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장애의 파장
경계선적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를 가진 사람이 가족이나 직장, 교회, 소그룹 등에서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상당히 크다. 작은 교회나 소그룹에서는 별것도 아닌 일로 구설수에 오르고, 사람들이 나뉘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의 주위 사람들은 그 사람과 아주 친하거나 아니면 아예 원수가 되기 쉽다. 자기 자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완벽하지 않으면 쓰레기가 된다. 그 판단의 대상이 되면, 한순간에 천사에서 사탄으로 평가절하되는 것이다. 부모로서 좀 부족한 면이 보이면 자식을 낳지도 말았어야 할 사람이라고 비난하고, 자식에게 좀 모자란 부분이 있으면 세상에 쓸모없는 못난 자식이라며 다른 집 자식들과 비교한다. 이런 비수 같은 말들이 그룹에 크고 작은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상담자도 경계선적 성격장애를 가진 내담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훈련받고 지지받아야 한다. 내담자가 상담자를 지나치게 칭찬하거나 지나치게 폄하할 때, 나를 붙잡아줄 동료가 필요하다.
그들의 칭찬과 비난
상담소를 찾아온 C양은 한번의 상담으로 마치 구원자를 만난 듯이 말했다. 자기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상담자를 만나보고 바꿔봤지만 당신처럼 명쾌하고 지혜로운 상담자는 처음 보았다고, 당신이 최고라고 말이다.
상담자로서 때로는 내담자가 말한 ‘명쾌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다. 더욱이 내담자가 상담자를 좋아하고 존중하면 상담의 효과도 커질 수 있다.
그런데 내담자의 칭찬에 꽂혀 좋아하면서도 절대 흘려 듣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그 내담자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많은 상담자를 만나보고 바꿔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그 누구와의 상담도 효과가 없었다는 뜻이다. 그녀가 만나온 수많은 상담자들이 처음에는 최고였다가 머지않아 자격미달로 전락했을 것이다. 역시나 몇 번의 상담이 지난 후 그녀가 말했다. 당신 역시 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훈련받은 상담자도 이런 내담자를 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돕는자의 자존감
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혹은 그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돕는자 자신의 자존감을 살피는 일이다.
C양이 나를 칭찬할 때 최고의 상담자가 된 듯 뿌듯하고, 그녀가 나를 폄하할 때 형편없는 상담자라고 느껴진다면 어떻게 될까? 당신 역시 다른 상담자들과 다를 바 없고 자신을 도와줄 능력이 없다는 말에, 내가 과연 상담 일을 계속할 자질이 있나 의심스러워진다면 어떻게 될까? C양의 태도나 감정기복에 따라 상담자의 감정이 흔들린다면 상담의 질은 물론, 상담자로서의 정체성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
C양이 교회에서 리더를 칭찬할 때에는 더없이 괜찮은 지도자처럼 느껴지고, 깍아내릴 때에는 자격미달 인간으로 느껴진다면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사역을 할 수 있을까? 돕는자로서 자신의 자존감을 먼저 살피지 않는다면 C양이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상황에 휩쓸려 파선 직전의 위기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은혜의 자리
경계선적 성격장애의 특성을 가진 사람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그들과 좋은 친구가 되었다가 관계가 깨지며 깊은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이때 상대방에게 집중된 관심의 초점을 우리 자신에게 돌려 성찰과 성숙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 그 사람의 존재가 우리를 단련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고,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도록 훈련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또한 인간관계의 파도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굳건하게 서서 자신의 믿음을 지켜 나가는 연습의 과정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먼저 땅에 발을 딛고 서야 흔들리는 누군가를 잡아줄 수 있다.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 내 마음이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면 둘 다 함께 멀미가 나도록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나에 대해 쉽게 평가하고 정의내리고 비난할 때, 이것을 기억하자.
상담자로서, 리더로서, 목회자로서, 부모로서 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선 자이다. 능력도 자격도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 은혜로 서 있을 뿐이다. 이 자리는 잘나서 주어지거나, 못나서 빼앗기는 자리가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을 뿐이다. 그분이 역할을 바꾸라고 하시면 그 은혜에 의지하여 다시 한 걸음씩 내딛을 뿐이다.
사랑에 뿌리내린 자
누군가 자신의 아픔과 상처로 인해 나를 평가하고 상처줄 때면 아프기 마련이다. 나의 약한 부분을 꼬집으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사람의 상처와 나 자신의 문제는 구분되어야 한다. 상대의 비난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지혜롭지 않다. 그러나 상대의 평가에 자책과 자기혐오로 이어지는 것 역시 건강한 반응이 아니다.
그 사람을 미워하기 전에, 그의 생각을 고쳐주려고 하기 전에,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먼저 살펴보자. 한 사람의 평가 위에 서 있다면 나는 파도에 떠밀려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에 서 있다면 나는 굳건한 바위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과도한 칭찬이나 날선 비난에도 담담할 수 있다. 내가 선 자리가 그저 은혜이기 때문이다. 허물어 지지 않는 하나님의 성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 안전한 자리에 서 있지 않다면 표류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떠내려 갈 수밖에 없다. 내가 누구인지는 불완전한 한 사람의 평가에 달려 있지 않다. 나를 위해 죽으신 구세주의 사랑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 뿌리가 깊고 튼튼해야 흔들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붙잡아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