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교육 [상담 칼럼] 사랑할수록,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상담 칼럼] 사랑할수록,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0
[상담 칼럼] 사랑할수록,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심연희 대표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아들의 손을 놓아준 엄마
‘말아톤’이라는 영화가 있다. 5살 지능의 자폐증을 가진 20살 청년이 장애를 극복하고 마라톤을 3시간 내에 완주하는 성장 영화다.

이 영화에서 내가 인상 깊게 본 것은 주인공 초원이를 마라톤 선수로 키워낸 엄마의 모습이었다. 장애를 가진 아들이 마라톤을 3시간 내에 완주하는 서브쓰리를 해내도록 도우며 그 엄마는 죽을 힘을 다한다. 아들의 완주에 별 관심이 없는 코치에게 매달려 사정하고, 아들의 훈련을 쫓아다니다 보니 다른 식구들은 뒷전이 된다. 그렇게 아들의 훈련에만 매달리던 엄마가 어느 날 코치와 말다툼을 하게 되었을 때, 코치는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난다 “자식 사랑과 집착을 착각하지 마세요.” 그 후 그녀는 자신의 전부를 걸어온 초원의 마라톤 서브쓰리를 포기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은 출발선에 선 아들을 말리기 위해 달려온 엄마가 꼭 붙잡고 있던 아들의 손을 놓아주는 장면이다. 엄마가 아들의 손을 놓자 비로소 그 아들은 자신의 의지와 열정으로 서브쓰리라는 목표를 이루어낸다.

하나됨 vs 자율성
우리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려 나가면서 ‘하나됨’을 강조한다. 나 개인보다 가족과 조직 전체를 우선시하는 한국 문화에서 이 ‘하나됨’은 아름다운 가치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하나됨을 강조하면서 우리가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다른 사람과 하나됨과 동시에, 나 자신을 책임지고 내 삶을 스스로 살아 나가는 ‘자율성(autonomy)’ 또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남편과 아내는 가정에서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하나되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나 자신을 돌보고 나 자신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힘써야 한다. 또한 자식을 위해 끝없이 뒷바라지하는 부모의 희생은 더없이 귀하지만, 어느 순간 자식이 부모의 자존심과 체면을 세워주는 도구로 전락하고, 부모의 욕심이 자식에 대한 집착으로 변할 수 있는 위험성을 수반한다. 따라서 때로는 부모가 자식의 손을 놓아줄 때, 자식도 부모도 각자의 삶에서 진정한 성장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건강한 독립성, 자아분화
보웬(Bowen)은 가족치료의 한 이론에서 자아분화(Self-Differentiation)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이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분리할 줄 아는 능력이다. 다시 말해, 친밀감(intimacy)과 자율성(autonomy)이 적절히 균형을 이룬 상태를 말한다. 자아분화가 잘 이루어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어우러져 살 줄 알면서도,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불안해 할 때 그 감정에 휩쓸려 같이 불안해 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과 그 상황을 분리해 침착하게 대응하는 사람은 높은 수준의 자아분화를 이룬 사람이다. 자신과 타인을 분리할 줄 알면, 다른 사람의 문제에 함께 가슴 아파하면서도 그 사람을 도와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자아분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상대방에게 투사하는 일이 잦아진다.

자식을 놓지 못하는 부모
상담소를 찾은 어떤 남자분은 차가 없으면 발이 없는 것과 같은 미국 생활에서 50세 중반이 되도록 운전을 배우지 못했다. 어머니가 심한 불안장애 때문에 운전을 못했는데, 그 불안증이 아들에게 그대로 전달된 사례였다. 어머니의 감정에서 자신을 분리하지 못핸 채 어머니의 감정 기복에 따라 함께 불행하고 함께 불안해 했다. 자식이 다칠까봐 너무 불안했던 어머니가 자식이 자신에게서 분리되거나 독립되어 나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던 것이다.

한국에서의 안정된 지위와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미국에 와서 자녀들에게 최고의 교육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궂은 일도 마다 않고 열심히 일하는 부모님들을 종종 보게 된다. 부모의 위대한 사랑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자녀들이 자라면서 영어가 부족한 부모님을 위한 통역사 노릇을 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에게 자꾸만 기대는 부모님이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부모님이 바라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이 두렵고 그 기대가 무겁다. 이것이 미국에서 자란 1.5세, 2세들이 집에서 멀리 떠나고 싶어하는 이유 중 하나다.

냉정한 말이지만, 부모의 삶은 부모 책임이고, 자식의 삶은 자식의 책임이다. 하나된 가정이지만 그 안에서 건강한 독립성을 배우지 못하면 아이들은 마마보이, 파파걸이 되어 정상적인 성인으로 자라지 못한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부부가 늘 함께하면 좋을 것 같지만, 떨어져 있는 시간이 없으면 함께 있는 동안 싸우는 시간도 늘어난다. 우리 모두는 친밀함을 갈망하지만, 동시에 혼자만의 시간도 필요하다. 타인을 위한 희생도 필요하지만, 나를 돌보고 발전시켜 나가는 셀프 케어도 함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하나됨과 독립성은 조화가 중요하다.

하나됨을 핑계로 내 배우자에게, 혹은 자식에게 내 행복을 위해 강요를 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야 한다. 나를 돌보고 나를 발전시키는 일을 게을리하면서 배우자 탓, 자식 탓, 남탓만 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나의 불안감, 낮은 자존감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됨을 핑계로 내 옆에만 붙들어 놓고 있지 않은지 확인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성령 안에서 하나되라고 말씀하셨지만, 또한 모든 지체들을 다르게 만드셔서 다른 모양으로 섬기게 하셨다. 친밀감과 독립성의 균형이 건강한 관계, 건강의 인성의 지표다.

칼럼에 대한 회신은 [email protected] 으로 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