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존감
성격장애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가 낮은 자존감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평가나 인정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다른 사람들의 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만약 타인의 관심이나 인정이 지속되지 않으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듯이 느껴진다. 그래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시켜 줄 누군가를 끊임없이 필요로 하며 혼자 있는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이런 사람들과 상담을 하거나 심방을 가게 되면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기게 되기 마련이다. 상담을 오는 경우에도 약속된 1시간을 계속 넘기기 일쑤다. 그 사람과 보내는 시간이 계속해서 길어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주변의 친구들이나 목회자는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점점 지치게 된다. 그래서 조금 거리를 두려고 하면 몹시 화를 내고 상대방을 자신의 적으로 간주한다. 또한 버림받는 것에 대한 극단적인 두려움 때문에 타인의 행동을 통제하고 조종하려고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신체적 증상을 호소하거나 자살 시도를 하기도 한다.
반복되는 문제
이런 사람들은 가까이 하기에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상담자나 정신과 의사들도 충분한 훈련을 받지 않은 한 되도록 기피하는 내담자 유형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이런 특성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이나 상황을 내 맘대로 움직이고 싶어 하고, 혼자만의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 하며, 타인이 나의 정서적 욕구를 채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거리를 두는 게 느껴지면 대체 왜 그러는지 별별 생각이 다 들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특성이 지속적이고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다. 성격장애의 특성이 강한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에는 아주 친절하고 매력적이다. 여러 가지 재능이 많고 어느 모임에서나 눈에 띄고 반짝거리기 때문에 사귀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된다. 그들이 아주 깊은 자존감의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친절하고 사교적인 성격 뒤에 감추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밝은 성격과 기분이 상황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듯 순식간에 오르락 내리락 하기도 한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런 특성들이 유달리 강하고, 그것이 일상생활과 대인관계에 반복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사울의 성격
성경에서 성격장애 성향을 가진 인물을 찾아보자면 아마도 사울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서 그는 매우 키가 크고 준수한 외모를 가진 소년으로 묘사된다.(삼상 9:2) 그런데 그가 자신의 가족을 ‘가장 미약한’ 집안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약간의 자격지심이 있었던 듯하며(삼상 9:21), 사람들이 그에게 멸시하는 말을 했을 때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삼상10:11-12).
그가 기름부음을 받고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후 많은 업적을 쌓고, 가는 곳마다 모든 대적을 쳐서 이겼다고 전한다(삼상14:47). 그러나 그런 성공이 그의 건강한 자존감을 높이기보다는 자만심을 키웠던 것으로 보인다. 사울은 전쟁터로 오던 사무엘이 늦어지자 자신이 임의로 나서서 제사를 드림으로써 불순종의 길을 걸었다(삼상 13:8-14). 그리고는 백성들이 두려워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말한다(삼상 15:24).
사무엘이 이를 책망하고 돌아서자 사울은 사무엘의 옷깃이 찢어지도록 붙잡으며 자신의 죄를 사해주고, 자신과 함께 가기를 청한다(삼상 15:25-27). 이는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고 싶어 하는 욕망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는 또한 다른 사람들의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계속 마음이 흔들렸다.
그의 이런 특성은 사람들이 자신과 다윗을 비교하기 시작하자 극에 달한다. 다윗을 가까이 두었으나 동시에 그를 두려워 하여 죽이려 했다. 다윗의 장점을 인정하고 그를 자신의 그늘 아래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다윗의 존재로 인해 자신의 열등감이 계속 자극받는 것을 괴로워 했다.
유전적 요인
성격장애가 생기는 원인으로는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공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떤 아이들은 유난히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들의 기분과 표정에 민감하고 상상력이 뛰어나다. 혼자 놀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주변에 친구가 없으면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아이들은 타고난 예민함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더 빨리 반응하고 사교적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아이가 유달리 민감하고 감정기복이 심하면 부모들은 피곤해 한다. 아이가 화 낼 일도 아닌데 화 내고, 삐질 일도 아닌데 삐진다고 야단친다. 아이가 생각하는 일은 대부분 머릿속에서 상상한 것일 뿐이라며 더 이상 말도 못 꺼내게 한다. 형제들은 제 정신이 아니라고 몰아붙이거나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또한 아이가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달라 붙으면 귀찮아서 더 밀어내게 된다.
그런 상황을 경험하면서 예민한 아이는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말이나 욕구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며 자신을 더 믿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시키려고 할 때 더 과장되고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게 된다. 더 크게 화내고, 더 슬퍼하고, 더 상처받았다고 난리를 쳐야 사람들이 자기 말을 믿어줄 거라고 생각한다. 반복적으로 거부당한 아이에게는 다른 이들의 인정이 더 많이 필요한 것이다.
환경적 요인
성격장애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은 환경적 요인이다.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혼, 이별, 성폭력, 아동학대 등의 충격적 사건이 계기가 된다. 어린 시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버림 받았던 경험이나, 자신의 울타리(boundary)를 허락없이 침범해 들어온 사람들에 대한 경험이 삶의 불안과 자신에 대한 불신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느껴 온 가슴속 빈 자리와 무력감을 채우기 위해 항상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 없으면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 또한 자신을 버릴지도 모르는 상대방을 잃지 않기 위해 어떤 일도 불사한다.
이처럼 한 사람의 행동 뒤에는 그 사람을 만든 유전, 환경, 문화, 역사 등의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렇게 복잡한 사람들이 가정과 학교, 직장, 교회 등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행동 뒤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힘든 사람을 대하는 첫 단계는 먼저 그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해가 모든 치유와 회복의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