다. 이렇게 3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는 토대가 마련된다.
4단계 자선 습관 들이기
유대인은 세상이 교육과 노동과 자선에 의해 유지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자녀에게 경제교육을 시작할 나이가 되면 그들의 율법에서 강조하는 체다카(정의)와 미슈파트(평등)의 개념을 가르친다. 먼저 2개의 저금통을 준비한 후 매주 용돈을 주는데, 용돈은 3등분을 해서 맨 먼저 체다카 저금통에 넣게 한다. 이것은 공동체 내의 약자를 돌보기 위해 기부하는 습관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다음으로 1/3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저금하고, 나머지 1/3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쓰게 한다.
5단계 용돈 기록장 쓰기
아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 용돈 기록장을 쓰게 한다. 매주 안식일 시작 전에 아이에게 용돈을 주고 일주일 동안 그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기록하게 한다. 용돈 기록을 잘하면 다음 안식일 전에 다시 용돈을 주고, 용돈 기록이 안 되어 있으면 용돈을 주지 않는다.
용돈 기록장을 쓰게 하는 목적은 돈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현명한 소비와 절약정신을 갖게 하며, 집안일을 도우며 스스로 용돈을 벌 수 있게 가르치기 위함이다.
6단계 스스로 용돈 벌기
2천년 동안 여러 나라를 떠돌며 살아온 유대인에게 ‘돈은 곧 생명’을 의미했다. 그래서 유대인 속담에는 “어린 자녀에게 장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자녀를 도둑으로 키우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유대인은 어릴 때부터 아이가 스스로 용돈을 벌 수 있게 가르친다. 숙제나 일기쓰기, 자기 방 청소처럼 자기가 마땅히 해야 되는 일에 대해서는 용돈을 주지 않는다. 엄마 아빠 일을 돕거나 집안 전체 일 거들기, 독서 등을 하면 용돈을 준다. 그리고 벼룩시장이나 온라인 중고 마켓에서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유도한다. 처음에는 부모가 함께 벼룩시장에 나가거나 온라인 거래를 하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정직하게 장사하는 것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7단계 시간 사용 계획표 세우기
유대인은 돈보다 중요한 것이 시간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여러 나라에서 재산을 몰수당하고 빈털털이로 쫓겨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돈이 아니라 머릿속에 든 지식이 중요함을 배웠다. 돈보다 소중한 지식을 쌓고 지혜를 터득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니, 하루의 시간을 잘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아이에게 매일 시간 사용 계획표를 세우게 하고, 저녁식사 시간에는 실제로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이야기하며 아이를 격려해준다. 이때 아이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려고 노력한 과정에 대해 칭찬하고, 결과에 대한 칭찬은 하지 않는다.
8단계 신뢰의 가치 배우기
전 세계 유대인 인구는 1,500만명, 한국인은 남북한을 합쳐 7,500만명이다. 비교하자면 유대인 인구는 한국 인구의 1/5 수준이고, 서울과 제주도 인구를 합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적은 인구를 가진 민족이 2천년 동안 뿔뿔이 흩어져서도 살아남은 힘은 하나로 똘똘 뭉치는 단결력이었다.
작은 공동체의 분열은 곧 자멸을 의미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했던 유대인 공동체는 분열을 조장하는 말과 행동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특히 공동체의 단결과 신뢰를 깨는 부정적인 말, 험담, 비방, 무고를 행하는 사람은 율법에 따라 공동체에서 추방했다.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유대인이 공동체에서 추방당하는 것은 곧 사형선고나 다름 없었다.
이와 관련해 유대인 부모는 아이에게 친구 사귀는 법을 가르쳤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있으니 친구의 장점을 찾고, 친구의 말을 2배 이상 들어주도록 가르친다. 그리고 사실이든 아니든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지 않도록 강조한다. 유대인 속담에 “살인은 한 사람을 죽이지만, 험담은 세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있다. 험담을 하는 순간, 험담을 하는 사람과 그것을 말리지 않고 듣고 있는 사람, 그리고 험담의 대상이 된 사람 모두에게 불신의 씨앗이 심어지고 머지않아 관계에 금이 가게 된다. 더 나아가 이는 작은 유대인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시발점이 될 수 있기에 험담을 율법으로 가장 엄하게 다스렸다.
9단계 13세부터 경제적 자립
유대인 부모는 자녀의 성인식 날 아이에게 세 가지 선물을 준비한다. 성경, 손목시계, 축의금이다. 성경은 이제 사람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의미하고, 손목시계는 시간을 금보다 소중히 여기며 살라는 의미이다. 여기에 더해 부모와 친적들이 유산을 물려주는 마음으로 큰 금액의 축의금을 준비한다.
성인식이 끝나면 아이는 몇 만 달러에서 몇 십만 달러를 받게 되는데, 이때부터 아이는 독립적으로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며 재테크를 시작한다. 돈을 불리기 위해 본격적인 경제공부를 하고, 친구들과 함께 재테크 연구 모임을 만든다.
그들에게 공부는 기도와 마찬가지로 평생 해야 하는 일이며, 돈에 대한 공부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13살부터 큰 돈을 굴려온 아이들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할지 창업을 할지를 심사숙고해서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창업을 할 경우 유대인 공동체에서 무이자로 창업자금을 투자해주는데,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3번까지 창업자금을 빌릴 수 있게 되어 있다. 또한 유대인 공동체 전체가 새로 창업한 사람이 성공할 수 있도록 모든 인맥과 자원과 멘토링을 제공하며 비즈니스에 성공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은 대학 졸업 후 ‘어떻게 돈을 벌까?’를 고민하는 반면에, 유대인 학생들은 13살부터 ‘어떻게 돈을 불릴까?’를 생각하며 성장한다. 이것은 한 가정의 문화가 아니라 유대인 사회 전체의 전통이자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놀라움과 부러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 한인들도 공동체를 보호하고 함께 성장하기 위해 유대인의 마인드와 시스템을 적용해 보면 어떨까? 내 가정에서부터 한 단계씩 실천해 보면 어떻겠는가?
참조: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의 유대인 자녀교육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