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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칼럼] 배우자 길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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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칼럼] 배우자 길들이기
심연희 대표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결혼을 하고 달콤한 신혼에 접어든 커플들이 결혼 선배들에게서 종종 듣게 되는 충고가 있다. 초반에 기선을 잘 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결혼 초기부터 배우자를 잘 길들여 놔야 남은 평생이 편안하다는 것이다. 서로 눈빛만 스쳐도 꿀이 떨어지고 깨가 쏟아지는 신혼부부들에게는 한편 당혹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선배들의 현실적인 조언을 무시할 수 없어 가만히 듣게 된다. 그런데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들이 나를 위해 해주는 말이라고 생각되면 점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나중에는 나와 내 가정의 행복을 위해 기선 제압의 기술을 배우고 실천해 가게 된다.

가정,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터
기선 제압이 목표가 된 결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터로 변하기 십상이다. 결혼 준비 과정에서 이미 혼수, 예단 등의 문제로 시작된 두 집안 간의 묘한 신경전은, 결혼 후에 누가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느냐로 이어지고, 아이가 태어나면 누가 밤에 일어나 기저귀를 가느냐 등의 문제로 조금씩 변해 간다.

아이들이 커서 손이 좀 덜 가는 시기가 되면 싸움의 대상이 배우자에서 자녀들로 옮겨간다. 아이들이 십대에 접어들면서 부모의 권위와 가정의 규칙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엄마 아빠가 틀렸고, 자기는 그렇게 안 산다고 도전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십대 시절을 무난히 잘 넘긴 부모들은 뒤늦게 자녀들의 결혼문제로 골치를 썩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면, 가정은 우리를 제일 힘들게 하면서 동시에 우리를 가장 강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훈련의 장이기도 하다.

나를 위해 너를 고쳐라
상담을 오시는 많은 분들이 상담을 통해 달성하고 싶은 공통적인 목표가 있다. 그것은 내 마음이 좀 더 편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목표를 이루려면 내 가족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내 남편이 술부터 끊어야 한다. 내 불면증이 없어지려면 내 자식이 정신차리고 공부를 해야 한다. 내가 자신감을 되찾으려면 내 아내가 나를 다른 남자들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포르노 중독이나 게임 중독에 걸린 남편 때문에 나에게 우울증이 오고, 매사에 신경질적이고 끊임없이 잔소리와 비난을 퍼붓는 아내 때문에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 속 썩이는 자식 때문에 내 삶에는 아무런 의미도 의욕도 없어져 버렸다. 아내는 남편의 폭력적인 언행 때문에 못살겠다고 울고,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견딜 수 없는 지경까지 몰아붙인다고 하소연한다. 자신을 가만 놔 두기만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때문에 많은 분들이 상담소에 와서 자신의 가족을 바꾸어 놓을 방법을 찾거나, 아니면 이혼을 할 수밖에 없는 정당성을 확인 받으려고 한다.

불가능한 미션, 상대방 고치기
그런데 우리를 정말 절망하게 만드는 사실이 있다. 우리가 오랜 세월을 참고 노력했지만, 내 배우자, 내 자식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로 우리는 가족관계 내에서 필요 이상의 책임을 지려고 한다. 내 남편이 무능하니까 내가 닦달을 해서 뭐라도 하게 만들어야 한다. 내 아내가 게으르니까 내가 그 버릇을 고쳐 놔야 한다. 내 자식이 똑똑하지 못하니까 내가 채근을 해서 사람 노릇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에 다른 사람을 바꾸는 것만큼 진이 빠지는 일도 없다. 아무리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서 그렇다. 그러면서 점점 무력감을 느끼게 되고, 그것이 심해지면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된다.

삶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방법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내가 책임지고 고쳐야 될 사람은 내 자신 하나로도 족하다는 것이다. 그 목표 하나만 이루는 데도 평생이 걸릴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상대방을 고쳐 놓겠다는 생각을 내려 놓고 그 에너지를 나 자신을 추스리고 변화하는 데로 돌리면, 가정에 진정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나 한 사람의 변화는 가족 시스템 전체를 변화시키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하늘은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스스로를 돕는 사람들을 도와 주신다.

옆에서 계속 잔소리를 하면, 좋은 마음을 먹었다가도 하기 싫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반대로 남편을 향해 잔소리를 하던 아내가 시선을 돌려 자신의 내면을 돌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잔소리가 줄고 불필요한 잡음도 줄어들게 된다. 아내가 편안해지면 남편도 집에 있는 게 편안해진다. 또한 남편이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게 되면 아내가 잔소리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 남편이 먼저 처가에 전화를 하면 아내도 시댁을 챙기게 된다. 부모가 일일이 확인하며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않으면, 자녀들은 자기가 스스로 챙겨야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자립심과 자기관리 능력이 길러지는 것이다.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키는 일은 언뜻 보면 내 가족의 문제를 다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또한 내가 먼저 변해야 가정이 변화한다는 말은 내 답답하고 억울한 사정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의 섣부른 충고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런데 내 가정의 변화를 위해 나를 변화시키는 일은 결코 씁쓸한 일이 아니다. 내 가정을 위해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일은 자주 혈압이 오르내리고, 복장이 터지고, 갈수록 불만과 무력감만 쌓이는 일지만,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은 변화의 속도와 목표를 내가 정할 수 있고, 무엇보다 실현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긍정적인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며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궁극적으로 나에게 가장 소중한 내 가족들과 함께 내가 바라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일이다.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인가! 따라서 이제 ‘상대방 고쳐 놓기’ 프로젝트를 멈추고 대신 ‘나부터 잘 돌보기’ 프로젝트를 시작해 보자. 훨씬 더 생산적인 결과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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