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쉼표
COVID-19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격변의 시대를 지나면서 우리의 일상이 멈췄다. 직장에서 일하는 모습이 달라지고 있고, 경제 활동의 종류와 양상도 변하고 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도 돈을 번다는 사람과 돈을 잃는다는 사람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여지껏 살아오면서 당연하게 여겼던 많은 것들이 지금은 불가능해졌다.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떠는 것은 물론이고, 집밖에서 노는 아이들의 고함소리와 웃음소리도 그쳤다. 하다못해 아프신 부모님을 방문하는 일도 금지되었다. 노환으로 몸이 안 좋으셔서 요양원으로 가신다는 집사님과의 전화 통화가 마지막이 되었다. 목회자로서의 심방은 물론 심지어 장례식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교회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도, 밖에 나가서 전도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사람들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삶의 모습들이 갑자기 멈추었지만,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는 기약이 없다.
정지의 순간
모든 것에 일순간 쉼표가 붙여진 후 우리는 갑작스러운 ‘정지’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늘상 해오던 일들과 숨가쁘게 돌아가던 삶이 멈추었을 때 그 당혹감과 혼란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마치 알코올 중독으로 수 십 년간 술을 마시던 사람이 어느 순간 술을 끊었을 때 그의 빈 잔에 이제는 무엇을 채워야 할지, 그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정지상태에서 비롯된 당황스러움이 조금씩 가라앉을 즈음, 이 상황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두리번거리게 된다. 쉼표로 인한 삶의 여백에 남겨진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홀로 남겨진 존재
Doing이 모두 멈추었을 때 남는 것은 Being이다. 그저 가만히 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마주하게 되는 것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 자신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닥쳐온 정지의 순간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자신과 마주하기를 거부했던 한 내담자의 사례가 떠오른다.
그녀는 온 가족이 자살이나 살해로 죽음을 맞았던 가정에서 자라 혼자 남겨졌다. 따뜻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희망을 안고 시작했던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남편의 외도와 이혼으로 끝이 났고, 두 아이를 혼자서 키워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오로지 일만 했다.
그런데 장성한 아이들이 자신의 품을 차례로 떠나가면서 바쁘던 삶이 점점 덜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혼자 남겨진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 못 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그녀는 50대 후반이 되었고 하루하루의 시간을 그냥 살아갔다.
아무도 아닌 나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해고통지를 받았다. 이제 곧 60을 바라보며 뭔가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어정쩡한 나이에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하게 되니 그녀의 삶이 그대로 정지해 버린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멈추어 선 지점에서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공허함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던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이 자신이 가진 모든 약과 술을 한꺼번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그녀의 삶이 끝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녀의 삶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병원에서 퇴원해 상담소를 찾아온 그녀는 마치 온몸이 텅 비어버린 듯 어떤 질문에도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누구의 딸도, 누구의 엄마도, 어느 직장인도 아닌 그저 자기 자신, 그 아무도 아닌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삶을 놓아 버린 그 순간에도 그녀를 놓지 않으신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그녀는 삶에 대한 해답을 하나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바쁜 삶을 핑계로 마음 한 구석에 밀쳐 두었던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일에 몰두하며 잊어버리려 했던 자신의 상처와 두려움들을 하나하나 꺼내고 직면하면서 자기 안에 있는 힘과 기쁨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지,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다시 짚어가며 그녀는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할 준비를 해나갔다.
새로운 숨 고르기
멈춤은 우리를 충격으로 몰아넣지만 그 안에서 진짜 나를 찾게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남아 있는 아무도 아닌 내가 존재하는 진짜 이유를 마주하게 한다. 가만히 있을 때 내가 하는 ‘일’이 아닌 ‘내 자신’을 보게 된다. Doing이 아닌 Being으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어 부끄러워진다. 나는 대체 뭐하고 살았나 싶다.
그런데 숨가쁜 달리기가 멈춘 잠잠한 중에 의외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셨다고 말씀하신다(렘1:5). 주님이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 3:17)는 속삭임이 들리기 시작한다. 주님 안에서 Being만으로 충분함을 알게 된다. 뭔가를 해내는 것보다 내 존재 자체, 살아감 자체도 의미있음을 깨닫게 된다. 정지의 순간에 마주하게 되는 진짜 나, 또 다른 발견의 시작이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숨 고르기다.