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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칼럼] “NO”라고 말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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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칼럼] “NO”라고 말해도 될까……?
거절의 원칙: Learn to say 'no' to the good so you can say 'yes' to the best. - John C. Maxwell ©KOREAN LIFE
심연희
NOBTS 겸임교수
Life Plus Family Center 공동대표
Licensed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RTP지구촌교회 사모 [email protected]

마음 착한 사람
목회자와 교회의 리더들, 그리고 아마도 거의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No”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그 필요를 내가 다 채워줘야 할 것 같은 선한 마음도 있다. 또한 부탁을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도 난감하다. 무엇보다, 내가 교회의 리더이니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고 베풀어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착하게 살아야 하고, 크리스천으로서 더욱 그래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일이 끝없이 계속 되는 것이다.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처음에는 기꺼운 마음으로 응답한다. 그러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방의 요구가 부담스러워지고, 심지어는 미워지기까지 한다.
마음이 착한 사람들은 자신이 불편하고 싫은 것을 상대방에게 정직하게 표현하는 데 서툴다. 그래서 상대는 당연히 내가 괜찮은 줄 안다. 나는 내 일을 못하고 손해를 보면서까지 상대를 도와주려 애쓰는데, 상대의 요구는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나의 도움과 배려는 어느새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너무 힘이 들어서 어쩌다 “No”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그것을 섭섭하게 여기는 기색이다. 그러면 내 마음이 영 불편해지고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 그래서 상대의 요구를 계속 들어주며 지내다보면 어느 순간 그 사람에게 분노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도와줘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 그 사람에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나의 도움과 사역이 더 이상 기쁘지 않고 버거운 짐이 된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그 결과물은 이상하게도 죄책감과 분노만 남게 된다.

정 없고 야박한 사람
효과적인 대인관계를 위한 조언들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No”라고 말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바운더리(Boundary)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No”라고 말하면 상대에게 미움을 받아 좋은 관계가 끝장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건강한 대인관계의 초석이 된다고 역설한다.
가족이나 조직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한국 문화에서는 자신을 위해 경계선을 긋는 것이 이기적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부모는 자녀를 위해 희생하고, 자녀는 부모를 봉양한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경계선이 모호하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경계선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처럼 부부 또한 한 마음 한 뜻이어야 하는데, 한쪽에서 경계선을 긋는 것은 하나됨을 파괴하는 개인주의 혹은 이기주의의 표상으로 여겨진다.
이런 한국적인 정서와 문화에서 바운더리는 매우 불편한 개념이다. 그래서 끝나는 시간이 분명한 목장 모임은 왠지 야박하게 느껴지고,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사람은 왠지 정이 없게 느껴진다.

선을 넘는 사람
이라는 책에서 헨리 클라우드(Henry Cloud) 박사는 건강한 경계의 개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바운더리는 우리를 규정한다. … 바운더리는 내가 멈추고 다른 사람이 시작해야 할 부분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소유권에 대한 인식을 갖도록 이끌어준다.”
건강한 경계선은 서로 침범하지 말아야 할 부분을 분명하게 표시해준다. 모든 개인이 가장 자기답고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분명한 경계선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건강한 바운더리를 세우면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나쁜 것은 버리도록 도와준다. 진주는 안쪽에, 돼지는 바깥 쪽에 있도록 분류한다(마7:6).”
개인의 바운더리를 무시하고 극단적으로 침범하는 사례가 언어폭력, 폭행, 성폭행 등이다. 상대방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 개인의 가장 개인적이고 고유한 영역을 침범하고 짓밟는 명백한 범죄이다.
또한 지속적이고 심한 학대를 당했던 사람들은 건강한 바운더리를 지키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때로는 좋은 것을 버리고, 나쁜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
가정폭력으로 붙잡혀 TV에서 인터뷰를 했던 사람이 떠오른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때리며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빠가 너를 사랑해서 때리는 거야.” 그는 자신이 겪은 학대를 통해 사랑하면 때리는 거라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와 자녀들을 사랑해서 때렸던 것이다. 사랑과 고통을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자기 일을 보러 떠난 사람
내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No라고 말해도 될까? 내가 사랑없는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하면 어쩌지? 이런 걱정에 짓눌리면 그 관계의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게 된다.
요구를 거절할 때 관계가 깨질까 두려운 사람은 No를 하지 못한다. 친구들이 마약을 건넬 때, 그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할까봐 두렵다면 No하지 못한다. 잠자리를 안 해주면 애인이 떠날까봐 두려운 사람은 그 불편한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다. 착하고 좋은 목회자로 남고 싶은 마음이 크다면 무리한 상황에서도 No를 하지 못한다. 상대를 기쁘게 하는 것이 중요한 사람은 No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십중팔구 불행한 결말이다.
건강한 바운더리를 유지하려면 Yes와 No에 대한 더 현명한 기준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나를 위한 최선’을 선택할 줄 아는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보자. 그는 강도 만난 사람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내어주며 보살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재정적 손실을 감수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이 선한 사마리아인도 자기 일을 보기 위해 떠났다는 것이다(눅10:35). 남의 어려운 사정을 돌보느라 자신의 중요한 일을 밀쳐두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에게 이런 균형감각을 배워야 한다.
건강한 바운더리는 내가 지치지 않고 더 길게 사역할 수 있는 핵심 전략이다. 가장 중요한 일에 Yes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다른 일에 No라고 말해야 한다. 예수님도 때로는 거절을 하셨고, 미움과 오해를 받으셨다. 그러니 우리도 용기를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