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의 두 얼굴
꽤 오래 전 일이다. 어느 중학교에서 아시안 학생 K를 우리 상담소로 보내 상담했던 적이 있다. 그의 SNS에 “다 죽여버리고 싶다”고 올린 한마디가 문제가 되었고, 심리검사와 상담을 지속적으로 받는다는 조건 하에 퇴학을 면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K는 생각보다 공격성이 없었고, 오히려 수줍음이 많고 말수가 적은 아이였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K는 별다른 문제 없이 미국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는 듯 보였지만, 아이의 마음속에서는 다른 아이들에게 섞여들지 못하는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영어가 서툰 부모님이 창피했고, 친구들과는 좀 다른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이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이었던 SNS에서 행복해 보이는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면 자신의 가족은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아는 친구들이 주말에 누군가의 바닷가 별장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놀고 생일 파티를 하는 모습을 보면 부럽고 화가 났다. ‘좋아요’를 몇 백 개씩 받는 인기 있는 학교 친구에 비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 아이에게는 ‘다 죽여버리고 싶다’는 말이 잠시 열받아 내뱉은 한마디였을 수도 있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힘들어요. 외로워요. 제발 나를 도와주세요’라는 절박한 구조 요청이었을 수도 있다. K에게 도움이 필요함을 알아채고 길을 열어준 것이 SNS라면, 아이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자신을 비하하게 만드는 데 한 몫 한 것도 SNS였다.
얼굴 없는 친구들
소셜 네트워크의 사용에서 오는 심리적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장점을 먼저 찾아보자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장이다. 사람들을 알아가기도 하고, 멀리 있는 지인들의 소식을 간간이 접할 수도 있다. 옛 친구를 찾는 징검다리가 되기도 한다. 원한다면 자신을 폭넓게 알릴 수도 있다.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이런 장점을 살려 잘 사용한다면 좋은 생각을 나누고,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다. 기도 부탁이나 전도의 방법이 되기도 한다. K의 사례처럼 힘들어하는 누군가의 마음을 알아채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소셜 네트워크나 인터넷의 부정적인 영향력은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을 옭아매고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SNS에서 맺은 ‘친구’는 과거와는 좀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더 이상 친하게 어울리며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얼굴도 모르지만 인터넷상에서 우연히 연결된 누군가를 ‘친구’라고 부르게 되었다. 인스타에서 맞팔을 한 사이라도 막상 만나게 되면 서로 어색하고 할 말이 없는 묘한 관계다. 피상적인 관계의 극단적인 표현이 바로 SNS상의 ‘친구’인 것이다. 서로 얼굴은 모르지만 같이 게임을 하게 된 사람들을 친구라고 부른다. 각자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아바타를 보면서 성별도, 나이도, 인종도 알 수 없지만 서로 친구가 되어 교류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인터넷상의 친구는 수십, 수백 명이지만, 정작 서로 얼굴을 보고 소통하며 진짜 벗을 사귀는 방법은 점점 잊어가고 있다.
K의 사례에서 보듯이 인터넷에 올라온 친구들의 피상적인 삶의 모습은 친밀감보다는 박탈감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다. 단편적이고 선택적으로 게시된 그들의 행복해 보이는 사진들만 보고 구질구질한 내 삶을 비관하기 십상이다. 그 결과 자아존중감 하락과 행복감의 저하로 이어진다.
영국 셰필드대학 연구팀은 ‘소셜미디어의 이용과 아이들의 건강’이라는 논문에서 아이들은 ‘학교생활’과 ‘자신의 외모’에 관한 불만족이 상대적으로 높았으며, 특히 SNS를 많이 하는 아이들일수록 이런 불만족이 더욱 커졌다고 보고한다. 그 외에도 많은 연구들이 아이들의 불안증, 우울증, 공격성, 주의력결핍장애 등이 SNS 사용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고한다.
부모의 책임
SNS를 해본 사람은 누구나 이해하듯이 인터넷상에서 더 많은 ‘친구’나 ‘팔로워’, 혹은 ‘좋아요’를 얻기 위해 조금은 가식적이거나 자극적인 내용을 올리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때로는 K처럼 ‘다 죽여버리고 싶다’고 말해 학교가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비상사태를 불러오기도 한다. 십대에 막 접어든 아이가 ‘우리 엄마는 내가 처녀가 아니라는 걸 모른다’는 글을 온 세상이 다 보도록 올리기도 한다. 미성숙한 사람들의 생각과 언어가 그대로 드러나고 남는 곳이 인터넷이다. SNS에 올린 글 때문에 싸움이 나는 경우는 셀 수 없이 많다. 스크린 뒤에 숨어서 뱉어내는 독하고 자극적인 말들로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지 모른다. 인터넷 댓글들은 수많은 연예인들을 자살로 내몰았다. 얼굴을 마주 보고는 절대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을 익명이라는 장막 뒤에 숨어서 거침없이 내뱉는다. 악플들을 보면 여과되지 않은 사람의 생각과 말이 얼마나 더럽고, 독하고, 저열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 아이들이 인터넷과 SNS가 만들어낸 세상에 무방비로 노출될 때 받게 될 영향은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안 줄 수도 없고, 인터넷을 끊어버릴 수도 없다. SNS를 못하게 한다고 안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어떤 위험이 있는지 경고는 해주어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대화해야 한다. 아이들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부모가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아야 한다. 아이가 분별 있게 판단하고 자신에게 좋은 것을 선택할 힘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아바타 친구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진짜 나로서 진정한 관계를 맛볼 수 있는 곳이 가정과 교회다. 따라서 자신이 드러나든 감춰지든 언제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행동하고 살아가야 함을 제일 가까운 부모가 먼저 본을 보여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을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을 삶 속에서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부모의 거룩한 책임이다. 이 책임을 등한시 하는 것은 부모로서 심각한 직무유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